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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케네디, 박정희에 민정이양 요구’ 단독보도

등록 2010-12-06 20:49수정 2010-12-07 08:26

리영희의 특종과 칼럼
‘필리핀 미군기지, 한국이전’ 통박글 큰반향
리영희 선생은 자신을 ‘60%의 저널리스트, 40%의 아카데미션’으로 정의했다. 기자 리영희에게 글은 실천적 지식인의 무기였다.

시대의 모순과 맞선 치열한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를 흔든 여러 특종으로 이어졌다. <합동통신> 시절인 1961년 그는 ‘박정희-케네디’ 회담 당시 미국 쪽이 민정이양 요구를 했다고 단독보도했다. 1964년 한·일 국교정상회담 합의내용 가운데 대일재산청구권 대상에서 개인에 대한 현금상환이 배제됐다는 사실도 그의 특종이었다. <조선일보> 재직 당시인 1965년엔 아시아·아프리카회의 당시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과, 유사시 일본군의 한반도 개입을 가상한 ‘미쓰야 계획’ 등이 기자 리영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자전적 에세이 <자유인 자유인>의 ‘후배 기자들에게 당부’란 글에서 “빼앗은 쪽의 입장에 서지 말고 빼앗긴 쪽의 입장에 서라”고 후배들을 일깨웠다.

미국 외교관인 그레고리 핸더슨과의 일화에선 특종과 인간관계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적 단면을 드러냈다. 1963년 리영희 기자는 친구였던 주한 미국 대사관의 문정관 핸더슨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이 민정이양 약속을 지키지 않아 미국의 식량지원이 늦춰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합동통신에 1보 기사가 나간 뒤 핸더슨은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지만 리영희는 거절했다. 그는 1989년 1월1일치 <한겨레>에 실린 ‘25년 전 마음의 빚’이란 칼럼에서 “그때 그 기사를 취소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괴로움을 금할 수가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리영희의 냉철한 이성은 자신의 사진을 내건 칼럼에서 더 뜨거운 울림과 만났다. 그가 쓴 첫 한겨레 칼럼 ‘또 사우스 코리아인가’(1988년 5월22일치)는 필리핀 미군 기지의 한국 이전 논의를 통박하면서 뜨거운 반향을 끌어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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