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전망대
<문화방송>(MBC)마저 따로 미디어렙을 설립하겠다며 방송 공공성 무너뜨리기에 나섰다. 변명은 궁색하다. ‘종합편성 채널은 이미 직접 영업을 시작했고 에스비에스(SBS)홀딩스도 미디어렙을 설립했기 때문에 엠비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방송이 참으로 광고약탈 경쟁을 우려했는지는 믿기 어렵다. 그동안 무리한 시장 경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문화방송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제 잇속을 챙기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적인 소유구조만 갖고 있다고 저절로 공영방송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영방송은 권력과 자본에 대해 비판하고 감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 생태계를 조성하고 촉진할 책임이 있다. 미디어 생태계는 다양한 정보와 의견 그리고 문화를 만들고 소통하는 풍부하고도 다양한 미디어가 공존할 때 건강함을 유지한다. 미디어 다양성은 여론 다양성을 만드는 핵심 기반이고 그 기반 위에서 민주주의는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 미디어들은 광고재원을 통해 생존한다. 광고시장이 교란되면 많은 미디어들은 아예 뿌리가 말라 버린다. 4개의 종편이 직접영업을 하고 에스비에스와 문화방송이 각각 미디어렙사를 설립하여 광고시장을 쓸어가면 지방 방송과 신문 및 중소 매체는 당장 생존의 벼랑에 내몰릴 게 뻔하다. 그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문화방송이 미디어렙을 설립하여 사실상의 직접영업에 나서겠다는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무책임하다. 방송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점에서 종편 방송과 다를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문화방송의 미디어렙 설립은 종편이나 에스비에스홀딩스의 광고 쟁탈을 합리화해줄 우려도 크다. 앞으로 공영적인 미디어렙 법안을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번 의도가 그러한 치밀한 계산까지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종편이나 에스비에스가 아니라 공영방송 문화방송에 더 큰 비판의 화살이 돌아갈 것이다.
자사 미디어렙은 사실상 직접 광고영업으로 이어진다. 방송보도와 제작이 광고주인 자본과 유착하지 못하게 하는 칸막이 구실을 할 수 없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감시가 없다면 공영방송으로서는 그만두고라도 언론으로서 존재가치도 사라진다. 공영방송으로서 엠비시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소유구조만 공적인 무늬뿐인 방송이 될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 미디어렙 법안을 제정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중에 있다. 몇달 늦어진다고 해서 문화방송이 위기에 빠지는 것도 아니다. 미디어렙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논의가 이미 10년도 더 되었지만 아직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도 문화방송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독자적 미디어렙을 설립하겠다는 것도 몰염치하기 그지없다.
공공적 미디어렙 체계를 만들지 않고 있는 국회, 그리고 광고시장의 혼란을 방치하고 있는 방통위에도 큰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문화방송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공영방송으로서 책임의식이 있다면 종편의 폭력적인 시장질서 교란 행위를 막고 미디어 다양성과 방송의 공공성을 지켜주는 미디어렙 법안 제정에 함께 나서기를 국민들은 기대한다.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도 신념도 없는 경영진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다. 문화방송 구성원들 대다수의 건강한 의식과 민주적인 양심을 믿는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겠다는 태도를 버리고 이제 책임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광고비 몇푼에 공영방송의 영혼을 내팽개치지 말자.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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