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욱 신임 청와대 대변인이 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2014.2.5 / 청와대 사진기자단
석달 전 ‘뉴스 9’ 진행하던 민경욱 전 앵커, 청와대 대변인으로
공영방송 앵커가 ‘대통령의 입’ 노릇…기자들 ‘임명 철회’ 요구
공영방송 앵커가 ‘대통령의 입’ 노릇…기자들 ‘임명 철회’ 요구
박근혜 대통령이 5일 공석이던 청와대 대변인에 불과 3개월여 전까지 <한국방송>(KBS) 간판 뉴스 프로그램 <뉴스9>을 진행한 민경욱(51) 한국방송 문화부장을 임명했다. ‘친박 방송’이라는 오명을 들어온 한국방송, 기자의 직업 윤리에 걸맞지 않은 선택을 한 민 대변인, 청와대가 모두 입길에 올랐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민 대변인은 해외 특파원을 포함해 다년간 방송기자와 뉴스 진행자로서 활동해온 분으로, 풍부한 언론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을 국민께 잘 전달할 적임자”라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민 대변인은 이날 오후 인선 발표 직후 “제가 기자 생활을 오래 했으니 기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국민과 소통을 증진하는 데 일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 대변인은 1991년 한국방송에 입사해 워싱턴 특파원, <생방송 심야토론> 진행자, 앵커 등 주요 직책을 맡으며 얼굴을 알려왔다.
공영방송 메인 뉴스 프로그램 앵커 출신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것은 이례적이다.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 앵커였던 김은혜씨가 2008년 이명박 정부 초대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간 사례가 있지만 진행 시점으로부터 8년여 뒤다.
한국방송 윤리강령에는 “티브이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 그리고 정치 관련 취재 및 제작 담당자는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민 대변인은 2011년 1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뉴스9> 앵커였고, 4일에도 문화부장으로서 <뉴스9>에 출연했다. 그는 5일 오전까지도 한국방송 보도국 편집회의에 참여했고,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변인 선임 소감을 밝힐 때까지 한국방송에서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민 대변인이 뉴스를 진행한 시기에 한국방송은 대선이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등과 관련해 불공정 보도 논란에 시달렸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하는 뉴스의 배치 빈도가 높다는 이유로 ‘땡박뉴스’라는 비판도 나왔다. 민 대변인은 또 2011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에서, 주한 미국대사관 쪽이 2007년 한국방송의 이명박 대선 후보 다큐멘터리 제작 얘기를 그한테서 듣고 “민 기자가 이명박과 그의 동료들에게 완전히 설득당했다”고 평가한 대목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한국방송 내부에서는 뉴스 신뢰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방송의 한 기자는 “얼마 전까지 앵커였던 사람이 갑자기 청와대 대변인이 됐는데 시청자들이 과연 한국방송 뉴스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입사 14년차 한국방송 기자들은 성명을 내어 “마지막 남은 한국방송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행위”라며 박 대통령에게 대변인 선임 철회를 요구했다.
윤리강령 위반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한국방송은 “선출직으로 간 게 아니라 임명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윤리강령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최원형 석진환 기자 circle@hani.co.kr
새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된 민경욱 <한국방송> 문화부장이 앵커 시절 박근혜 대통령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있는 모습.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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