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경영위원 임명권 악용
극우 인물 요직 앉혀 방송장악
KBS·MBC 이사 과반 이상이
여당 추천 몫, 일방통행 갈등
BBC ‘전문성·’ 독 ZDF ‘견제’ 강해
“2/3 찬성 특별다수제 도입 절실”
극우 인물 요직 앉혀 방송장악
KBS·MBC 이사 과반 이상이
여당 추천 몫, 일방통행 갈등
BBC ‘전문성·’ 독 ZDF ‘견제’ 강해
“2/3 찬성 특별다수제 도입 절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의 회장과 경영위원들이 위안부의 존재를 당연시하거나 “천황이 신이 됐다”는 등 극우적 발언으로 국제적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공영방송이 정치권력에 휩쓸리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주는 이 사례는 국내외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정권의 방송 장악 시비가 끊이지 않고, 현재 <문화방송>(MBC) 사장 선임 절차가 진행되는 한국의 경우를 짚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엔에이치케이 인사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배경에는 경영위원회 중심의 지배구조가 있다. 엔에이치케이 경영위원회는 12명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총무성이 추천하고 국회 동의를 거쳐 총리가 임명한다. 경영위원들은 재계·과학·문화·교육 등 분야별 전문가들로, 이 중 8명은 일본 8개 지역을 대표한다. 이들은 회장 선임 등 경영 전반의 핵심적 의사 결정을 한다. 과거 굳건한 자민당 집권 체제에 가려 ‘방송 장악’ 문제가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경영위원이나 회장을 공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하게 나왔다. 그러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해 자신과 ‘코드’가 맞는 극우 성향 인사들을 경영위원에 앉히면서 엔에이치케이는 세계적 공영방송의 명성에 먹칠을 당하고 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나라마다 상이하다. 영국 <비비시>(BBC)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는 12명으로 구성되는 ‘비비시 트러스트’다. 문화부 장관이 전문성 있는 이사 후보들을 지명하고, 일반적 공직자 선임처럼 다각도의 검증을 거쳐 국왕이 임명한다. 정부가 이사 전원을 선발하지만, 정파적 이해보다 전문성을 선발 기준으로 삼아 비비시의 정치적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 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의 방송위원회에는 무려 77명의 위원이 있다. 주정부 16명, 연방정부 3명, 정당 12명, 개신교와 가톨릭 각각 2명 등 다양한 세력들이 저마다의 몫으로 운영에 참여하는 형태다. 비비시 트러스트가 명망가 중심이라면, 체트데에프는 복잡한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택한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언론학자들은 입을 모아 ‘정파성’의 문제를 지적한다. 여야가 나뉘어 힘을 겨루는 정치권의 고질적 대립 구도가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국방송(KBS) 이사회(11명)와 문화방송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9명) 이사들은 각각 대통령과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구성부터가 3 대 2의 여야 추천으로 나뉘고, 한국방송과 방문진 이사회도 각각 여야 추천 몫이 7 대 4, 6 대 3으로 갈린다. 결국 과반을 점한 정부·여당의 입김이 공영방송 사장 선임 등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언론학자들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특별다수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장 선임 등 민감한 사안은 과반이 아니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독일 체트데에프 방송위원회는 사장 선임에 5분의 3의 동의를 필요로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숫자를 대폭 늘려 이사들이 정치권에 ‘부채의식’을 덜 갖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제도 개선 방안들은 지난해 국회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됐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2월 중 진행될 문화방송 새 사장 선임은 이전처럼 방문진 이사회에서 다수결로 결정될 전망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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