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3월 26일자 8면 기사. 조선일보는 한 면을 털어 수상의 감격을 표현했다.
신문협회, 조선의 ‘채동욱 혼외아들’ 보도 ‘한국신문상’ 선정
“이것이 언론 본령” 자평…‘채동욱 찍어내기’ 보도는 소극적
“이것이 언론 본령” 자평…‘채동욱 찍어내기’ 보도는 소극적
<조선일보>는 26일치 8면을 자사의 ‘채동욱 혼외 아들 보도’가 한국신문협회가 주는 ‘한국신문상’을 받았다는 소식으로 채웠다. 이 신문은 지난해 9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혼외 아들을 숨겼다”고 대서특필했고, 이는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데 결정적이었다.
조선일보는 ‘탈선 권력에 용기있는 비판…이것이 언론본령’이라는 제목의 머리기사에서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파문’ 특종 보도는 정부와 권력에 대한 엄정하고 용기있는 감시·비판을 용기있게 밀어붙인 언론의 본령을 일깨워준 보도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권력자의 탈선된 사생활을 보도하려 할 때 필요한 덕목은 무엇보다 용기이며, 조선일보 편집국은 그런 용기를 보여줬다”는 문창극 심사위원장의 말도 인용했다. 또 “조선일보는 진실이 알려지기까지 외롭고 힘든 싸움을 치렀다”고 했다. 자화자찬을 넘어, 자사의 악전고투에 힘을 보태지 못할망정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다른 언론들을 꾸짖은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기에는 중대한 의문들이 남아있다. 조선일보 보도 초기부터 이런 의문들이 나왔지만 해소되기는커녕, 최근 수사 상황을 보면 궁금증이 더 커진다. 먼저 혼외자가 어떤 의미에서 언론이 다뤄야 할 중차대한 공적 관심사인가다. 조선일보 스스로도 과거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의 혼외자 소송 때 “그래서 어떻다는 것이냐”며, 지나친 사생활 보도에 “하수구 저널리즘”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이라는 의심을 받는 채아무개군의 학적부 기재 내용까지 들춘 보도 행태에 대해 여성단체들은 “아동인권 침해”라고 반발했다.
근본적으로는 누구를 위한 보도였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채 전 총장이 낙마한 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는 힘을 잃었고, 검찰에서는 ‘항명 파동’이 벌어지고,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채 전 총장 관련 보도가 청와대와 연결돼있지 않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최근에는 청와대가 지난해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 기소 이후 채 전 총장의 뒷조사를 전방위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의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에 대해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던 조선일보는 한국신문상 수상 관련 기사에서 “청와대조차 확인하지 못한 사실을 본지 보도가 확인했다”고 썼다. 청와대는 비리 첩보가 있어 필요한 사실관계를 알아봤다고 해명하지만, 동기야 어쨌든 조선일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앓는 이 같은 존재를 찍어내는 데 일등공신이었음을 어느 정도 자인하는 대목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스캔들도 스캔들 나름이다. 고위 공직자의 사생활 ‘관리’와 헌정질서 침해 중 어떤 게 중하고, 어떤 게 언론이 치열하게 매달려야 할 사안인지는 굳이 질문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왜 국정원과 청와대는 “탈선 권력”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