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녹취록’ 보도를 하고 있는 손석희 앵커. JTBC 갈무리
유족·경향신문, ‘뉴스룸’ 2부 시작 전 항의 했지만
“국민의 알 권리” 내세워 방송…‘무리한 보도’ 비판
“국민의 알 권리” 내세워 방송…‘무리한 보도’ 비판
종합편성채널(종편) <제이티비시>(JTBC)가 15일 ‘뉴스룸’ 2부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9일 숨지기 전 <경향신문> 기자와 나눈 대화가 담긴 음성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 보도윤리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경향신문은 즉각 “유족과 경향신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무단으로 방송했다”며 크게 반발했다. 경향신문과 유족은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경향신문과 제이티비시의 보도와 관계자 설명 등을 종합하면, 경향신문은 15일 성완종 전 회장과 경향신문 기자 사이의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했고, 다음날인 16일 신문지면에 대화 전문을 게재할 예정이었다. “유족의 동의를 받았으며, 고인의 육성 녹음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녹취록은 지면에 싣되 녹음 육성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경향신문 쪽의 설명이다.
그런데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디지털포렌식’ 작업에 참여했던 한 인사가 녹음파일을 제이티비시 기자에게 넘겨줬고, 제이티비시는 이날밤 ‘뉴스룸’ 2부에서 녹음 육성을 그대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이를 공개했다.
손석희 앵커(보도부문 사장)는 이날 뉴스를 진행하며 입수 배경과 공개 이유 등에 대해 “경향신문과 상관이 없고, 다른 곳에서 입수했다. 또다른 녹취록에 대한 오해를 가능하면 불식시키고 지금까지 일부만 전해져 왔던 것에서 가능하면 전체 맥락이 담긴 전량을 전해드려서 실체에 접근해보자, 이건 시민의 알 권리와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 뒤 취재기자와 함께 녹음파일을 단락별로 들어보고 이에 대해 분석을 하는 방식으로 전체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경향신문은 즉각 반발했다. 박래용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뉴스룸’ 2부가 시작되기 전 오병상 제이티비시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유족들이 녹음파일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며 방영 중단을 요구했다. 또 “경향신문 기자가 인터뷰한 녹음파일을 아무런 동의 없이 무단 방송하는 것은 타 언론사의 취재일지를 훔쳐 보도하는 것과 다름없다. 언론윤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오 국장은 “지금 방송 중단은 어렵다”며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내보냈다는 것이 경향신문 쪽의 설명이다.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의 장남 역시 제이티비시 보도국에 전화를 걸어 ‘방송을 중단해달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이날 제이티비시의 방송 뒤 곧바로 대화 녹취록 전문을 누리집을 통해 공개했다. 경향신문과 성 전 회장 유족 쪽은 제이티비시와 녹음파일을 제이티비시에게 넘겨준 김아무개씨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런 사정이 알려지면서, 온라인 공간 등에서는 제이티비시의 ‘무리한 보도’를 비판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제이티비시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웠지만, 녹음파일의 당사자라 볼 수 있는 경향신문과 성 전 회장쪽의 의사를 무시한 채 공개한 것은 언론 윤리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또 경향신문이 해당 내용을 보도해왔고 이미 다음날 지면을 통해 전문 공개를 공언한 상태에서, 제이티비시가 주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에 별다른 실익도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손석희 사장 취임 뒤 지상파 보도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해온 제이티비시 보도가 이번 사건으로 신뢰성에 타격을 입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온다.
제이티비시는 이에 대해 “본인 육성을 공개해 시청자들이 더 정확히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우리 보도의 취지이며, 이미 경향신문이 검찰에 넘긴 것을 정상적인 취재활동을 통해 얻었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며 “그러나 경향신문과 유족들이 문제를 제기했으므로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내부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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