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출범 뒤 심화된 ‘법 위의 협찬’
종합편성채널(종편) <엠비엔>(MBN) 미디어렙의 영업일지를 통해 드러난 방송계의 광고 영업 실태 가운데 ‘협찬’ 대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방송계에서 협찬을 ‘음성적인 광고’로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관련 법제도와 관리감독은 허술한 상태다.
방송광고 시장의 전체 규모가 제자리 걸음을 거듭하는 가운데에서도 협찬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가 낸 자료를 보면, 지상파 텔레비전의 경우 방송사업자들이 협찬으로 벌어들인 매출은 2012년 2997억원에서 2014년 3354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케이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광고 매출 대신 협찬 매출이 늘어나는 현상은 협찬을 ‘음성적인 광고’로 활용하는 방송계의 관행에서 비롯한다는 지적이다. “걸리면 간접광고, 안 걸리면 협찬”이라는 것이다.
방송광고 제자리걸음 속
지상파 등 협찬 매출은 증가세 간접광고와 경계 모호한데다
심의도 검증도 허술
협찬사 인터뷰·유리한 리포트 등
갖가지 꼼수 난무하고 있어
탈법 막을 법·제도 정비 시급 방송법에서는 공익성 캠페인, 공익행사, 프로그램 제작(시사보도·논평·시사토론 프로그램은 제외) 등 세가지 경우에 협찬을 유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세가지 중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마지막 경우인 프로그램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경비·물품·용역·인력 또는 장소 등을 타인으로부터 제공받는 협찬(=제작협찬)이다. 원래는 외주제작사들의 제작비 충당을 돕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지만, 2012년부터 방송사업자들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에까지 허용됐다. ‘협찬’은 광고효과를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구성해선 안되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에만 자막으로 협찬주의 명칭과 상호를 노출해야 한다. 이에 반해 간접광고(PPL)는 방송프로그램 안에서 상품을 소품으로 활용하여 그 상품을 노출시키는 형태의 광고를 말한다. 그러나 협찬과 간접광고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갖가지 ‘꼼수’가 난무하는 실정이다. 방송사들은 규제를 피하면서 광고주를 끌어들이기 위해 법제도나 행정적인 관리·감독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협찬 유치’에 골몰하고 있다. 이들은 협찬을 받은 뒤 프로그램 안에서 협찬주의 상호나 제품을 홍보에 가까운 방식으로 노출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협찬주의 화장품 매장에 들어가 화장품 고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거 사면) 망고나무 한 그루가 기부가 된다”, “향이 괜찮다” 등의 대화를 하는 장면과 해당 업체의 캠페인 문구 등을 내보내 심의에서 중징계(‘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당했다. 한 종편의 보도교양 프로그램에서는 협찬주인 영어교육업체 대표가 나와 해당 업체의 강의 화면과 교재 내용을 보여주며 영어교육 방법을 설명해주는 장면을 내보내 제재(‘주의’)를 당했다.
방송광고 업계에서는 아예 협찬과 간접광고를 묶어서 판매하는 방식도 만연해있다. 이렇게 ‘세트 판매’를 하면, 다양한 방식의 상품 노출이 가능해진다. 또 엠비엔렙 영업일지를 보면 뉴스 프로그램 등에서 협찬주인 기업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거나, 대기업들로부터 우선 협찬을 받은 뒤 프로그램별로 사후에 협찬 처리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협찬에 대한 행정적인 관리·감독은 아주 허술하다. 지상파와 종편의 경우 광고 매출은 미디어렙법에 의해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집계되지만, 협찬 매출은 방송사 스스로 제출하는 자료 이외에는 검증 방법이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해마다 방송사업자들로부터 재산상황을 제출받아 집계하는데, 종편 엠비엔과 <제이티비시>(JTBC)는 개국 이래로 ‘협찬 매출액’을 아예 따로 집계하지 않아 문제로 지적됐다. 지상파의 경우 협찬받은 프로그램이 제작비 기준을 지켰는지 확인하기 위해 방통위에 ‘제작비 검증 자료’를 제출하게 되어 있지만, 검증이 제대로 되는지는 의문이다. 한 사례로 <한국방송>(KBS) ‘전국노래자랑’의 경우 단 한 번도 방통위에 제작비 검증자료를 낸 적이 없지만 실제로는 공공기관 등의 협찬을 받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협찬은 별다른 심의도 받지 않는다. 간접광고와 뒤섞여 지나친 광고효과를 드러냈을 때에만 방심위 심의에서 가끔 제재를 받는 수준이다.
이렇게 협찬이 사실상 광고를 위한 우회로로 활용될 경우 시청자로서는 방송인지 광고인지 구분할 수 없는 프로그램들을 보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노동렬 성신여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프로그램의 질보다 협찬을 얼마나 받아오느냐가 제작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취급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신태섭 동의대 교수(광고홍보학과)는 “엠비엔렙 영업일지 내용에 비춰볼 때, 종편 출범으로 과열된 방송업계의 내부 경쟁이 방송사로 하여금 협찬 제도를 더욱 악용하도록 만들고 있다”며 “경비를 지원하는 협찬은 아예 간접광고에 포함을 시키는 등 협찬과 광고를 명확히 분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지상파 등 협찬 매출은 증가세 간접광고와 경계 모호한데다
심의도 검증도 허술
협찬사 인터뷰·유리한 리포트 등
갖가지 꼼수 난무하고 있어
탈법 막을 법·제도 정비 시급 방송법에서는 공익성 캠페인, 공익행사, 프로그램 제작(시사보도·논평·시사토론 프로그램은 제외) 등 세가지 경우에 협찬을 유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세가지 중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마지막 경우인 프로그램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경비·물품·용역·인력 또는 장소 등을 타인으로부터 제공받는 협찬(=제작협찬)이다. 원래는 외주제작사들의 제작비 충당을 돕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지만, 2012년부터 방송사업자들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에까지 허용됐다. ‘협찬’은 광고효과를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구성해선 안되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에만 자막으로 협찬주의 명칭과 상호를 노출해야 한다. 이에 반해 간접광고(PPL)는 방송프로그램 안에서 상품을 소품으로 활용하여 그 상품을 노출시키는 형태의 광고를 말한다. 그러나 협찬과 간접광고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갖가지 ‘꼼수’가 난무하는 실정이다. 방송사들은 규제를 피하면서 광고주를 끌어들이기 위해 법제도나 행정적인 관리·감독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협찬 유치’에 골몰하고 있다. 이들은 협찬을 받은 뒤 프로그램 안에서 협찬주의 상호나 제품을 홍보에 가까운 방식으로 노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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