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가 무르익으면서 뉴스 생태계 역시 생산과 유통, 소비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한편에선 진짜 뉴스가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 뉴스 생태계의 변화된 모습을 짚고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싣는다.
직장인 김현동(가명·39)씨는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회사에 있을 때 가끔 인터넷에 들어가 포털 첫 화면에 뜬 뉴스들을 훑어보지만, 눈길이 오래 머물진 않는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연예인 뉴스나 가십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때론 ‘낚시성’ 제목에 끌려 열어봤다가 아무 내용이 없어 화가 나기도 한다. 기업 관련 기사는 기업이 홍보하고 싶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 일쑤다.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낀 듯한 기사들이 여러 매체의 이름을 달고 올라오는 것을 보면 ‘역시나’ 싶다. 그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접하는 통로는 아침 출근버스에서 듣는 시사 팟캐스트다.
포털중심의 기형적 뉴스 소비로
언론사 클릭수 무한경쟁 내몰려
연예뉴스·선정기사 과도한 노출
심층탐사 뉴스는 검색에서 묻혀
질낮은 콘텐츠에 소비자도 불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공짜로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뉴스매체와 뉴스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독자들의 뉴스소비량도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뉴스의 위기’ ‘저널리즘의 추락’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연예기사·가십성기사, 어뷰징 범람, 저질광고 증가 등 건강한 뉴스 생태계를 위협하는 부작용이 심화하면서 ‘악화(나쁜 뉴스)가 양화(좋은 뉴스)를 몰아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뉴스생산량과 소비량이 증가한 것은 인터넷기술 덕에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문턱’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시대 이전인 1990년대까지 종이신문과 지상파 텔레비전 등 소수의 뉴스 공급자들이 뉴스시장을 좌우했다. 하지만 20여년 사이에 뉴스 공급자 수는 크게 늘어났다. 2014년말 기준으로 신문법에 의해 등록된 인터넷신문은 모두 5950곳, 네이버·다음카카오와 검색제휴를 맺은 언론사만 해도 각각 474곳, 793곳에 이른다. 인터넷방송, 팟캐스트, 블로그 같은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도 등장했다.
뉴스 유통 경로도 변했다. 과거에는 신문사와 방송사가 생산과 유통을 모두 담당했지만, 지금은 네이버와 다음 같은 포털업체가 주요한 뉴스의 유통 경로가 됐다. 뉴스 소비자들은 여러 매체가 생산한 뉴스를 인터넷에서 거의 무제한적으로 무료로 볼 수 있다. 과거 종이신문을 구독하지 않거나 티브이 방송 뉴스를 잘 보지 않던 사람들까지 이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 뉴스 소비량도 크게 늘어났다. ‘언론수용자 의식조사’(2014, 한국언론진흥재단) 결과를 보면 2011~2014년 사이 신문 열독률은 44.6%에서 30.7%로 급감했지만, 같은 기간 인터넷으로 신문기사를 읽은 비율까지 합친 ‘결합열독률’은 76.5%에서 78%로 오히려 올랐다. 인터넷의 발달은 보통사람들의 정보접근성과 발언권을 획기적으로 높인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한걸음 더 들어가보면 ‘인터넷 혁명’의 이면을 볼 수 있다. 최근 사람들이 뉴스를 가장 많이 접하는 통로인 스마트폰의 네이버 모바일페이지 첫 화면을 보면 정치·경제·사회 등을 모두 포괄하는 ‘뉴스’란과 방송
·연예 기사를 다루는 ‘연예’란, 스포츠를 다루는 ‘스포츠’란이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배치돼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2013년 펴낸 ‘한국의 인터넷 뉴스’를 보면 포털 뉴스 서비스의 뉴스 주제는 ‘스포츠·연예’(31.9%), ‘사회’(23.0%), ‘정치’(17%), ‘경제’(10.5%) 순서로 나타났다. 뉴스 소비 통로가 되는 포털의 ‘실시간 이슈’ ‘실시간 검색어’ 등의 서비스도 주로 연예, 스포츠 관련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어뷰징(같은 기사를 조금씩 바꿔 계속 올리거나, 실시간 검색어를 관련 없는 기사에 집어넣는 등의 행위)’ 역시 현재 뉴스시장의 주요한 문제점으로 꼽힌다. ‘국내 배우 송승헌과 중국 배우 리우이페이(유역비)가 열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6일, 포털 뉴스 서비스에서 ‘송승헌, 리우이페이’를 검색해보면 2000건이 넘는 기사가 뜬다. 당시 ‘노동개혁’을 앞세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지만, 포털·사회관계망 서비스는 송승헌·리우이페이 뉴스로 넘쳐났다. 한 언론사의 경우 열애설이 전해진 뒤 18시간 동안 ‘송승헌과 리우이페이가 사귄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를 100건도 넘게 올렸다. 최근에는 “우주탐사선 뉴호라이즌호가 명왕성에 접근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승옥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식으로 실시간 검색어 이슈들과 전혀 관계없는 연예인을 섞어서 기사를 쓰는 행태까지 등장해 입길에 놀랐다.
보도자료를 베낀 듯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내용의 기사들, 조회수 늘리기용으로만 의미가 있어 보이는 속보·단독 딱지들도 뉴스 소비자들이 단골로 지적하는 문제점들이다.
이런 가운데 정작 저널리즘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권력·자본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하는 기사는 설자리를 잃고 있다. 사회현상에 대한 심층·탐사기사, 주요한 공공정책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 기사 등도 뒷전으로 밀려난다. 수익에 쫓기는 언론사들이 생산을 해낼 여유도 없는데다, 선정적 기사에 밀려 포털에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도 못한다. 심층·탐사저널리즘을 표방하는 온라인 매체 <뉴스타파>의 박대용 뉴미디어팀장은 “우리가 재벌을 비판하는 보도를 하면, 포털 서비스에서는 금세 관련 기업이 낸 보도자료 등에 밀려 검색 결과에서 찾아볼 수조차 없게 된다”고 말했다. 때문에 뉴스타파는 뉴스 유통을 포털보다는 구글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주로 기댄다고 한다.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는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서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를 1점(매우 낮다)~5점(매우 높다)으로 물어본 결과, 2006년 3점이었던 신뢰도는 2014년 2.68점으로 추락했다. 뉴스 미디어에 대한 신뢰도를 측정한 결과에서도 모든 유형의 미디어가 신뢰도 하락 경향을 보였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현 뉴스 생태계에 대해 “포털도, 주류 언론도, 인터넷 언론도, 뉴스 이용자도 모두 행복하지 않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사들은 무한 경쟁에 시달리면서도 수익성은 떨어지고 있고, 뉴스 소비자는 질낮은 뉴스를 봐야 하고, 포털은 사회적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춘식 한국외국어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국내의 뉴스 소비 대부분이 포털 서비스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등 디지털 뉴스의 유통 구조가 기형적으로 형성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심층·탐사 콘텐츠는 찾아보기 힘들고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긴 수준의 질 낮은 콘텐츠들만 유통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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