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이 갑자기 사퇴했다. 그리고 반나절 만에 이희범씨가 새 위원장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인터넷 뉴스로 전해졌다. 이날 저녁 방송 뉴스들도 조 위원장 사퇴와 새 위원장 내정 소식을 전했다. 언론들은 신임 위원장 내정의 주체가 ‘평창조직위’라고 밝혔다. 그런데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정관을 보면 “위원장은 조직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위원총회에서 선임”하도록 돼 있다. 조직위원 수가 130명이나 되는데 이 사람들이 반나절 만에 의견을 모았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어느 방송 뉴스는 “다행히 문화체육관광부와 조직위원회가 조 위원장 사퇴 반나절 만에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새 조직위원장으로 내정했습니다”라며 내정의 주체가 문화체육관광부라고 보도했다. “다행히”라고까지 한 것을 보니 ‘원래’ 문체부가 위원장 내정에 관여하는 모양이다. 다음날인 4일에는 조직위 집행위원회가 열려 “출석위원 만장일치로 위원장 후보자로 이씨를 의결하고 위원총회에 부의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정관에 집행위원회가 위원장 후보를 추천한다는 규정은 없다. 앞으로 조직위원회 총회가 열리면 집행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조직위 위원들은 거수기가 되어 내정자를 만장일치로 ‘선출’하고 문체부는 정관에 따라 피선출자를 ‘승인’하게 될 것이다.
인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자리에 앉을 사람을 마음에 정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는 것이 내정이다. 그러나 자격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그것은 월권이나 권력 남용, 또는 짬짜미가 된다. 요즘 한국 언론에 등장하는 ‘내정 기사’는 추천위원회 등 권한을 가진 쪽의 결정을 알리는 것도 많지만, 권력기관이 해당 직위에 전문성이 없는 사람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려는 시도에 관한 것도 종종 눈에 띈다. 이 중에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 기관이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특정 인물을 내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이 이것을 당연시하면서 불법 또는 탈법적 행위가 지속된다.
방송 영역을 일례로 보자면, “내놓고 하는” 공영방송 사장 내정 기사는 김대중 정부 이후로 사라졌다. 노무현 정부 초기 사장 선임 권한을 가진 한국방송(KBS)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노 대통령이 특정인을 내정했었노라고 나중에 고백한 적도 있다. 이후에는 어떠한 청와대발 내정 기사도 폭로도 없으니 청와대가 공영방송사 사장을 내정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방송 및 유관 직위에서는 여전히 ‘내정 기사’가 나오거나, ‘내정설’이 나온 이후에 그 사람이 실제로 투표로 추천, 또는 선출되는 ‘낙하산 인사’가 흔하다.
불법·탈법적 내정, 아니 ‘낙하산 투하’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언론이 마땅히 할 일이다. “아무개가 내정됐다”고만 보도하고 말면 언론은 낙하산을 기정사실화하는 홍보도구에 불과해진다. “발표대로 알렸을 뿐이고, ‘원래’ 그 자리는 그렇게 뽑는 것”이라고 항변한다면 그 기자는 로봇이 대체해도 된다. 이런 기자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나서도 ‘벌거벗음’에 주목하지 못하고 ‘왕의 행차 기사 형식’에 맞추어서만 보도하고 말 것이다. 지난 1991년 <한겨레>가 당시 보건사회부 출입기자단의 촌지 수수 사건을 보도하기 전까지 촌지는 기삿거리가 안 되는 “원래 그런 것”이었다. 사회에 의미 있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잘못된 관행, 즉 “원래 그런 것”들에 대한 보도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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