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KBS <뉴스9>은 ‘위증 모의 의혹’을 ‘여야 공방’으로 다뤘다. KBS 방송 갈무리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공영방송의 보도 태도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나왔을 당시 안팎의 강한 비판에 직면했던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두 공영방송은 한동안 ‘국정파탄’ 사태 보도에 힘쓰는 듯한 태도를 취했으나, 최근 들어 보도량을 줄이고 주요 사안을 ‘여야 공방’으로 다루는 등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가 열린 뒤 ‘위증 모의’ 의혹이 불거졌다. 대통령 탄핵의 주요 증거가 된 최순실씨 소유 추정 태블릿 피시와 관련해, 새누리당 의원과 일부 증인 사이에 이것을 최씨가 아닌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의 것으로 몰고가자는 사전 모의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은 지난 19일 자사의 메인뉴스에서 나란히 이 사안을 다뤘는데, 두 방송 모두 여·야가 정치 공세를 벌이고 있다는 식의 ‘여야 정쟁’ 프레임을 썼다. 한국방송은 “야당은 이완영·이만희 의원이 증인들과 만나 위증을 모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고 한 뒤 “(여당쪽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고영태 증인을 두 차례 만났는데, 그러면 박 의원도 위증 모의를 한 것 아니냐고 맞불을 놓았다”고 전했다. 문화방송 역시 “(위증 모의 의혹에 대해) 야당은 즉각 공세에 나섰다”고 한 뒤 “(여당은) 사전에 증인을 만난 정황이 있는 박영선 의원도 위증 모의한 게 되느냐고 반문했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증언을 토대로 제기된 의혹과 ‘너도 마찬가지’라는 식의 항변을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다룬 것이다.
지난 20일 “태블릿 피시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전한 MBC <뉴스데스크> 보도. MBC 방송 갈무리
대통령 탄핵의 주요 증거인 태블릿 피시 자체에 대한 보도 태도를 놓고도 우려가 나온다. 그동안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쪽은 태블릿 피시가 최순실씨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왔고, 최씨 역시 태블릿 피시의 증거 능력에 흠집을 내는 전략을 써왔다. 문화방송은 20일 ‘모두 부인하는 태블릿 피시… 입수 과정 조사’ 리포트에서 “검찰이 확보한 태블릿 피시는 모두 2대인데, 주인은 없고 모두들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태블릿 피시 속 카카오톡 메시지가 최씨 소유라는 증거로 알려졌으나 검찰은 이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방송모니터 보고서’는 “최씨의 동선과 태블릿 피시의 이동기록이 일치한다는 점, 최씨뿐 아니라 친척의 사진까지 들어있다는 점 등 (최씨가 소유주라는) 여러 증거가 있는데, ‘태블릿 피시 흔들기’에 유리한 정보들만 모아서 보도했다”고 지적하고, “핵심 증거인 태블릿 피시에 흠집을 내 탄핵을 막으려는 시도”라고 풀이했다. 문화방송은 앞선 17일에도 태블릿 피시의 ‘소유주 공방’에 초점을 맞춘 ‘태블릿 피시의 주인은 누구? 증거 능력 공방’ 리포트를 내놓은 바 있다.
한국방송 역시 최순실씨의 첫 재판이 열린 19일 ‘태블릿 피시 감정 요청… 실소유자 ‘공방’’ 리포트를 내놨는데, 이에 대해 민언련은 “문화방송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한국방송도 ‘태블릿 피시 흔들기’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씨는 태블릿 피시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재판에서도 고수하고 있을 뿐인데, “새삼 이를 부각해 ‘소유자 논란’이 여전히 공방 사안인 것처럼 묘사했다”는 지적이다. 한국방송 안팎에서는 최근 일부 한국방송 이사들이 ‘태블릿 피시의 증거 능력을 문제삼아야 한다’는 논의를 했다는 말도 나온다.
두 공영방송의 보도 태도는 같은 지상파 방송이면서 민영방송인 <에스비에스>(SBS)와 대조된다. 최씨의 재판이 열린 19일,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은 관련 뉴스를 각각 7건, 9건 내보낸 반면, 에스비에스는 “특검이 박 대통령의 개인 계좌까지 추적해 직접 뇌물죄 적용을 검토한다”는 단독 보도를 포함해 11건의 관련 뉴스를 내보냈다. 에스비에스는 ‘국정파탄’ 사태를 거치며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을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쇄신을 단행했고, 최씨 일가와 삼성의 관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세월호 수사 외압 의혹 등에 대한 단독 보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공영방송 내부 구성원들 역시 ‘보도책임자 교체’ 등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두 공영방송은 아직까지 별다른 쇄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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