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준 쿠마르 카르키
‘지학순정의평화상’ 받는 네팔 아르준 카르키 박사
“평화는 빈곤과 불평등과 연결돼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지만 전쟁이 원인 가운데 하나인 빈곤 문제는 조금만 비용을 들여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9일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네팔인 아르준 쿠마르 카르키(48·사진) 박사(개발학)는 “빈곤은 일부 개별 국가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네팔농촌재건운동’(RNN) 대표이자 국제 최빈국 감시 엔지오인 ‘엘디시(LDC) 워치’의 공동의장인 그는 ‘제14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뽑혀 이날 한국을 방문했다. 이 상은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헌신한 고 지학순 주교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이 전세계 인권·평화운동가나 단체를 대상으로 수여한다.
카르키 박사는 네팔 북동부 산쿠와사바의 외진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10대 중반부터 민주화와 빈곤퇴치를 위해 싸워왔다. 왕정의 권위적인 지배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온 그는 17살 때부터 30여년 동안 32차례나 군과 경찰에 체포됐다. 2005~06년에는 정치적 탄압을 피해 영국과 벨기에를 떠돌아야 했다.
“빈곤은 가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인권 문제가 엉켜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1970년대 24개의 최빈국이 지금은 오히려 48개로 늘어났습니다.”
현재 유엔이 정한 48개 최빈국의 문제를 대변하고 해결하기 위해 세계를 누비고 있는 그는 자국의 정치적 이해를 고려한 원조나, 자국의 제품이나 기술을 사라고 강요하는 ‘조건부 원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원조받는 나라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 고려한 원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대국들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에 지원한 무기가 좋은 예입니다.”
대신 그는 원조받는 나라의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모두에게 자원이 돌아가는 것이 ‘좋은 원조’라고 정의했다. “공적개발원조(ODA)에 후발 주자로 동참한 한국에 대한 기대가 높습니다. 한국이 ‘좋은 원조’를 하게 되면 국제무대에서 정치적 위상이 높아질 것입니다.”
카르키 박사는 10일 저녁 7시 서울 세종호텔에서 열리는 시상식과 강연, 세미나에 참가한 뒤 13일 네팔로 돌아간다.
글·사진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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