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불교성지 꼽힌 바간지역
사원 야경 화려해질수록 숲 파괴
코이카 20년째 산림녹화사업 지원
대안학교 교사로 수학여행 간 몽골
푸른아시아 조림사업 끌려 ‘사표’
“아이 키우듯 한그루 한그루 소중”
사원 야경 화려해질수록 숲 파괴
코이카 20년째 산림녹화사업 지원
대안학교 교사로 수학여행 간 몽골
푸른아시아 조림사업 끌려 ‘사표’
“아이 키우듯 한그루 한그루 소중”
푸른아시아 미얀마지부 윤석진 팀장
“나무 심을 구덩이 하나를 파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려요. 땅이 너무 딱딱해서 삽이나 곡괭이로는 팔 수도 없고요. 쇠지주를 박아 딱딱한 땅을 부수는 방식으로 파냅니다. 비는 쥐똥만큼 오는데, 풀이 조금이라도 자라면 소나 염소가 다 뜯어먹어서 땅이 땡볕에 바짝 말라 굳은 탓이에요.”
미얀마의 건조지대에서 3년째 나무를 심고 있는 윤석진(38·사진) ‘푸른아시아’ 미얀마지부 팀장의 말이다.
바간(미얀마)/글·사진 이제훈 기자
윤 팀장이 2014년부터 나무를 심고 있는 곳은 미얀마 중부 바간 지역. 바간은 불교의 나라 미얀마의 첫 왕조가 11~13세기에 걸쳐 화려한 불교 문명을 꽃피운 세계 3대 불교 성지의 한 곳이다. 열대 몬순 기후 지역인 미얀마의 연평균 강수량은 2500~2800㎜인데, 바간 지역엔 한 해 550㎜밖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미얀마 전체 면적의 12.8%에 이르는 마궤·만달레이·사가잉 3개 주를 중심으로 한 중부 건조지역엔 전체 인구의 30% 가까운 1500만명이 산다. 이들의 대다수가 기후변화에 절대적 영향을 받는 농민이다. 그러므로 사막화는 자연뿐만 아니라 미얀마 농민의 삶도 망가뜨린다. 바간은 만달레이주에 있다.
바간은 어쩌다 이렇게 황폐해졌을까? 2011년 미얀마 군부의 개방 선언 이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바간의 너른 들판에 펼쳐진 수천개의 불교사원이 그려내는 환상적인 풍경과 무관치 않다. 빛에는 어둠이 있는 법. 불교사원을 짓는 데 쓸,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붉은 벽돌을 굽느라 바간의 울창한 숲이 망가졌다. 왕조의 중심지이니 사람이 모이고 당연히 농경지와 땔감이 필요했다. 그만큼의 숲이 또 사라졌다. 바간 건조화의 역사적 시원이다. 20세기 중후반 가난한 나라 미얀마는 ‘티크’ 등 목재 수출에 목을 맸고 그만큼의 숲이 또 사라졌다. 미얀마에선 지금도 목재 수출과 땔감으로 해마다 26만㏊의 산림이 사라진다. 농경지 개간으로 해마다 13만4000㏊가 또 사라진다. 그 영향으로 최근 30년간 우기가 40일이나 줄었다. ‘사람’은 사막화를 재촉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유엔은 지구 사막화의 원인으로 87%가 사람 탓, 13%만이 자연조건의 변화 때문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가 1998년부터 20년 가까이 이 지역의 산림녹화와 산림관리 역량 강화 사업을 지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 팀장은 푸른아시아가 2014년 5월 코이카와 바간 지역 240㏊의 조림사업 계약을 맺은 것을 계기로 그해 7월 미얀마에 처음 왔다. 푸른아시아는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한 아시아”를 모토로 내건,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공인 비정부기구다.
그는 바간에 오자마자 현장조사를 한 뒤 조림 예정지 외곽에 20㎞에 이르는 울타리를 쳤다. 지역 농민들이 기르는 소나 염소가 조림지의 풀을 뜯어먹지 못하게 하려는 조처다. 이어 건기인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4월에 걸쳐 15만개의 구덩이를 팠다. 가로세로 각 90㎝짜리 구덩이 하나를 파는 데 지역민한테 700차트(한화 700원 남짓)를 인건비로 건넸다. 우기인 2015년 6~7월 두 달에 걸쳐 나무 15만 그루를 심었다. 건조기후에도 잘 견디고 생장 속도가 빠른 오스트레일리아산 유칼립투스를 30% 정도 심고, 미얀마 자생종인 님·꼬꼬·미얀마샤 등의 나무도 고르게 심었다. “한국에선 조림사업을 할 때 주민 소득 증대 등을 고려해 과실수를 많이 심는데, 미얀마 정부는 사막화 방지가 최우선 과제라며 과실수가 아닌 생장 속도가 빠른 나무만 심어달라고 하더라고요.” 과실수를 심으면 지역 농민이 나무를 훼손할까봐 우려한 탓도 있는 것 같다고 그는 짐작했다.
나무만 심는다고 숲이 울창해지는 게 아니다. 바간 지역 농민들은 나무를 연료로 쓴다. 땔감으로 사라질 나무를 줄여야 했다. 코이카와 푸른아시아의 사업 내용에 조림지 주변 20개 마을에 화덕 보급이 들어 있는 이유다. “마을 사람들은 마당에 벽돌 세개를 엇갈려 놓고 그 위에 솥을 얹어 요리를 합니다. 열 손실이 너무 커요. 우리가 보급한 항아리형 화덕을 쓰면 열 손실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나무 훼손을 줄일 수 있는 거죠.”
심은 나무를 지키려면 화덕만으론 안 된다. “나무는 심고 나서 3년 정도는 정성스레 보살펴야 죽지 않고 땅에 자리를 잡습니다. 아이 키우는 거랑 다를 게 없어요.” 미혼인 그는 나무 가꾸기에서 아이 키우기의 정성을 미리 배우고 있다.
윤 팀장은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조경과 아주 거리가 멀다. 하지만 환경 문제엔 관심이 많았다. 대학 졸업 뒤 2004년부터 5년 가까이 강원도 춘천에 있는 중등과정 대안학교 ‘전인학교’의 교사로 지냈다. 그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꿀 계기가 2008년 찾아왔다. 대안학교 학생들과 함께 몽골로 생태여행을 떠나, 마침 푸른아시아가 조림사업을 하고 있는 몽골 바양노르에서 나무심기 봉사활동을 했다. “그때 ‘아, 앞으로 이 일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대안학교를 그만두고 푸른아시아의 몽골 사막화 방지 조림사업에 합류해 2010년까지 함께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귀국했다. 2014년까지 조경회사도 다니고 조경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그사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는 다시 조림 봉사에 나섰다.
바간 지역 조림사업은 9월이면 끝난다. 그러나 그는 미얀마를 떠나지 않을 생각이다. 푸른아시아가 계획하고 있는 미얀마 중부 건조지역인 마궤주의 남마욱 마을 생활개선 사업에 합류할 생각이다. “남마욱 마을은 아웅산 수치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의 고향이에요. 군부정권 시절에 탄압을 많이 받아 소외된 지역입니다. 바간은 불교 문화유산이 많아 그나마 미얀마 정부와 세계 각국의 관심이 높은 편인데, 남마욱 마을은 그렇지 못해요.”
그는 미혼일까 비혼일까? “아, 저는 비혼 아니고 미혼이에요. 사랑하는 사람 만나 결혼하면 좋지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팔자니, 아무래도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이 많은 분이 아니면 어렵겠죠? 주변 분들도 대체로 그렇게 만나더라고요.” 사람 좋게 생긴 윤 팀장은 나무를 함께 심을 반려를 만날 수 있을까?
nomad@hani.co.kr
푸른아시아 미얀마지부 윤석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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