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과 암 등으로 투병해 온 일본군 ‘위안부’ 김분선 할머니가 10일 오후 4시45분께 숨을 거뒀다. 향년 82. 김 할머니는 지난달 초 대전에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고통을 호소, 119 구급대로 병원으로 옮겨진 뒤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해왔다. 경북 칠곡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열다섯 나이인 1937년 친구들과 나물을 캐러 들판에 나갔다가 고무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타이완의 위안부 수용소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 1993년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받은 피해자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고, 15년 동안 수많은 증언과 수요집회, 일본군성노예전범국제법정 등을 통해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부터 폐암과 방광암으로 투병해오다 평생의 소원이던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숨졌다. 대구 곽병원 영안실, 장례식 12일 오전 9시.(053)252-0739.대구/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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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안부 김분선 할머니 |
노환과 암 등으로 투병해 온 일본군 ‘위안부’ 김분선 할머니가 10일 오후 4시45분께 숨을 거뒀다. 향년 82. 김 할머니는 지난달 초 대전에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고통을 호소, 119 구급대로 병원으로 옮겨진 뒤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해왔다. 경북 칠곡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열다섯 나이인 1937년 친구들과 나물을 캐러 들판에 나갔다가 고무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타이완의 위안부 수용소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 1993년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받은 피해자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고, 15년 동안 수많은 증언과 수요집회, 일본군성노예전범국제법정 등을 통해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부터 폐암과 방광암으로 투병해오다 평생의 소원이던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숨졌다. 대구 곽병원 영안실, 장례식 12일 오전 9시.(053)252-0739.대구/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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