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23 18:26
수정 : 2019.07.2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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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백일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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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김백일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교수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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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백일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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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의 교수였던 김백일 선생이 지난 15일 폐렴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 그의 발자취를 더듬는 자리에서 굳이 ‘교수’ 직함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흔한 기준으로 따진다면, 김 선생은 공식 자격을 갖춘 교수는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생활 전선에 뛰어든 그는 교수 자격에 필요한 전문 학위를 취득한 적이 없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그는 천생 학자요 교수였다.
김 선생은 학부에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우리 대안대학에서 ‘역사란 무엇인가’, ‘한국근현대사의 쟁점’, ‘자본론 강독’ 같은 과목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주경야독의 삶을 살아온 덕분이었다. 김 선생은 금융기관에 근무하던 1987년 한국역사문제연구소의 역사 강좌를 수강하고 이듬해 20∼40대 노동자들과 함께 ‘바른 역사 인식과 실천을 위한 모임’을 결성해 매주 독회를 여는 등 독립연구자로서 끈질긴 공부를 실천해왔다. 훗날 그가 역사문제연구소의 부소장
과 운영위원으로 뽑히고, 2000년대초부터 2012년까지 10년 넘게 역사비평사의 대표직을 수행하게 된 것도 그런 활동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김 선생이 대안대학으로 건너온 것은 역사문제연구소의 운영위원을 그만 둔 2015년, 그때부터 그는 교과위원회 회의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이듬해부터 우리의 요청으로 역사 관련 강의를 맡기 시작했다. 비인가 교양대학으로서 모든 과목을 통섭과 융합의 원리에 따라 운영하는 우리 대학이 지금도 겪는 어려움의 하나는 믿고 과목을 맡길 교수 요원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런 처지에 김 선생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김 선생의 독서량과 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언제 저런 책을 읽었을까 싶을 정도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영역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규직 교수 30년 경력의 인문학 전공자인 나 역시도 그 앞에서는 스스로 지식의 폭과 양이 너무 좁고 적다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김 선생은 경제학에도 고전음악에도 소양과 조예가 깊었다. 한국문학은 물론 세계문학의 대표작, 특히 일본 현대문학에 대한 관심이 유달리 많았다.
김 선생의 별세는 우리 대학으로서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이요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동료 교수들도 그렇지만 학생들이 받은 충격이 컸다. 학생들과 함께 <자본론> 세미나와 역사 세미나 등을 운영해와 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자신이 가르치던 <역사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기 시작한 터이기도 했다. 요즘 역사학계의 관심사인 ‘거대사’를 역사유물론과 접목시킨 강의계획서를 보고 우리의 기대도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김 선생은 최근에 새로운 지식인 유형으로 등장한 ‘독립연구자’의 선배로 꼽힌다. 우리 대학에도 독립연구자의 길을 걸으려는 재학생과 졸업생이 제법 있다. 김 선생의 학문 사랑이 우리 교수들과 학생들에 의해 계속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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