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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대혜·고봉 선사 옛터전마다 ‘지금 여기’ 삶이

등록 2008-03-17 19:08수정 2008-03-17 19:21

화두선 수행법의 문을 연 대혜선사가 머물던 경산사의 선방에서 순례객들이 참선하고 있다.
화두선 수행법의 문을 연 대혜선사가 머물던 경산사의 선방에서 순례객들이 참선하고 있다.
선의 원류 찾아 중국 사찰을 가다
항저우 천목산·경산 깊은 산속 용맹정진 흔적
상저우 시내 천녕사엔 ‘삶속 깨달음’ 설법 울림
시공 초월한 화두선 가르침을 선객들에게 ‘선물’
지난 10~13일 한국의 선객 108명이 중국의 사찰 순례에 나섰다. 조계종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이 마련한 ‘선(禪)의 원류를 찾아’ 나선 이들이다. 참가자들은 고우 스님(경북 봉화 금봉선원장)과 무비 스님(부산 범어사 승가대학원장)으로부터 ‘화두선 지침서’격인 <서장>과 <선요> 등을 배운 이들이다. 이들은 화두선이란 독특한 수행법의 문을 연 대혜 종고(1089~1163)와 화두선의 요체를 간명하게 보여준 고봉 원묘(1238~1295)가 머무르던 옛터전을 찾아 나섰다.

천목산으로 가는 길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길인 것만 같다. 양의 창자처럼 끝 없이 돌고 도는 산길을 버거워하는 소형버스를 타고 오르고 또 오르다보면 ‘천목’(天目·하늘의 눈)이란 그 이름이 허언일 것이란 한 생각은 어느새 뚝 떨어지고 만다. 중국 동남부 항저우가 낙원으로 불리는 것은 단지 미인 서시와 서호 때문만은 아니다. 이처럼 능히 호랑이가 살 만한 깊고 높은 산이 있기 때문이다. 해발 1500미터 고지에 오르니 아직도 눈이 쌓여 있어 완연한 봄날인 산 밑과는 다른 세상이다. 700여년 전 말년 15년을 이곳에서 살다간 고봉과 이들은 숨을 나누었을까. 정상에서부터 걸어 내려가는 오솔길 인근엔 수령 500년이 넘은 삼나무와 전나무들이 하늘에 닿을 듯 솟아 고봉의 기개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정상에서 20여분을 내려오니 고봉이 머물렀던 개산노전(開山老殿)이다. 산도 같은 산이 아니요, 눈도 같은 눈이 아닐 터다. 수억년 동안의 무정물이 고봉의 ‘개산’(산문을 열다)으로 이처럼 순례객이 찾는 빛이 되었다. 개산노전엔 고봉과 그의 수제자인 중봉 선사와 단애 선사의 상이 불상을 대신하고 있다. 육근(눈, 귀, 코, 혀, 몸, 생각) 경계 밖의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고봉의 손엔 보검이 쥐어져 있다. 날 선 검엔 귀신은 물론 석가조차 붙을 곳이 없다.

고봉선사가 은거하던 천길 낭떠러지 위의 ‘죽음의 관문’ 사관.
고봉선사가 은거하던 천길 낭떠러지 위의 ‘죽음의 관문’ 사관.
가파른 산길을 따라 거대한 나무에 둘러싸인 중봉 묘원을 지나 한참을 내려오니 천길 절벽 위에 한 동굴이 있다. 사관(死關)이다. 고봉은 천하 사람들이 자신을 떠받들며 찾아들자 천목산으로 숨어들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그를 찾아들었다. 고봉은 어찌해서 이 천길 낭떠러지 위로 숨어들어 ‘죽음의 관문’을 설치했을까. 석가도 끊지 못하는 남의 업장을 어찌 고봉인들 끊을 수 있겠는가. 오직 스스로 생사의 사슬을 끊어낸 자만이 이 사관을 날아오를 수 있었을 터다. 이번 순례 길을 이끈 고우 스님은 폐의 대부분을 잘라냈으나 고산준령을 앞서 넘어서고, 무비 스님은 5년 전 온몸이 마비돼 깨어나 선(禪)·교(敎)를 초월해 사자후를 토하고 있으니, 어찌 죽고 사는 것이 옛글에만 있다고 할 것인가. 그러니 스스로 내면을 돌이켜 살활자재(죽고 사는 것이 자유로움)함을 얻지 못한 채 오직 고봉의 빛만을 쫓아오는 불나방들을 고봉이 어찌 달려가 반겼을 것인가.

하산만 세 시간 넘게 걸린 천목산 산행의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오른 경산의 깊이도 천목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고우 스님의 절친한 도반으로 천성산에 은거해 사는 상현 스님도 “평생 이렇게 험한 산은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다. 차밭 동산이 이어지더니 거대한 산등성이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밭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대밭 머리 800미터 고지에 경산사가 있다. 고봉이 태어나기 75년 전 화두선의 개창자 대혜가 열반한 곳이다. 대숲 바람 이는 경산사 선방에 들어서니 이 마음 속 대혜가 깨어나는 듯 모골이 송연하다. 평평한 방에 앉아 좌선하는 한국의 선방과 달리 사방 벽 아래로 길게 놓인 마루 바닥에 앉도록 방석이 깔려 있다. 천년 전 대혜의 체취를 그리는 순례객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하나둘씩 좌정하고 앉는다. 그러자 경북 문경 대승사 선원장 철산 스님이 죽비를 잡는다. 1년에 두 차례씩 21일 동안 출재가자들이 일체 눕지 않고 참선하도록 용맹정진을 이끄는 투철한 선승의 죽비 소리에 천만 번뇌가 싹둑 잘려나간다. 침묵 속에서 천년이란 시간과 한국-중국의 시공을 초월한 이심전심의 빛이 밝혀진다. 참선을 마친 무비 스님은 20여분의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이번 순례 최고의 선물이었다”며 감격을 감추지 않는다.

대혜가 말년에 이 깊고 깊은 산에 은거했지만 그는 중생의 마음 길을 끊을 뿐 결코 공부 길을 막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세간살이의 돈벌이와 벼슬길에 평생 찌들어 살면서도 수행해보겠다는 재가자들을 위해 보낸 편지 모음집은 <서장>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번 순례에 함께한 스님들.
이번 순례에 함께한 스님들.
마지막 순례지는 대혜가 견성한 곳이자 고봉이 ‘잠이 깊이 들어 꿈도 생각도 없고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때에 주인공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결정적 화두를 받은 곳이다. 그런데 두 선사의 삶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된 천녕사는 천목산도 경산과 같은 산중이 아닌 수저우 인근 상저우 시내에 있다. 그야말로 세간의 한가운데다.

견성 뒤에도 15년간 귀양살이를 할 만큼 동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면서, ‘만약 일상 생활을 떠나서 따로 나아갈 곳이 있으면 이것은 물결을 떠나서 물을 구하는 것’이라며 삶 속에서 단박 깨달음을 설파했던 대혜의 삶을 전해주는 상징적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심산유곡도, 선사의 말씀도 마음 밖의 소음일 뿐인가. 천녕사 순례를 마치고 버스에 오른 전재강 (동양대) 교수가 “큰스님(고우스님)이 내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고우 스님으로부터 선을 배워 <서장>과 <선요>의 주해를 단 책을 펴낸 그의 배은망덕한 말에 고우 스님이 미소 짓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천릿길임에도 털끝만큼도 떨어지지 않은 ‘지름길’을 열어준 경산(徑山·‘지름길’산)이 옛선사의 말처럼 드디어 천리의 시공을 넘어 ‘지금 여기’에서 보여준다.

‘봄을 찾기 위해 세상을 다 돌아다니다 지쳐 돌아와 앞마당에 들어서니 뜰에 매화꽃이 활짝 피어 있구나.’

중국 항저우·상저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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