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궤 환수위 관계자들이 3일 의궤가 보관돼 있는 일본 궁내청 도서관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왼쪽). 4일 일본 관방성을 방문한 환수위의 김의정·이종걸·김원웅 공동대표와 혜문 스님이 조선왕실의궤 환수 요청서를 야마다 메츠로 조사역에게 전달하고 있다(오른쪽).
일본 왕궁에서 만난 ‘조선왕실의궤 열람기’
3일 오후 3시 도쿄 시내 아키히토 일왕 부처를 비롯한 왕족들이 사는 왕궁.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 도서관에 한국인 일행이 들어섰다. 이들의 목적은 <조선왕실의궤> 열람. 서명록에 적힌 이들의 이름은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공동대표인 조계종 중앙신도회 김의정 회장, 김원웅 전 의원, 이종걸 민주당 의원,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과 강수구 사무국장, 중앙신도회 이상근 사무총장 등이었다.
명성황후 장례·순종 결혼식 등
72권 중 고종시대 6권과 만나
까다로운 절차에 1시간 제한
우리 것 보며 남의 감시받다니 왕궁은 일왕이 살고 있는 곳이기에 일반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 이들은 애초 <조선왕실의궤(儀軌)>의 열람을 제한하다 월정사 등 한국 불교계가 <조선왕실의궤> 오대산 사고본의 원래 관리자였던 점을 들어 열람을 요구하자 분쟁이 커지는 것을 무마하기 위해 열람을 허용했다. 열람 절차는 매우 까다로웠다. 카메라는 물론 필기도구도 갖고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기 전 소독기에 손을 넣어 소독해야 한다. 직원이 신줏단지 모셔오듯 가져온 의궤의 겉표지는 삼베로 검게 물들여져 있었다. 또 책을 쉽게 들 수 있도록 별도의 문고리가 달려 있다. <조선왕실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의 주요 의식과 행사 준비과정 등을 상세하게 적고 그림으로 그려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 왕가의 의례와 문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책자다. 이날 방문단이 열람을 신청한 의궤는 이곳에서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진 72권 가운데 고종시대의 것 6권이다. 방문단이 가장 먼저 펼쳐본 것은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였다. ‘개국 504년 을사 10월’이라고 적힌 표지의 이 책엔 일인들에 의해 살해된 뒤 주검조차 찾지 못한 채 2년 만에 치러진 국장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이 모두 문자로 돼 있는 책이라면 의궤에는 화공들이 직접 그린 유색 그림이 있는 게 특징이다. 국장에 참석한 한명 한명의 직책과 입은 옷, 그가 든 물건과 그의 자세까지 세세히 그려져 있다. 이 책엔 무려 그림만 100여쪽에 달한다. 책 말미엔 ‘대정(大正) 5년 조선총독부 기증’이라고 적혀 있다. 오대산 월정사 사고 등에 보관 중이던 의궤를 약탈한 조선총독부가, 이를 일본 왕실에 기증한 것이다.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의 주역인 혜문 스님은 “<조선왕실의궤>는 세계의 어떤 왕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왕가의 의식과 풍습을 꼼꼼히 그려놓아 일본 왕실에 아주 요긴할 것으로 본 조선총독부가 이를 일 왕궁으로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펼쳐본 <와세자가례도감의궤>는 상·하권 두 권이었다. 순종을 장가보내는 과정을 기록한 이 책은 상권이 360쪽, 하권이 238쪽에 이르며, 상권엔 70여쪽에 혼례식 전 과정에 그려져 있다. 기록들을 살펴본 김원웅 대표는 “어떻게 이렇게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기록문화의 꽃을 찬란히 꽃피웠던 나라가 총칼 앞에 그토록 무력하게 주저앉아버렸는지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보인소도감의궤>엔 궁궐에 불이 나 소실된 옥쇄를 다시 만드는 과정이 그림과 함께 상세히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국장도 이 의궤의 기록에 따라 만들어진다. 왕을 추대하는 <추존의궤>, 왕이 등극하는 <대례의궤> 등에선 그 시절 쓰였던 그릇과 다기, 주전자 등이 문양까지 상세히 그려져 있다. 그러는 사이 열람 제한 시간 1시간이 다 됐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평생 차문화를 연구해온 명원문화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김의정 회장은 “우리 것을 일본 왕실에 와야만 보는 것도 기막힌데, 이마저도 마음대로 볼 수 없고 일본인들의 감시와 제한을 받으니 참담한 심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책을 열람한 뒤 일왕실이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가 72권이 아니라 80권이라는 설에 대해 물으니 고서 책임자는 “잘 알지 못한다”거나 “취재에는 응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도쿄/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72권 중 고종시대 6권과 만나
까다로운 절차에 1시간 제한
우리 것 보며 남의 감시받다니 왕궁은 일왕이 살고 있는 곳이기에 일반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 이들은 애초 <조선왕실의궤(儀軌)>의 열람을 제한하다 월정사 등 한국 불교계가 <조선왕실의궤> 오대산 사고본의 원래 관리자였던 점을 들어 열람을 요구하자 분쟁이 커지는 것을 무마하기 위해 열람을 허용했다. 열람 절차는 매우 까다로웠다. 카메라는 물론 필기도구도 갖고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기 전 소독기에 손을 넣어 소독해야 한다. 직원이 신줏단지 모셔오듯 가져온 의궤의 겉표지는 삼베로 검게 물들여져 있었다. 또 책을 쉽게 들 수 있도록 별도의 문고리가 달려 있다. <조선왕실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의 주요 의식과 행사 준비과정 등을 상세하게 적고 그림으로 그려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 왕가의 의례와 문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책자다. 이날 방문단이 열람을 신청한 의궤는 이곳에서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진 72권 가운데 고종시대의 것 6권이다. 방문단이 가장 먼저 펼쳐본 것은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였다. ‘개국 504년 을사 10월’이라고 적힌 표지의 이 책엔 일인들에 의해 살해된 뒤 주검조차 찾지 못한 채 2년 만에 치러진 국장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이 모두 문자로 돼 있는 책이라면 의궤에는 화공들이 직접 그린 유색 그림이 있는 게 특징이다. 국장에 참석한 한명 한명의 직책과 입은 옷, 그가 든 물건과 그의 자세까지 세세히 그려져 있다. 이 책엔 무려 그림만 100여쪽에 달한다. 책 말미엔 ‘대정(大正) 5년 조선총독부 기증’이라고 적혀 있다. 오대산 월정사 사고 등에 보관 중이던 의궤를 약탈한 조선총독부가, 이를 일본 왕실에 기증한 것이다.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의 주역인 혜문 스님은 “<조선왕실의궤>는 세계의 어떤 왕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왕가의 의식과 풍습을 꼼꼼히 그려놓아 일본 왕실에 아주 요긴할 것으로 본 조선총독부가 이를 일 왕궁으로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펼쳐본 <와세자가례도감의궤>는 상·하권 두 권이었다. 순종을 장가보내는 과정을 기록한 이 책은 상권이 360쪽, 하권이 238쪽에 이르며, 상권엔 70여쪽에 혼례식 전 과정에 그려져 있다. 기록들을 살펴본 김원웅 대표는 “어떻게 이렇게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기록문화의 꽃을 찬란히 꽃피웠던 나라가 총칼 앞에 그토록 무력하게 주저앉아버렸는지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보인소도감의궤>엔 궁궐에 불이 나 소실된 옥쇄를 다시 만드는 과정이 그림과 함께 상세히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국장도 이 의궤의 기록에 따라 만들어진다. 왕을 추대하는 <추존의궤>, 왕이 등극하는 <대례의궤> 등에선 그 시절 쓰였던 그릇과 다기, 주전자 등이 문양까지 상세히 그려져 있다. 그러는 사이 열람 제한 시간 1시간이 다 됐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평생 차문화를 연구해온 명원문화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김의정 회장은 “우리 것을 일본 왕실에 와야만 보는 것도 기막힌데, 이마저도 마음대로 볼 수 없고 일본인들의 감시와 제한을 받으니 참담한 심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책을 열람한 뒤 일왕실이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가 72권이 아니라 80권이라는 설에 대해 물으니 고서 책임자는 “잘 알지 못한다”거나 “취재에는 응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도쿄/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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