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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대중이 스님들의 책에 열광하는 이유는?

등록 2013-11-29 20:24수정 2013-11-30 13:33

법륜 스님이 지난 3월20일 서울시 도봉구민회관에서 열린 ‘희망세상 만들기’ 즉문즉설에 모인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토회 제공
법륜 스님이 지난 3월20일 서울시 도봉구민회관에서 열린 ‘희망세상 만들기’ 즉문즉설에 모인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토회 제공
[토요판] 스님들의 인기 열풍
미래 기대 잃어버린 대중은 ‘내 마음속 평화’를 원하나

지난 20일 오전 경기도 구리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법륜 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에 1000명 넘는 사람이 몰렸다. 즉문즉설 현장에서 지켜본 법륜 스님의 이야기는 그의 책 <인생수업>에 나온 것과 다르지 않았다. 법륜 스님은 때로는 변호사였고, 고민 해결사였다.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지 말라며, 그렇게 살다 보면 국가가 저지르는 범법 행위에 침묵하게 된다고 다그치는 모습에서 사회의 정의가 무엇인지, 역사와 민족에 대해 성찰하는 큰스님의 혜안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한다며 ‘엄마의 의무’를 ‘여성의 권리’보다 강조했고, 자신을 성폭력 피해자라고 밝힌 여성에게는 ‘왜 폭력을 거부하지 못했는지’ 직설적으로 묻기도 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은 여성 친화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중년 여성을 중심으로 아이돌 가수의 ‘팬덤’(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문화현상)을 연상시키는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내용을 담은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하루 평균 6만6300회를 넘어섰고 <인생수업>은 7주째 베스트셀러 1위(한국출판인회의 집계)를 기록하고 있다.

이날 2시간15분의 긴 대화를 마치고 만난 청중들에게 스님에 대해 물었다. 40~50대 주부라고 밝힌 이들은 스님을 좋아하는 이유로 “일상의 고민을 쉽고 편안하게 설명해줘서”, “미처 알지 못한 인생의 정답을 들려주고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게 도와줘서”라고 답했다.

스님들의 인기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나온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지금도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고, 법륜 스님의 다른 책 <엄마수업>, <스님의 주례사>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이외에도 정목 스님의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청전 스님 <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 마가 스님 <알고 보면 괜찮은> 등 출판 시장에 스님의 잠언이 담긴 서적은 쏟아진다.

유튜브 조회수 하루 평균 6만
‘인생수업’ 7주 연속 종합1위
중년 여성 사이에서 법륜 스님은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 얻는 중

“대중은 스스로 일어서는 대신
초월자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일상의 행복과
짧은 위로에 만족한다”

요즘 대중은 왜 스님의 책을 좋아하는 걸까. 일상의 언어로 나의 고민을 친절하게 들어준다는 점이 꼽힌다. 법륜 스님의 책 3권을 펴낸 김수영 ‘휴’ 편집인은 요즘 대중이 추구하는 스님의 이미지가 과거의 스님들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저 높은 곳에서 고담준론을 펼치는 고승보다, 나의 삶과 동떨어진 히말라야 고원에서 수행을 하는 수도자보다, 친근하게 내 일상과 내 가족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스님을 대중은 선호한다.

여러 스님의 책이 출판 또는 강연 시장에 나와 있지만 유독 법륜 스님과 혜민 스님이라는 두드러진 ‘스타 스님’이 등장한 것도 같은 이유다. 두 스님은 다른 스님들과 달리 도시에 머물며 대중과 잦은 접촉을 한다. 조용히 몸을 감추기보다 앞장서 대중과 세상을 향해 말을 건다. 대중은 스님에게서 ‘나’를 끊임없이 투사한다.

스님의 높은 인기가 함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구조적 모순이 심화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찾아볼 수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스님들의 인기를 ‘한국 사회의 생기 없음’에서 찾았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출판 시장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비롯한 스님 열풍이 불었던 것처럼, 오늘을 사는 대중도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모순에 분노하고 이를 해결하기보다 스님 말씀대로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짧은 위로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여러 차례 경제위기를 겪은 대중은 미래에 대한 기대나 성공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 그들의 목표는 지금 가진 것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그 목표는 스님들이 말하는 ‘내 마음속 평화’와 잘 맞는다.

또 ‘초월적 존재’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드러내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철학자 강신주씨는 거대한 세상의 논리에 굴복하고 패배해온 대중이 스스로 일어서는 대신에 지금 초월자를 선택했다고 본다. 반자본주의적이며 욕망에 초탈한 이미지의 스님이 불쌍한 우리를 안아주는 것. 세속적 관계에 매이지 않은 독신의 이미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신적인 사람의 아우라를 가진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와도 겹친다.

유행처럼 뜨고 지는 멘토 열풍의 하나로 보는 지적도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문제의 답을 찾기보다 누군가 답을 알려주기를 원한다. 세속적인 이야기를 스님이 하니까 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스님을 향한 대중의 열망을 ‘한시적’이라고 평가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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