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이주 희망 여부
도시환경정비·재개발 압력에 밀려 집중적 철거대상
“가난한 이웃끼리 서로 의지” 55% 이주 원치 않아
“가난한 이웃끼리 서로 의지” 55% 이주 원치 않아
“쪽방 동네엔 무료급식소, 반찬거리 챙겨주는 교회, 급할 때 단돈 몇 만원이라도 급전을 돌려주는 이웃들이 모여 있으니, 여길 떠나기가 힘들어.” 서울역 인근 ‘쪽방촌’에서 반평생을 보낸 박아무개(71·여)씨는 ‘재개발’ 얘기가 들릴 때면 ‘쪽방 이웃’ 생각에 혀를 찬다.
9일 전국쪽방재생포럼이 서울 중구 정동 민주화운동사업회 교육장에서 연 ‘쪽방주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열린 포럼’에서도 대책 없는 쪽방 철거의 문제점이 집중 거론됐다. 포럼은 이날 “쪽방 주민은 보증금 마련과 비현실적인 자격 조건 때문에 정부가 약속한 임대주택 입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쪽방 철거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 건설교통부가 실시한 서울 용산·영등포구 쪽방 871가구 주거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쪽방을 떠날 생각이 없다”는 응답이 54.8%로 절반을 넘었다. 그 이유는 대개 △보증금 마련의 어려움 등 경제적 이유 △쪽방 등 극빈층 주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복지 서비스 네트워크 △가난한 이웃끼리 서로 돕는 사회적 연대 등이었다. 김선미 성균관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은 포럼에서 “쪽방 거주민들은 대체로 홀로 사는데, 단독 거주 기간이 평균 20년 가량에 이른다”며 “가족이나 친지가 없거나 왕래하지 않는 비율이 85%에 이르러 사적 관계망은 이웃이 거의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기댈 만한 혈연 관계가 전혀 없는 극빈층에게 ‘쪽방 생태계’는 마지막 사회안전망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쪽방 생태계는 교통이 편리한 도심·부도심에 자리잡고 있어, ‘뉴타운’ 등 재개발 압력에 쓸려나가고 있다. 2005년에는 서울 남대문로5가동 쪽방촌이 철거됐고, 영등포동 쪽방들은 2003년부터 올해까지 순차적으로 철거에 내몰렸다.
이날 포럼에서는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 대책이 현장과 떨어져 겉돌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총리실은 쪽방 주민 등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1만1천여 가구에 대해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등의 기본 대책을 지난 5월 확정했다. 하지만 지난달 건교부와 대한주택공사 등이 쪽방 주민 등에게 임대주택 10여가구를 공급하려던 시범사업은 첫발부터 허방을 디뎠다. 예상과 달리 적당한 입주자를 못 찾아 4가구만 입주시킨 것이다. 주택공사 쪽은 “쪽방촌 주민들이 주민등록도 안 돼 있고, 100만원 보증금도 부담스러워해서 막상 적격자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주거 빈곤층의 현실적 삶의 터전으로서 쪽방을 보전할 필요성을 돌아보자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날 포럼에서 ‘쪽방지역의 개발사업 현황과 문제점’을 발표한 김윤이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쪽방 주민을 임대주택으로 이주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 어디에도 사회적 연대가 살아 있는 쪽방 지역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서 “쪽방을 철거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주거 환경을 정비해가면서 빈곤가구의 대안적 주거지로 활용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