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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북 힘겹게 벗어나도 남쪽선 ‘무국적자’

등록 2008-02-27 20:40수정 2008-02-28 00:25

김천일씨
김천일씨
국적 사각지대 내몰린 ‘화교 출신 탈북자들’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을 벗어나 남쪽에 왔으나 다시 중국으로 쫓겨나는 이들이 있다. 중국에서도 이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북한으로 돌아갈 수는 더더욱 없다. 이들은 외국인 등록도 못한 채 ‘무국적자’로 살아가야 한다. 바로 북한 화교 출신들이다.

남 “중국으로 가라” 중국선 “인정 못해” 갈곳없어
재판부도 “북한이탈주민 지위 인정안돼” 판결

■ 밀입국자로 수감=지난 21일 경기 화성외국인보호소 면회실에서 만난 진국량(36)·강옥련(32)씨 부부는 불안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함북 청진시에 살던 이들 부부는 2005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갔다. 다시 타이로 간 이들은 지난해 타이에서 북한이탈주민 보호신청을 냈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국가정보원의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강씨의 할아버지가 중국인이며 3대째 화교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심사를 끝내고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던 진씨 역시 할아버지가 중국인이라는 게 확인됐다. 이들은 ‘중국 국적의 밀입국자’로 분류돼 지난해 12월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됐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밀입국을 시도했기 때문에 강제 퇴거 대상”이라며 “중국 국적이 있으니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이들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에 아무런 연고도 주소도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강씨는 “남북이 통일되면 우리도 이 땅에 살게 되는 것 아니냐”며 “중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북한으로 보내질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 불안한 무국적 생활=북한에서 중국인 아버지와 함께 화교로 살았던 김천일(44)씨는 1992년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2004년 몽골에서 북한이탈주민 보호신청을 냈다. 한국에 들어와 국정원 조사를 받던 중 자신이 화교라는 사실을 이야기한 김씨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졌고, 2005년 3월 배에 실려 중국으로 추방됐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중국인으로 볼 수 없다”며 항구에서 김씨를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됐던 김씨는 지난해 2월 보호 일시해제 조처로 보호소를 나와 무국적 상태로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보호 일시해제의 조건 가운데 취업금지가 있기 때문에 김씨는 일도 못하고 인권단체 등의 도움으로 연명하고 있다.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에서도 제외돼 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김씨는 중국 국적자로 봐야 하지만, 증명 서류가 없어 중국 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경우”라고 말했다. 김씨는 “중국에서 쉽게 자국민으로 인정된다면 중국에 있던 13년 동안 내가 왜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했겠냐”며 “있을 곳이 한국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에 정상적으로 머무르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법원도 외면=장아무개(68·여)씨는 먼저 북한을 벗어나 한국에 들어온 아들과 딸을 뒤따라 2002년 입국했다. 그러나 북한인 남편과 결혼한 화교라는 이유로 한국 국적을 받지 못하고 있다. 95년 중국으로 건너갔던 장씨는 중국에서 정착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봤으나, 당시 중국 다롄시 당국은 “문화대혁명 때 재외국민 호구를 다 말소했다”며 장씨를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장씨는 2004년 통일부와 행정소송까지 벌였지만, 재판부는 “중국 국적을 가졌기 때문에 북한 이탈주민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장씨는 한국에서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외국인등록도 되지 않아 사실상 무국적 상태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에는 화교, 조총련계 등 외국 국적으로 북한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으며, 화교는 6천여명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이들은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공민증’ 대신 2년마다 새로 받아야 하는 ‘외국인등록증’을 갖고 살아간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영환 팀장은 “이들을 무턱대고 강제 추방할 것이 아니라 ‘무국적자·난민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 등 국제법을 통해 면밀히 이들의 지위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법학)는 “이들은 사실상 국적의 사각지대에 있는 무국적자로 판단된다”며 “인권 보호 차원에서 한국과 중국 정부가 함께 해결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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