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저소득 노인 보청기 지원추진에
복지부 ‘건보지원금보다 과다’ 제동
예산낭비 막는 사회보장조정제가
지자체 복지 확대 막는 부작용
복지부, 작년 81건중 33건만 수용
복지부 ‘건보지원금보다 과다’ 제동
예산낭비 막는 사회보장조정제가
지자체 복지 확대 막는 부작용
복지부, 작년 81건중 33건만 수용
강원도 횡성군은 지난해 귀가 들리지 않는 저소득층 노인한테 1인당 최대 150만원의 보청기 구입비를 지원하려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청각장애인한테 지급하는 의료급여(34만원)나 건강보험지원금(27만2천원)에 비해 금액이 지나치게 많고 선정 기준도 모호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결국 횡성군은 보청기 구입비 지원을 포기했다.
횡성군청 관계자는 18일 “우리 군의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의료급여수급자 가운데 65살 이상 청각장애인은 28명인데, 일상생활에서 대화가 불가능하고 가족도 없는 분들이다. 쓸만한 보청기는 120만~130만원 정도인데 이분들은 34만원을 지원받아도 나머지 돈을 마련할 수가 없다”며 “자치단체장이 지방의회나 정부의 동의 없이 지원하면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어 사업을 접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청기를 산 뒤 실제 쓰지 않고 되팔아 돈만 챙길 위험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이처럼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복지 사업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는 ‘사회보장제도 협의·조정 제도’다. 2013년 1월부터 시행된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하려는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는 복지부와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 사업 효과가 불분명한 선심성 제도를 방지하고, 유사·중복 복지 사업을 정리해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줄인다는 취지다. 지난해 복지부는 81건을 협의·조정해 19건을 ‘불수용’하고 33건을 ‘수용’했다.
복지부는 지역 간 형평성을 저해하는 추가급여, 동일한 수급자에 대한 유사급여, 정부 재정에 영향을 끼치는 지자체 사업 등은 원칙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지자체의 복지 사업 다양화·확대를 가로막고 지방자치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대구광역시도 지난해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지원 시간을 24시간까지 늘리는 사업을 추진하다가 복지부의 ‘불수용’통보를 받았다. 혼자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인 8명을 추가 지원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100% 시비로 부담한다는 계획이었는데, 복지부는 서비스 수급자와 비수급자 사이의 형평성 문제 등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구시청 관계자는 “혼자선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 혼자 있다가 화재를 당하는 경우 등에 대비해 추가 지원 방안을 마련한 것”이라며 “불수용 결정에 따라 지원 시간을 줄이거나 개인한테 부담을 지우는 식으로 사업을 다시 짜야 하는데 장애인들이 반발할까봐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재완 공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중앙 정부는 자치단체장의 선심성 행정을 우려한다지만 지방의회가 견제 구실을 하고 있다. 사회보장조정제도로 정부가 지자체의 복지 사업에 제동을 거는 건 지방자치를 무력화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복지부가 옷을 한 겹 입었는데 추워서 겉옷을 하나 더 걸치는 걸 중복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채우지 못한 복지의 빈틈을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메울 수 있어야 하는데, 다른 지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하지 말라는 건 형평성 유지가 아니라 하향평준화다”라고 짚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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