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영 전교조위원장이 9일 서울시 서대문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열린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 발표'에서 인사말을 통해 교육부에 젠더폭력 없는 성평등한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한 종합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북의 한 중학교 교사 김아무개씨는 최근 남학생들로부터 “선생님은 페미냐”는 질문을 부쩍 많이 듣고 있다. 김씨는 처음엔 당황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최대한 의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성평등을 지향하는 페미니스트임을 인정하고 성평등에 대해 설명을 해도 남학생들의 부정적인 눈빛과 질문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지에스(GS)25와 경찰청 홍보물의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남성 비하’의 의도를 담아 제작됐다는 억측이 논란이 된 뒤에는 교육 자료에서 집게손가락을 연상하는 이미지를 볼 때마다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는 학생도 늘었다. 여성가족부가 만든 교육 자료를 이용해 수업하면 “여가부는 해체되어야 하는데 왜 이런 자료를 보여주시냐”고 남학생들이 따져 난감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김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어떤 학생은 수업이 끝나고 쫓아와 ‘남성도 성폭력을 많이 당하는 건 아시냐’, ‘우리나라 페미니즘이 얼마나 남성을 공격하는지 아시냐’고 질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 7월14일부터 7월23일까지 전국 교사 11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반발성 공격)와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 결과를 9일 공개했다. 이번 조사에서 교사들은 최근 3년 동안 ‘메갈’, ‘페미’냐고 조롱하듯 묻는 행위(17.4%), 공식적인 자리에서 혐오표현 발언(16.6%),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비난 및 공격(12.8%), 성평등 수업에 대한 방해·거부(8.2%) 등의 백래시 행위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백래시 행위자가 누군지에 대한 복수응답 설문에서는 학생이 66.7%로 가장 많았고, 동료 교사(40.4%), 학교 관리자(18.7%) 등이 뒤를 이었다. 전교조는 “남교사가 학생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8%인데 여교사가 학생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70%에 육박했다”며 “여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단순히 지위나 위계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젠더 권력관계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은 교사의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많아 20∼30대 여교사는 66.0%가 경험했다고 답했다. 피해 경험으로는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가 많았다.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성폭력의 가장 큰 원인을 복수응답으로 묻는 질문에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사회 인식과 문화’라는 답변이 56.8%로 가장 많았다. 이어 ‘차별과 혐오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는 교육계 문화’(46.9%), ‘차별과 혐오 행위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언론과 정치권’(42.4%),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37.3%) 등이 뒤를 이었다.
전교조는 “성희롱·성폭력 피해에 대해 조치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가 53.0%로 가장 많았다. 이는 학교가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는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교육부가 경각심을 갖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교조는 학교 내 젠더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성고충심의위원회를 교육청으로 이관하고 전문 인력으로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며 “피해자의 회복과 지원을 위해 교육청 내 성평등 전문 독립 부서 ‘성평등지원센터(가칭)’를 개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