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깊고 긴 겨울방학이 끝났다. 아이들은 이 엄동설한에 어디에 묻혀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바람 같아서야 산이나 바다로 가든, 봉사활동을 떠나든, 일터로 가든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충격과 접했으면 좋으련만, 짐작컨대 열에 아홉은 집과 학원을 오가며 오로지 공부에 붙잡혀 있었을 것이다. 방학 때 모자란 공부를 보충하는 것이야 탓할 바가 아니나, 그 나이가 가지는 상상력과 모험의 미덕을 감안하면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런 중에도 몇몇 아이들의 족적은 이채롭다.
중2짜리 경민이란 녀석이 있다. 방학 전에 조용한 절을 소개해 달라고 떼를 쓰기에, (산사에 묻혀 책이나 읽겠다는 것이었다) 컴퓨터나 텔레비전에 빠져 보내는 것보다야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싶어서 여기저기 물색하여, 충남 쪽의 작은 절을 소개해 주었다. 그런 한 달 뒤쯤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3주 ‘고행’을 마치고 이제 막 하산을 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진짜 좋았어요. 산도 좋고요, 주지 스님하고 친해져서 좋은 말씀도 많이 듣고요, 가져갔던 <태백산맥>도 다 읽었어요.”
또 졸업을 앞둔 준모라는 아이는 무려 원고지 150장 짜리 소설을 써서 전자우편으로 보내왔다. 중학교 3년 결산편이라는데, 주제가 묵직했다. ‘왜 학교에서는 규칙과 상식을 지키는 아이들이 바보로 내몰려야 하는가’라는 문제 제기는 통렬하기까지 해서 소설을 읽는 내내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바로 ‘이 글 한 편만으로도 너의 방학은 충분히 보상받을 만하다’라는 격려 메일을 쏴주었다.
또 며칠 전에는 종휘의 소식을 들었다. 이 녀석은 공부 욕심이 많은데다(장래 희망이 최고경영자[CEO]란다)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어디 가서 고교 선행학습을 하겠다고 요란을 떨겠구나 했는데, 이런저런 것 훌훌 털고 이모가 있는 미국으로 한 달 가량 여행을 다녀왔단다. 갔다와서는, “이제 죽어라 공부만 할텐데, 그래서 좀 놀아봤지요. 근데 돌아다녀 보니까, 적당히 공부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자극이 생기더라고요. 그만하면 됐지요. 뭘” 하며 어른 목소리를 냈다.
더 깊이 살펴보면, 이리저리 뛰며 성장의 몸피를 늘려가는 청춘들이 어디 이 아이들뿐이겠는가. 그저 철없이 모여 깔깔거리는 듯 싶어도 각자 소중한 꿈을 품고, 남과 다른 자기를 가꿔가기 위한 치열한 자기 갈등으로 이글거리는 것이다. 그저 참고서에만 묶어두기에 열대여섯, 이 나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가능성인가. 하여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문화 충격과 경험, 계기와 맞닥뜨리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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