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문.지.도 ?>
우리는 당당하게 교실로 가고 싶다
아침 7시 50분 . 미친듯이 학교로 뛰어간다. 1초만 늦어도 하루가 힘들게 시작된다.
이름표나 학교뻇지를 달지 않으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고, 교복이 선생님들의 기준에 맞
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찢겨진다. 박박.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일렬로 서있는 선도부와 선생님들이다.
그들의 위엄은 나를 위축시킨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일단, 그들의 레이더망에 들어서는 순간 행동 하나하나가 주위를 요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교문은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곳이 아니라, 통과의례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선생님들의 눈은 금속탐지기가 되어 우리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본다. 우리는 검사의 대상이니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통과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교실로 달려간다. 이것이 우리의 하루일과의 시작이다. 선생님과 선도부라는 특권층이 학생들을 감시하고 통제 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가 시작되는 교문인 것이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소리없는 전쟁. 교.문.지.도 이다. 두발규제,복장단속,체벌 한꺼번에 보이는 집합소 -교문 교문지도는 학생들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지도"를 하는 것이다.(교문에서 교통사고 같은 인명피해가 종종 생기곤 하니까) 이런 교문지도가 선생님들께는 "학생다움과 교칙준수"를 위해 "감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인가 보다. 학생다움이 곧 학교의 안전과 질서의 안녕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우리는 머리를 질끈 묶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교문을 간다. 운 좋으면 안 걸릴 수도 있으니까. "야,너 초록색 (가방이나 코트가,혹은 나) 일루 와봐, 머리가 왜이래, 내일까지 짤라," 하지만, 어찌 십수년동안 단련된 선생님들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으랴, 우리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서 우리는 겸허하게 이름표를 갖다 바치고(도망방지차원) 짜를 수 밖에 없다. 남학생들은 더 불쌍하다. 남자라는 이유하나로 여자들보다도 훨씬 심한 두발규제를 받아야한다. 귀밑을 내려오면 짤라야하니까 위에만 기르거나, 뒷머리만 기르거나 하는 이상한 형태의 머리를 하고 악을 쓴다. 그러나 악을 써봤자 아침마다 받는 감시와 호통을 끝까지 참기는 어려운 것이다. 미술용가위로 싹둑 내팽겨치는 머리카락이 너무나 안쓰럽다. 제도가 한꺼번에 바뀌면 부작용이 생겨서 안된다면 하나하나 바꾸어갈 필요가 있다. 제일 먼저 해주어야 할것이 남학생들에게 여학생과 똑같은 기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두발에 관한 규정은 하나하나 바뀌어 언젠가는 선생님들의 줄자 같은 눈초리가 필요없게 되는 날이 와야한다. "학습분위기저하" "성적하락" "풍기문란함" 같은 되도 않는 이유로 우리의 머리카락이 아침마다 감시를 받아야 할 일은 없어져야 한다. 여기서 잠깐 우리의 위대하신 학주를 한번 더 출연시켜보겠다 "니네 말야, 머리 기르면 안되 . 내가 교직생활 1,2년인 줄알어? 니네 머리기르면 마약하고 임신해서 안되, 안되면 안되는 거야" 대의원회의에서 반장들에게 당부한 말씀이었다. 굳이 반론하지 않겠다. 교문에서 벌어지는 체벌이 가장 심하고 상처를 입힌다. 단순히 육체적인 상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를 말하는 것이다. 맘에 안들면 그 자리에서 조치를 취하시는 분들이 있다.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면서 흔들고, 가방이 맘에 안들면 가방을 툭툭치고, 심지어는 준비한 학습용칼로 교복을 찢어버린다.특히 여자아이들은 자기의 체형에 맞게(안맞을때도 많다) 교복을 줄이거나 늘린다. 그것이 발각되면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교복을 찢어버린다. 교복에 관한 규제는차부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체벌은 하는 것은 육체적 아픔과 정신적 아픔을 두배로 주는 이중체벌이다.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우리에 대한 존중과 이해보다는 그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 방법이 설령 폭력이라는 형태이다하더라도 그것은 ""안걸리면되는"" 우리에게만 잘못이 있는 것이다. 언제나 선생님들의 "폭력" 은 "정당한 벌과 훈계"이다. 우리조차도 거기에 대한 반감이 없다. 윗사람으로부터 받는 폭력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에 길들여진것이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이다. 이처럼 교문은 학생들에 관한 엄격한 규제와 감시가 모두 이루어지는 집합소 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이곳을 드나든다. 선도부님들이여, 우리를 어디로 선도하나요 선생님들 뒤를 당당히 버티고 서있는 선도부 학생들. 거기엔 방긋웃고 있는 내 친구도 있다. 난 그들이 너무 안타깝다. 선도부이기 전에 내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느낌없이 지금 내 친구들은 군사적문화와 일제시대의 산물인 "선도부"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거기에 익숙해져가는 친구들을 볼 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선생님이 학생을 감시하는 것도 모라자서 같이 배우고 커가는 "학생이 학생을" 감시한다.우리는 친구이면서 서로를 감시해야하는 이상한 형태의 관계과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특권층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학교안에도 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항상 일진회 같은 것만을 소수로 분류하고 말아버리지만, 사실은 학생모두가 어떤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선도부는 선생님이라는 "절대권력"에 지지를 받고 있는 "특권집단세력"이다. 이런 생각과 의식이 우리 모두에게 소리없이 들어봐 우리 머리속에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계급화, 서열화 되어있는 어른들의 사회가 학교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 중에서 이런 학교분위기를 선도하는 것이 바로 "선도부"이다. 그들안에서도 선배, 후배로 엄격히 나뉘어져 친구도 될 수 있는 한 살차이가 깍듯이 인사하는 엄격한 관계로 유지되고 만다. 선도부가 과연 선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 그것은 학생을 억압하는 두발규제와 복장단속을 학생 스스로 자초하게 만드는, 헤어나올 수 없는 통제의 굴레로 가게 하는 것이다. 학생이 같은 학생을 감시하면 웬지 동조와 이해를 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이중굴레를 씌우고 서열까지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언제까지 선생님 뒤에서 무감각해져가는 학생들을 만들어가야하는 것일까. 학생들 스스로 깨우쳐서 더이상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계급적인 형태의 학교문화를 만들어서는 안 될것이다. 많은 선생님들은 "'인권, 인권 하지마라,우리는 너희 떄보다 더 했다. 많이 발전한 것이다""라는 논리로 우리의 말을 무시한다. 하지만, 세상은 끝없는 발전이 필요하다. 특히 학교라는 곳에서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빠른 발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구시대적인 교칙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몇몇의 선생님들은 "인권"의 글자만 알지 개념이 없는 분들이 있다. 그들에겐 "수동적인" 학생들이 가져야할 "인권"이란 없는 것이다. → 억울합니다 !! 벌금을 돌리도 !!! (사진 속 애써 태연한 척) 실제로 제 친구중에는 벌금을 10만원 정도 낸 친구도 있습니다. 물론, 빈번한 지각은 본인의 탓도 있지만, 때리는 것 대신 돈으로 압박을 주는 것은 착취이죠.
그들의 위엄은 나를 위축시킨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일단, 그들의 레이더망에 들어서는 순간 행동 하나하나가 주위를 요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교문은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곳이 아니라, 통과의례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선생님들의 눈은 금속탐지기가 되어 우리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본다. 우리는 검사의 대상이니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통과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교실로 달려간다. 이것이 우리의 하루일과의 시작이다. 선생님과 선도부라는 특권층이 학생들을 감시하고 통제 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가 시작되는 교문인 것이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소리없는 전쟁. 교.문.지.도 이다. 두발규제,복장단속,체벌 한꺼번에 보이는 집합소 -교문 교문지도는 학생들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지도"를 하는 것이다.(교문에서 교통사고 같은 인명피해가 종종 생기곤 하니까) 이런 교문지도가 선생님들께는 "학생다움과 교칙준수"를 위해 "감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인가 보다. 학생다움이 곧 학교의 안전과 질서의 안녕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우리는 머리를 질끈 묶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교문을 간다. 운 좋으면 안 걸릴 수도 있으니까. "야,너 초록색 (가방이나 코트가,혹은 나) 일루 와봐, 머리가 왜이래, 내일까지 짤라," 하지만, 어찌 십수년동안 단련된 선생님들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으랴, 우리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서 우리는 겸허하게 이름표를 갖다 바치고(도망방지차원) 짜를 수 밖에 없다. 남학생들은 더 불쌍하다. 남자라는 이유하나로 여자들보다도 훨씬 심한 두발규제를 받아야한다. 귀밑을 내려오면 짤라야하니까 위에만 기르거나, 뒷머리만 기르거나 하는 이상한 형태의 머리를 하고 악을 쓴다. 그러나 악을 써봤자 아침마다 받는 감시와 호통을 끝까지 참기는 어려운 것이다. 미술용가위로 싹둑 내팽겨치는 머리카락이 너무나 안쓰럽다. 제도가 한꺼번에 바뀌면 부작용이 생겨서 안된다면 하나하나 바꾸어갈 필요가 있다. 제일 먼저 해주어야 할것이 남학생들에게 여학생과 똑같은 기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두발에 관한 규정은 하나하나 바뀌어 언젠가는 선생님들의 줄자 같은 눈초리가 필요없게 되는 날이 와야한다. "학습분위기저하" "성적하락" "풍기문란함" 같은 되도 않는 이유로 우리의 머리카락이 아침마다 감시를 받아야 할 일은 없어져야 한다. 여기서 잠깐 우리의 위대하신 학주를 한번 더 출연시켜보겠다 "니네 말야, 머리 기르면 안되 . 내가 교직생활 1,2년인 줄알어? 니네 머리기르면 마약하고 임신해서 안되, 안되면 안되는 거야" 대의원회의에서 반장들에게 당부한 말씀이었다. 굳이 반론하지 않겠다. 교문에서 벌어지는 체벌이 가장 심하고 상처를 입힌다. 단순히 육체적인 상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를 말하는 것이다. 맘에 안들면 그 자리에서 조치를 취하시는 분들이 있다.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면서 흔들고, 가방이 맘에 안들면 가방을 툭툭치고, 심지어는 준비한 학습용칼로 교복을 찢어버린다.특히 여자아이들은 자기의 체형에 맞게(안맞을때도 많다) 교복을 줄이거나 늘린다. 그것이 발각되면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교복을 찢어버린다. 교복에 관한 규제는차부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체벌은 하는 것은 육체적 아픔과 정신적 아픔을 두배로 주는 이중체벌이다.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우리에 대한 존중과 이해보다는 그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 방법이 설령 폭력이라는 형태이다하더라도 그것은 ""안걸리면되는"" 우리에게만 잘못이 있는 것이다. 언제나 선생님들의 "폭력" 은 "정당한 벌과 훈계"이다. 우리조차도 거기에 대한 반감이 없다. 윗사람으로부터 받는 폭력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에 길들여진것이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이다. 이처럼 교문은 학생들에 관한 엄격한 규제와 감시가 모두 이루어지는 집합소 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이곳을 드나든다. 선도부님들이여, 우리를 어디로 선도하나요 선생님들 뒤를 당당히 버티고 서있는 선도부 학생들. 거기엔 방긋웃고 있는 내 친구도 있다. 난 그들이 너무 안타깝다. 선도부이기 전에 내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느낌없이 지금 내 친구들은 군사적문화와 일제시대의 산물인 "선도부"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거기에 익숙해져가는 친구들을 볼 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선생님이 학생을 감시하는 것도 모라자서 같이 배우고 커가는 "학생이 학생을" 감시한다.우리는 친구이면서 서로를 감시해야하는 이상한 형태의 관계과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특권층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학교안에도 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항상 일진회 같은 것만을 소수로 분류하고 말아버리지만, 사실은 학생모두가 어떤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선도부는 선생님이라는 "절대권력"에 지지를 받고 있는 "특권집단세력"이다. 이런 생각과 의식이 우리 모두에게 소리없이 들어봐 우리 머리속에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계급화, 서열화 되어있는 어른들의 사회가 학교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 중에서 이런 학교분위기를 선도하는 것이 바로 "선도부"이다. 그들안에서도 선배, 후배로 엄격히 나뉘어져 친구도 될 수 있는 한 살차이가 깍듯이 인사하는 엄격한 관계로 유지되고 만다. 선도부가 과연 선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 그것은 학생을 억압하는 두발규제와 복장단속을 학생 스스로 자초하게 만드는, 헤어나올 수 없는 통제의 굴레로 가게 하는 것이다. 학생이 같은 학생을 감시하면 웬지 동조와 이해를 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이중굴레를 씌우고 서열까지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언제까지 선생님 뒤에서 무감각해져가는 학생들을 만들어가야하는 것일까. 학생들 스스로 깨우쳐서 더이상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계급적인 형태의 학교문화를 만들어서는 안 될것이다. 많은 선생님들은 "'인권, 인권 하지마라,우리는 너희 떄보다 더 했다. 많이 발전한 것이다""라는 논리로 우리의 말을 무시한다. 하지만, 세상은 끝없는 발전이 필요하다. 특히 학교라는 곳에서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빠른 발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구시대적인 교칙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몇몇의 선생님들은 "인권"의 글자만 알지 개념이 없는 분들이 있다. 그들에겐 "수동적인" 학생들이 가져야할 "인권"이란 없는 것이다. → 억울합니다 !! 벌금을 돌리도 !!! (사진 속 애써 태연한 척) 실제로 제 친구중에는 벌금을 10만원 정도 낸 친구도 있습니다. 물론, 빈번한 지각은 본인의 탓도 있지만, 때리는 것 대신 돈으로 압박을 주는 것은 착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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