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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 떠난 할머니 |
할머니, 우리 할머니
천소영/제주 중앙여중 2학년
코끝 시린 날 할머니는 긴 여행을 떠나셨다.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2000년부터 할머니와 나는 신경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감당하지 못할 병에 걸리셨다. 치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하다. 하루하루를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것이. 하지만 그리 싫지는 않았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할머니를 많이 생각했다.
우리 할머니의 취미는 가출이었다. 공간 개념이 없는 우리 할머니. “나 밭에 가 볼겨” 하면서 속옷 차림으로 나가시려는 할머니를 붙잡고는 “여기 밭이 어디 있으광” 하고 짜증을 냈다. 할머니는 몸이 무거워서 내가 잘 들지도 못했다. 더운 여름 날 땡볕에 할머니를 찾으려고 종일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나중에 찾았는데, 남의 밭 담을 넘어 들어가서 넘어져 일어나질 못하셨다. 그 뒤로 할머니는 귀여운 이름표를 달고 다니셨다. 이름: 오기선, 전화번호: 752-****. 이후로 할머니는 병원에 자주 가셨다. 난 그때까지 왜 병원에 가시는지 몰랐다. 할머니는 약을 드시고는 ‘코골기대마왕’이란 별명과 함께 잠을 주무셨다. 어느 날 엄마와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했다. “할머니는 파킨스병이라고. 온몸이 굳어 가는 병에 걸려서 요즘에 병원 자주 가시는 거야.” “그럼 나중엔 걷지도 못해? 말도 못해? 그 병 때문에 할머니께서 움직일 때 더 무겁게 느껴진 거야?” “응.” 엄마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허공을 쳐다보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아프지 마세요. 가출도 해도 되고, 크게 소리쳐도 되니깐. 이젠 일어 나셔야죠” 하고 항상 말을 걸었다. 하지만 매번 할머니는 희미한 눈동자로 나를 보시며 한줄기의 눈물을 흘리셨다.
할머니의 병은 더욱 악화돼 욕창까지 생기며 악취를 내뿜었다. 엄마와 나는 약도 발라 주고 밥도 먹여 주었다. 그래도 몇 숟가락이라도 밥 드시는 모습이 좋았다. 가끔 엄마가 할머니를 일으켜 세워 억지로라도 움직이시게 하려고 손을 잡으면서 춤을 췄는데 그땐 할머니도 웃고 엄마도 웃었다. 엄마는 “어머니, 빨리 일어나야지게, 이렇게 누워 있으면 어쩔꺼꽈?” 하며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2004년 11월. 엄마는 나에게 준비를 하라고 했다. 할머니는 몸이 굳어서 입도 손도 다 굳어 갔다.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게 되자 우리 집으로 친척들이 모였다. 할머니는 평소에 좋아 하시던 주홍색 한복을 입으셨다. 엄마는 애써 “아이구, 우리 어머니 곱네” 하고 말했다.
11월 25일 할머니는 긴 여행을 떠나셨다. 나는 할머니의 안부를 물어본 뒤 학원에 갔다. 학원에 있을 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성당을 오라고. 그 말을 들으니 괜스레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그새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아니,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직도 집으로 들어가면 우리 ‘코골기대마왕’ 할머니가 ‘드르렁’ 코를 골며 주무시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종종 든다. 계속 주무시고 있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할머니 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따스한 주홍빛 할머니의 온기만 느껴질 뿐이다.
평> 병이 들어 임종할 때까지 5년 동안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딸이 겪은 ‘끔찍함’과 ‘미운 정’, ‘씁쓸함’과 ‘사랑’을 진솔하게 전달하여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글입니다.
김규중/제주 중앙여중 교사, 제주국어교사모임 회장 mukd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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