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속 깊지 못한 언급에 발끈해 급하게 쓰다보니 마치 모든 선생들이 변화를 원한다는 것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어 오늘은 그에 대한 해명성 글을 써야겠다. 선생도 변화를 원한다는 제목만 보고 글의 취지를 오해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나, 앞뒤 흐름을 좀 더 살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요점부터 말하자면 대통령의 말처럼 가장 변화를 원하지 않는 집단 중 하나가 선생임에는 틀림없다. 21년전 햇병아리 시절에 보았던 초라하고 비굴한 모습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곳이 오늘의 교단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물론 제시하는 사례들이 전체 교단의 자화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1. 아침마다 가지는 부장회의(기획모임이라고도 하는데 무엇을 기획하는지는 잘 모름)는 예나 지금이나 각부 전달 사항 나열 후 관리자의 잔소리 비슷한 지청구가 이어진다. 전달사항을 미주알 고주알 고할냥이면 교무업무시스템의 학교일지란은 무엇 때문에 만들었을까 의문이 생긴다. 교무시스템에 전달사항이 올라 있어도 부 별로 마이크잡고 다시 전달하는 풍경 역시 여전하다. 선생들은 아침부터 이어지는 잔소리와 핀잔에 적이 혈압 상승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교실로 옮긴다. 그러다보면 평소 생기발랄하게만 느껴지던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짜증나는 소음으로 여겨진다.
2. 대통령부터 장차관에 이르기까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줄기차게 노래하지만 학교 교육의 중심은 여전히 학생이 아닌 교사요 학교이다. 학생들에게는 학교 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노출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는 이름표를 교복 저고리에 박음질하도록 하고 있다. 그나마 여학생 보호 차원에서 여학생은 핀을 부착하여 교내에서만 이름표를 달도록 한 학교들이 있었으나 근래에 오히려 남녀를 똑 같이 실로 꿰매게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또 경제적인 이유에서 이름표에 학번을 표기하지 않고 색상으로 학년을 구분하자는 안을 내기도 하지만 많은 선생님들은 반대한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잘못을 저지른 학생의 학반을 파악하기 힘들고 학생이 자신의 학번을 속일 수도 있다는 이유를 댄다. 바람직한 행동을 칭찬하고 격려하기 위해 학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경우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생활지도 상의 편의, 즉 투철한 교사 중심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3. 두번 째 예와 연결된 것이지만 선도부가 도열한 가운데 생활지도부장이나 교내계 선생님이 버티고 선 등교 시간의 광경 또한 변화의 기미가 별로 없다. 부산의 경우 전교조와의 단체협약에 의해 획일적인 교문지도가 폐지되었지만 많은 학교에서는 살풍경한 아침 모습이 여전하다. 두발, 복장, 손톱, 양말, 신발,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검열이 이루어지고 잘못한 것 하나 없지만 많은 학생들이 소심한 이유 하나만으로 초긴장 상태로 교문을 통과한다. 아침부터 인상 구기며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얼마나 즐거운 활동 공간이 될 수 있을까?
4. 시대의 흐름을 따라 교사들도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집단주의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곳이 학교이다. 많은 교사들은 더 이상 학교의 문제를 가정으로 가져가려 하지 않으며, 개인적인 여가 활동이나 취미 생활을 중시한다. 그러나 봄 가을 소풍이나 체험학습 때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여 소집단 별로 행사를 추진하는 것에는 많은 교사들이 반대한다. 이런 저런 부담을 이유로 학년 단위 전체가 움직이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소풍이라고 해봤자 대충 가까운 산이나 공원, 바닷가에 가서 적당히 시간 때우다 밥 먹고(도시락 준비하지 않는 아이들이 태반) 흩어진다. 정작 소풍날 아이들의 행사는 소풍 후 시작된다. 영화관, 오락실, PC방, 노래방 등으로 삼삼오오 길을 간다.
5.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학교의 교육 환경 또한 여전히 열악하다. 기본적인 냉난방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교실과 특별실, 설령 설치되어 있더라도 엄청난 전기료 부담은 그들을 그림의 떡으로 만든다. 여름 내내 악취가 풍겨도 많은 학교에서는 화장실 청소 용역조차 한번 주지 못한다. 하지 않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애매하기는 하지만... 교사들의 사정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온수 기능도 없는 세면대에다 두세 사람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공간을 차지한 교직원 화장실, 대용량 화장지 걸이가 없어 급한 볼일에 달려 갔다가 행정실이나 교무보조에게 두루마리 화장지 얻으러 가는 심정이란..... 교무실과 동떨어진데다 변변한 장구 하나 없이 이름 뿐인 휴게실, 샤워 시설이 없다보니 어쩌다 아이들과 공 한번 차기도 마땅찮다.
나이 든 독자들은 요즘도 이런 학교가 있나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년에 수천만원씩 학비를 내야하는 자립형 사립고와 국제학교가 속속 들어서는 이면의 엄연한 현실이다. 경제의 양극화가 교육의 양극화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구조가 더욱 공고해지는 대한민국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는 특수목적학교에 속하지 못한 대다수 학교의 현주소인 것이다.
이러한 전근대적 구조를 타파하는데 앞장서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대통령? 교육부장관? 교육감? 천만에! 바로 이 시대 선생의 몫이다. 하지만 선생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좋은게 좋은거고 모난 돌이 정 맞는 이치로 인해 절대 남보다 앞서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뒤에서 온갖 투정 다 부린다. 스스로 나설 힘이 없으면 교섭력과 권한을 가진 노동조합에 숫자 하나라도 보태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선뜻 결심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전교조의 과격성과 이념적 편향을 비난하는 수구 언론에 맞장구 친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 무사안일을 즐기려는 기성 세대와 조합활동에 대한 관심도 없고 정치적 성향도 무미건조한 그러다보니 오히려 기성세대보다 더 보수적이기까지 한 신세대 교사들 사이에서 의식 있는 몇몇 조합원들만 벌떡 교사로 낙인 찍히고 왕따 당한다. 그리고 선생들의 나약한 심성을 누구보다 재빠르게 간파하고 적당히 이간질하며 말 잘 듣는 몇몇 부장 교사들 중심으로 학교를 장악하는 관리자들이 있다.
선생님들이 변화에 가장 강하게 저항한다는 대통령의 언설이 이런 문제들을 숙고한 결과라고 믿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FTA 체결해서 농민들 산 입에 거미줄 치게 하고 스크린 쿼터 폐지해서 문화주권 포기하며 동아시아 제패의 전초 미군기지 위해 제나라 백성 길거리로 내모는 대통령이 설마 그런 깊은 생각을?
낙동중학교 교사 홍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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