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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왼손잡이 아이 고치려 하지 마세요

등록 2006-03-12 15:12수정 2006-03-13 14:59

오른손이 바른손? 고쳐야 할 건 ‘편견’
2002년부터 발행돼 온 초등학교 교과서 <국어 읽기 6-1> 151~156쪽에는 ‘왼손잡이를 바르게 이해합시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한국왼손잡이협회 회장 강미희(41) 광주보건대 교수의 글이다. 글쓴이의 의견을 담은 주장 글로서, 왼손잡이를 보는 편견을 버리고 바르게 이해하자는 주장을 이해하고 그 근거를 찾아 정리하는 교과 내용이다.

왼손잡이는 10명 중 1명꼴로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대략 200만~400만명쯤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왼손잡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인식이 이어져 왔기에, 자녀가 왼손잡이임을 알게 되면 당혹해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보는 이가 불편할 뿐”

안정숙(33·서울 도봉구 쌍문동)씨도 그랬다. 둘째 김예빈(7)군이 돌이 지나 15~16개월쯤 됐을 무렵, 숟가락을 쥐어 주니 아이는 왼손으로 밥을 먹었다. 순간 낯설었지만 그렇게 정해졌나 보다 여겼다. 그런데, 전남 장흥 시댁에서였다. 장손인 시아버지 집에 모인 집안 어른들은 볼썽사납다며 마땅찮아 하셨다. 안씨 부부는 흔들렸다.

아이를 오른손잡이로 고치자고 마음먹었다. 왼손으로 숟가락을 쥐면 손등을 내리치거나 밥그릇을 빼앗기도 했다. 얼마 뒤 아이는 밥에 손을 대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도록 밥상에도 다가오지 않았다. 똥을 누지 않고, 오줌도 아무데나 쌌다. 망설인 끝에 왼손에 숟가락을 쥐어주었더니 이내 밥을 모조리 먹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면 괜찮았을텐데, 내가 사회 통념에 욕심을 부렸구나….’ 안씨는 크게 뉘우쳤다고 했다.

예빈이는 자라면서 왼손으로 글씨를 써도 또박또박 잘 쓴다. 왼손으로 그림도 잘 그려 상도 받아왔다. 레고 장난감도 왼손으로 또래보다 더 빨리 완벽하게 조립한다. 컴퓨터 오른쪽에 있는 마우스도 처음엔 불편해 하더니, 어느 새 오른손을 번갈아 쓰며 익숙하게 다룬다. “자동차 시동을 거는 키 구멍도, 마우스도, 자동판매기 동전 구멍까지 오른쪽에 있는 세상에서 불편을 겪을 때가 적지는 않겠죠. 하지만 오른손을 전혀 안 쓰는 것은 아니니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요.”

지난해 유치원 교사가 오른손을 쓰도록 교정해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내버려두라”고 완곡하게 거절했던 것도 이런 마음에서였단다.

며칠 전 입학한 초등학교에서도 2월에 태어난 예빈이가 한 살 적은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걱정될 뿐, 담임 교사에게 왼손잡이라는 걸 따로 얘기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짝인 여자 아이 오른쪽에 앉은 예빈이가 글씨 쓸 때 필통을 왼쪽에 놓은 것만이 좀 달라보였을 뿐, 뚜렷이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던 건 안씨만의 느낌이었을까?


예빈이는 왼손 쓰는 걸 전혀 불편하다고 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놀리지도 않는단다. 안씨는 “보는 우리의 시선이 불편할 뿐”이라고 단언했다.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경남 김해 어방초등학교 박진환(38) 교사는 4학년 새로 맡은 학급에 35명 가운데 두 명이 왼손잡이인데, 왼손잡이라고 해서 자신도, 아이들도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한 아이가 왼손으로 쓴 글씨가 알아보기 힘들 수도 있다고 학부모도 걱정해, 글씨 쓰기 지도를 할 생각이지만 오른손으로 쓰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2년 전 6학년 학생들을 맡았을 땐, 왼손잡이에 관한 글을 읽은 뒤로 아이들의 이해 폭이 좀더 넓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의사 박정민(31)씨는 침을 왼손으로 놓는다. 손놀림이 오른손보다 훨씬 정교하기 때문이다. 식사할 때만 오른손을 쓸 뿐 거의 대부분 왼손 쓰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왼손을 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혼난 기억들이 여럿 있다고 했다. 중 1~2년 땐 음악 시간만 되면 괜히 배가 아프곤 했다. 음악 교사가 왼손을 허리띠 안에 넣어두게 하고는 왼손을 쓰면 실로폰 채로 때리기도 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이다. 그는 자녀가 왼손잡이로 태어나도 결코 오른손잡이로 만들 생각은 없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박씨가 그렇듯, 20대나 30대 젊은 부모들은 왼손잡이라고 큰 문제로 보는 것 같지 않다고 안씨는 말한다. 오히려 왼손을 쓰면 우뇌가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며 다가오기도 한다.

한국갤럽이 2002년 8월 20살 이상 어른 15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자녀가 왼손잡이라면 오른손으로 바꾸도록 할 것이라는 응답자는 38.2%에 그쳤다. 다만 50살 이상의 59.0%가 바꾸겠다고 했을 뿐이다. 20대는 23.6%, 30대 30.7%, 40대 35.6%였다.

“그냥 두세요”

연세대 의대 민성길 교수(정신과학)는 “왼손잡이 자녀를 그냥 내버려둬도 된다.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확언했다. 민 교수는 “오른손잡이 중심 사회여서 시설이나 도구 등 사회적 배려가 미흡해 왼손잡이가 불편하고 불리할 수 있지만, 사회가 점차 소수 권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무리해 고치려 하면 자녀의 심성에 나쁜 영향을 주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미희 교수는 “왼손잡이를 고치려 들면 자녀의 가능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초등 3학년쯤 되면 왼손으로 글쓰기도 거의 터득하게 되니 조급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안씨는 지난해 10월 <왼손잡이>(북큐브)라는 소설을 냈다. 2년 전 사이트 ‘다음’에 두 달 남짓 연재하며 뜨거운 반응을 받았던 인터넷 소설을 오프라인에 선보인 것이다. 한글을 떼기 시작하며 꿈꿔 온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그렇게 왼손잡이 둘째 예빈이를 기른 삶의 일부가 녹아들며 여문 듯했다.

“뭐 어때요? 요즘 세상에 왼손잡이가 뭐 그리 대수인가요?… 오른손잡이 위주의 세상이 아니라 그들을 뭔가 사회악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의 편견이 두려운 거라고요…

엄마! 난 수국이에게 오른손잡이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 광주가 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양손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을 뿐이죠. 그래요. 그곳이 왼편이든 오른편이든 자연스레 세상과 섞이는 법을 가르치고 싶을 뿐이라고요.” 소설의 한 대목은 안씨의 확신처럼 들렸다.

글·사진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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