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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작가는 미완성을 두고 죽지 않는다

등록 2023-04-03 17:18수정 2023-04-04 02:32

연재 ㅣ 우리 아이 고전 읽기

서머싯 몸이 쓴 <케이크와 맥주>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속성을 정확히 파악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영국의 인기 작가로 명성이 높은 에드워드는 자신이 사랑했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기 아내가 결혼 생활 내내 바람을 피우고 매춘부와 다름없이 난잡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에드워드는 맛있는 과일을 빼앗긴 오랑우탄처럼 으르렁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곁에서 에드워드를 지켜본 지인은 잠깐 그가 템스강에 몸이라도 던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지만 금방 안심했다. 우선 그가 강 쪽으로 달려가지 않고 지저분한 동네 골목길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 쓰는 사람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자살한 경우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에드워드는 당시에도 한참 집필중이었다) 작가란 모름지기 어떤 시련이 닥쳐도 절대로 쓰다 만 작품을 후대에 남기기를 원치 않는 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작가의 본성을 생각해보면 도스토옙스키를 일찍 잃은 것이 얼마나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말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천사 같은 두 번째 아내 안나를 만나 평생 처음으로 마음 편히 글쓰기에 집중해서 위대한 명작 <카마라조프씨네 형제들>을 출간했지만 겨우 3개월 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카마라조프씨네 형제들>은 원래 3부작으로 계획했던 미완성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예순의 나이에 향후 20년간의 작품활동 계획을 세웠지만,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좀 더 살았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긴 <카마라조프씨네 형제들>을 읽는 호사를 누렸을 것이다. 반면 어린 시절 군대도 못 갈 만큼 허약체질이었던 일본의 대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성장해가면서 육체 가꾸기에 공을 들였다. 또 작가로서 무척 성실해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군림한다.

미시마 유키오가 남긴 최후의 작품이 <봄 눈>, <달아난 말>, <새벽의 절>, 그리고 <천인오쇠> 총 4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 ‘풍요의 바다’ 시리즈다. 윤회와 환생을 바탕으로 일본 귀족 가문 남녀의 사랑을 다룬 탐미주의 소설의 걸작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11월25일 ‘풍요의 바다’ 시리즈 원고를 완성한 뒤에 곧바로 절대권력을 가진 천황제 부활을 외치고 할복자살했다. 서머신 몸의 통찰대로 작가는 미완성작을 남겨두고 자살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증명한 사례도 남긴 셈이다.

‘풍요의 바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봄눈>을 민음사에서 2019년 7월 세계문학전집 364번으로 출간하려고 했다가 이듬해인 2020년 9월 별도의 단행본으로 출간했다.(독자 서평단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번 <봄눈>을 소장한 자에게 존경을) <봄눈>은 1910년대 일본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해서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사랑 이야기로 독자들을 열광시키는데 다음 작품인 <달아난 말>이 번역되기를 애타게 기다리게 만든다. 그리고 원래는 <봄눈> 차지였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번은 중국의 노벨상 수상작과 모옌의 <개구리>로 채워졌다.

박균호 교사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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