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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나 버리고 간 엄마, 바보!

등록 2006-04-02 18:41수정 2006-04-0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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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와 호랑이와 토끼

까치는 높은 나무 위에다 집을 짓고 새끼 네 마리를 기르면서 잘 살았어. 어느 날 호랑이가 그 나무 밑을 지나가다가 말했어. “까치야, 니 새끼 한 마리만 다오. 안 주면 올라가서 너까지 잡아먹는다.” 어미 까치는 무서워서 새끼 한 마리를 내주었어. 다음날도 호랑이는 찾아왔어. “까치야, 니 새끼 한 마리만 다오. 안주면 올라가서 너까지 잡아먹는다.” 어미 까치는 무서워서 새끼 한 마리를 또 주었어. 그 다음날도 호랑이가 찾아왔지. “까치야, 니 새끼 한 마리만 다오. 안주면 올라가서 너까지 잡아먹는다.” 그래서 어미 까치는 무서워서 또 새끼 한 마리를 내주고 말았어.

‘까치와 호랑이와 토끼’ 이야기는 옛이야기 그림책이예요. 현준이(초등 2학년 남)는 오늘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어요. 그런데 현준이는 어미 까치가 첫 번째 새끼를 호랑이한테 내줄때, 주먹을 쥐고 책상을 퍽퍽 내리치면서 입술을 깨물고 얼굴이 뻘개지도록 힘주면서 아주아주 분해했어요. “바보 바보 저만 살라고…….” 어미 까치가 두 번째 새끼를 호랑이한테 내줄 때도 더 분하고 억울해했어요. 일어서서 몸짓으로 시늉을 해 보이면서 어쩔 줄 몰라 했거든요. “바보 부리로 물고 가든지 팔로 안고 가면 되지. 저만 살라고…….”

책을 읽어 주던 나도 현준이의 반응에 놀라고 그랬어요. 아이하고 호흡을 맞추려니 이야기를 잠깐 멈출 수밖에 없었거든요. 현준이의 눈을 보고 마음을 느끼면서 다음 이야기로 천천히 옮겨 갔어요.

아이가 이야기 속에서 좋은 체험을 해가면서 반응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요. 현준이처럼 즉각적인 반응도 있겠고, 자꾸자꾸 이야기를 들려줄 때의 반응도 있겠지요. 그 이야기가 당시 그 아이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으니까요. 현준이가 왜 어미 까치가 힘센 호랑이에게 새끼를 내줄 때마다 책상을 퍽퍽 내리치고 입술을 깨물면서 분해했는지 알고 싶었어요. 현준이는 어릴 때 곁을 떠나버린 엄마가 생각났을 거예요. 그런 엄마를 늘 그리워하고 보고 싶었겠지요. 어쩌면 어미 까치의 행동에서 현준이는 엄마와 자기 처지를 같이 겪어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특별한 자기만의 이야기가 되었을 거예요. 현준이에게 이 어미 까치는 언제까지나 바보로만 생각될지도 몰라요. 자기만 살라고 새끼를 호랑이 먹이로 내주었으니까 말이예요.

현준이랑 책읽기를 같이 하면서 이렇게 크게 반응했던 이야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야기도 현준이도 더 깊이 들여다 볼 수밖에요. 아이들의 삶을 관념적으로만 보지 않고 구체적으로 더 들여다 볼 때, 아이들의 가장 낮은 부분이나 마음속의 욕구나 뭐 그런 게 느껴지거든요. 현준이는 이야기 뒷부분도 잘 들었어요. 힘없는 어미 까치를 도와주는 토끼를 만나면서도 기뻐했고, 호랑이가 매번 골탕 먹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웃었어요. 현준이의 이런 모습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거예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현준이가 같이 있으니까요. <까치와 호랑이와 토끼> 김중철 엮음. 웅진.

이숙양/공부방 활동가 animato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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