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우정, 인간관계의 최고 이상형

등록 2006-04-02 18:50수정 2006-04-04 13:16

키케로는 우정을 인간관계의 이상형으로 봤다. 기원전 63년 고대 로마의 원로원에서 키케로가 연설을 하고 있는 장면.
키케로는 우정을 인간관계의 이상형으로 봤다. 기원전 63년 고대 로마의 원로원에서 키케로가 연설을 하고 있는 장면.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키케로의 <우정론>

어느 날, 절친한 친구가 중한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에 쫓기다가 내게 찾아와 숨겨달라고 부탁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다른 친구는 내게 국가 반란 음모에 가담할 것을 간청한다.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정치적 동지였으나 어떤 계기로 각기 다른 정치 세력으로 나누어 섰을 때, 친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결코 명예롭지 못한 일이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그럴 가치도 없는 자에게 간청하고 애원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로마 공화정 때 정치인이자 뛰어난 문필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기원 전 44년에 쓴 <우정론>에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있다. 물론 우정의 문제들에 대해 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키케로도 우정에 관한 담론을 시작하면서, 호민관 술피키우스와 집정관 폼페이우스가 서로 가장 아끼던 친구였지만 어느 날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을 보고 모두들 놀라고 안타까워했다는 일화를 먼저 예로 든다. 그만큼 진정한 우정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전 역사를 통해 우정의 범례로서 지속적으로 기억되는 친구들은 기껏해야 서너 쌍밖에 안 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키케로는 “먼저 우정은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그가 여기서 ‘선한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 생활의 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행동에서 “성실과 정직 그리고 공정성과 아량을 보여주는 사람들, 탐욕과 방종 그리고 파렴치한 행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 굳건하게 소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을 주로 의미한다. 이런 미덕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우정이 싹트는 것이다. “미덕이 우정을 낳고 지켜주니, 미덕 없이 우정은 어떤 경우에도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해관계 때문에 맺어진 인간관계는 우정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우정은 친구 사이에서 서로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지만, 그렇다고 우의가 이익을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미덕을 갖춘 사람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미덕을 볼 줄 알고 그것에 끌리는 법이다. <우정론>에 화자로 등장하는 라일리우스와 그의 평생지기 스키피오의 우정도 서로 필요해서 시작된 게 아니다. 서로의 미덕을 찬탄한 까닭에 서로 좋아했고 서로를 더 잘 알게 될수록 우의도 깊어갔다. 이익은 그에 따라온 것이다.

그러면 미덕과 선행을 전제로 할 때, 친구를 위하여 어느 정도까지 해주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키케로는 우정의 제1법칙으로서 “도의에 어긋나는 것은 요구해서도 안 되고, 요구받더라도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친구에게 옳지 못한 것은 요구하지 말아야 하며, 친구에게는 옳은 것만 행해야 하고 이 때에는 굳이 친구가 간청하지 않더라도 먼저 나서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친구를 위해서 죄를 범했다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 “불한당들 사이의 의리와 협력은 우정이란 미명으로 비호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키케로도 설명하듯이, 라틴어로 우정(amicitia)과 사랑(amor)은 모두 사랑하다(amare)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매우 감성적인 것이다. 우정이라는 말도 ‘정(情)’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키케로는 친구를 선택하고 우정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지혜로운 판단을 중요시한다. 다시 말해, 높은 수준의 이성적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 사이에서는 “사랑하고 나서 판단하지 말고, 판단하고 나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이 말은 사랑과 우정을 구분하는 핵심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정은 사랑의 윤리적 형태’라는 정의를 끌어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정은 감성과 이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윤리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감성과 이성의 완벽한 조화, 그것은 인간관계의 이상형이다. 키케로는 우정에서 인간관계의 최고 이상형을 본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우정을 이룬 사람들은 역사에서 몇 쌍 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우정이야말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선하고 복된 삶을 위해서 지향해야 할 인간의 과제라는 것이다. 키케로는 우정을 논하면서, 사실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