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논술끝내기
박용성 교사의 실전강좌/1부-논술 이해하기 ① 이것이 논술이다
내가 학교 선생 노릇하면서 가장 기쁜 일이 뭔지 알아?. 개천에서 용 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야. “가난해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노랫말이 아직도 학교에서는 유효하다는 거지. 그런데 논술이 입시 전형의 주요 변수가 되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공부로 학생들을 뽑겠다는 것은, 칼 포퍼 식으로 말하자면, ‘열린 사회의 적들’이나 하는 몹쓸 짓이야. 논술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고, 논술 가르칠 수 있는 학교 여건을 만든 다음, 논술 고사를 실시하든지 말든지 해야지, 이게 뭐야.
하지만 어떡하니. 이런저런 문제는 잠시 제쳐놓고, 오늘은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 남을까나 고민하자고. 학원이 아니라 학교에서, 과외 교사가 아니라 우리끼리 논술 끝내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거야. 이 꼭지를 통해 선생님과 함께 1주일에 한 번씩 논술 공부를 해 나가자고. 혼자 하면 중간에 그만두게 되니까 가까운 친구들과 ‘논술 모임’을 만들어. 논술을 걱정하는 친구들과 모임을 갖고 싶다고 몇 자 써서 붙여 봐. 그러면 뜻밖에 많이 모인다.
친구들과 모여 할 일은 두 가지야. 토론하기와 첨삭하기. 기출 문제를 분석하며 논제를 파악하고, 논술을 구상하고, 개요를 짜는 과정을 함께 토론하는 거야. 토론은 생각을 가다듬는 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야. 그러고 나서 따로따로 논술문을 쓴 다음에 그것을 서로 첨삭하는 거야. 이른바 상호 첨삭. 잘만 하면, 이런저런 곳에서 돈 들여 지도 받는 것보다 훨씬 나아. 먼저 토론부터 말해 볼까. 논술에는 토론이 꼭 전제되어야 해. 그런데 토론을 해 보면 그 말이 그 말이 되는 경우가 많아. 알맹이 없는 토론이 된다는 말이지. 그래서 얘긴데, 토론은 반드시 주제와 관련된 배경 지식을 꼼꼼히 익히고 나서 하도록 해. 그러면 토론도 살고 논술도 살아. 어떤 이는 배경 지식 없이도 논술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직접 가르쳐 보면 그게 아니야.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쓸 수 있어. 이를 위해 주제별로 정리해 놓은 좋은 논술 책을 사서 함께 읽도록 해. 물론 교과서는 기본이고.
그러고 나서 글을 쓴 뒤 상호 첨삭하는 거야. 여기서 잠깐. 글을 첨삭할 때는 세 가지 정도만 유의하면 돼. 논점을 제대로 파악했는가가 첫째고, 주장에 대한 근거가 타당한가가 둘째, 그리고 문장이 자연스러운가가 셋째야.
글을 쓸 때 원고지 쓰는 법이니, 맞춤법이니 띄어쓰기니 하는 것은 나중에 고민해.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게 좋으니까. 논술은 논리적인 글이다
글에는 두 가지가 있어. 표현을 목적으로 하는 ‘아름다운 글’과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논리적인 글’이 그것이지. 아름다운 글은 주관적인 글쓰기로서 예술적 의도의 영역에 속하지. 시나 소설, 수필 따위가 이에 해당돼. 이에 비해 논리적인 글은 객관적인 글쓰기로서 과학적 의도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어. 논리적인 글은 지은이의 주관을 객관화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떤 사실을 이해하거나, 지은이가 옳다고 증명한 바를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도록 설득하는 글이지. 설명문이나 논설문 따위를 예로 들 수 있어. 논술도 바로 여기에 해당돼. 그런데 논술을 논리적인 글이라고 하는데, 논리가 뭐냐고? 정말이지, 어떻게 쓰는 게 논리적일까?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누어 쓰는 것”이라고 하지.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야. 서론도 논리적으로 써야 하고 본론도 결론도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면, 서론을 또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누어 쓰고, 그 서론의 서론을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누어 쓴다면 서론을 끝내기도 어려울 거야. 글을 논리적으로 쓴다는 것은 단순히 서론·본론·론으로 나누어 쓰는 것이 아니야. 논리(論理)라는 말은 ‘말의 이치’를 의미하는 한자어이지. 물리(物理)가 물질들이 변화하고 작용하는 이치를 다루는 것이라면, 논리는 말로써 따질 때 따라야 할 이치를 다루는 것이야. 그렇다면 말로써 따질 때 따라야 하는 이치란 무엇일까? 이 원칙은 먼저 자기 말이 옳다는 주장이 있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함께 제시될 때 성립하지. 간단히 공식으로 만들어 볼까. <논리 = 주장 + 근거들>. 다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어. ① 법과 도덕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②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도덕이 법으로 금지된 것처럼 법이면서 동시에 도덕이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른에게는 공손히 인사하라, 형제끼리 우애 있게 지내라 등과 같이 도덕이지만 법이 아닌 것이 있고, 교통 질서처럼 처음에는 도덕이 아니었는데 법에서 정하여 도덕으로 된 것이 있다. ③ 이처럼 법과 도덕은 서로 얽혀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법과 도덕의 문제는 법철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혀 오고 있다. 위 글에서 ①이 주장이고 ②가 사실 자료를 이용하여 주장을 입증하는 근거야. 그리고 ③은 ②를 일반화함으로써 주장을 더욱 탄탄히 뒷받침하고 있어. 이 글은 주장과 근거로 이루어진 훌륭한 논술임을 알 수 있겠지? 논술은 수필과 다르다
학생들의 글을 보면 논술인지 수필인지 구별을 못 하겠어. 사실, 논술은 ‘나’의 생각을 펼치는 글이기 때문에 수필과 구별하기 힘들어. 하지만 수필은 논술과 달라. 수필은 주로 감성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논술은 이성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객관적인 글이야. 다시 말해 수필은 대상을 바라보는 데에 마음의 여유가 있으므로 그것이 해학이나 재치나 기지로 자유롭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반해 논술은 자기 주장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를 내세워 논증하는 과정이므로, 주장과 근거가 일관성이 있도록 용어와 문장이 명확해야 해. 주관적인 생각의 객관화 작업―모순되는 표현처럼 보이는 이 말이 논술의 핵심이야.
이렇게 해도 손에 안 잡히지. 그래서 수필과 논술의 차이를 가르치면서 좋은 방법 하나를 찾아냈어. 그게 바로 건조체와 화려체를 가지고 수필과 논술의 문장을 구별하는 거야. 문장 수식의 정도에 따라, 오직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체를 건조체,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하여 아름답게 꾸민 문체를 화려체라고 하지. 논술은 화려체가 아닌 건조체로 써야 해. 다음 문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어.
(가) 보름달은 음력으로, 그 달의 열다섯째 되는 보름날 밤에 뜨는 둥근 달이고, 그믐달은 그 달의 마지막인 그믐께에 뜨는 달이다.
(나)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의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난 공주와 같은 달이다.
(가)는 꼭 필요한 단어만을 사용하고 수식어가 별로 없으며 공식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지. 이에 비해 (나)는 많은 수식어를 사용하고 모든 감각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감정을 풍요롭게 하고, 찬란하고 화려한 느낌을 담고 있어. 논술을 쓸 때에는 (가)처럼 써야지, (나)처럼 쓰면 안 돼.
친구들과 모여 할 일은 두 가지야. 토론하기와 첨삭하기. 기출 문제를 분석하며 논제를 파악하고, 논술을 구상하고, 개요를 짜는 과정을 함께 토론하는 거야. 토론은 생각을 가다듬는 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야. 그러고 나서 따로따로 논술문을 쓴 다음에 그것을 서로 첨삭하는 거야. 이른바 상호 첨삭. 잘만 하면, 이런저런 곳에서 돈 들여 지도 받는 것보다 훨씬 나아. 먼저 토론부터 말해 볼까. 논술에는 토론이 꼭 전제되어야 해. 그런데 토론을 해 보면 그 말이 그 말이 되는 경우가 많아. 알맹이 없는 토론이 된다는 말이지. 그래서 얘긴데, 토론은 반드시 주제와 관련된 배경 지식을 꼼꼼히 익히고 나서 하도록 해. 그러면 토론도 살고 논술도 살아. 어떤 이는 배경 지식 없이도 논술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직접 가르쳐 보면 그게 아니야.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쓸 수 있어. 이를 위해 주제별로 정리해 놓은 좋은 논술 책을 사서 함께 읽도록 해. 물론 교과서는 기본이고.
그러고 나서 글을 쓴 뒤 상호 첨삭하는 거야. 여기서 잠깐. 글을 첨삭할 때는 세 가지 정도만 유의하면 돼. 논점을 제대로 파악했는가가 첫째고, 주장에 대한 근거가 타당한가가 둘째, 그리고 문장이 자연스러운가가 셋째야.
글을 쓸 때 원고지 쓰는 법이니, 맞춤법이니 띄어쓰기니 하는 것은 나중에 고민해.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게 좋으니까. 논술은 논리적인 글이다
글에는 두 가지가 있어. 표현을 목적으로 하는 ‘아름다운 글’과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논리적인 글’이 그것이지. 아름다운 글은 주관적인 글쓰기로서 예술적 의도의 영역에 속하지. 시나 소설, 수필 따위가 이에 해당돼. 이에 비해 논리적인 글은 객관적인 글쓰기로서 과학적 의도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어. 논리적인 글은 지은이의 주관을 객관화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떤 사실을 이해하거나, 지은이가 옳다고 증명한 바를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도록 설득하는 글이지. 설명문이나 논설문 따위를 예로 들 수 있어. 논술도 바로 여기에 해당돼. 그런데 논술을 논리적인 글이라고 하는데, 논리가 뭐냐고? 정말이지, 어떻게 쓰는 게 논리적일까?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누어 쓰는 것”이라고 하지.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야. 서론도 논리적으로 써야 하고 본론도 결론도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면, 서론을 또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누어 쓰고, 그 서론의 서론을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누어 쓴다면 서론을 끝내기도 어려울 거야. 글을 논리적으로 쓴다는 것은 단순히 서론·본론·론으로 나누어 쓰는 것이 아니야. 논리(論理)라는 말은 ‘말의 이치’를 의미하는 한자어이지. 물리(物理)가 물질들이 변화하고 작용하는 이치를 다루는 것이라면, 논리는 말로써 따질 때 따라야 할 이치를 다루는 것이야. 그렇다면 말로써 따질 때 따라야 하는 이치란 무엇일까? 이 원칙은 먼저 자기 말이 옳다는 주장이 있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함께 제시될 때 성립하지. 간단히 공식으로 만들어 볼까. <논리 = 주장 + 근거들>. 다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어. ① 법과 도덕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②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도덕이 법으로 금지된 것처럼 법이면서 동시에 도덕이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른에게는 공손히 인사하라, 형제끼리 우애 있게 지내라 등과 같이 도덕이지만 법이 아닌 것이 있고, 교통 질서처럼 처음에는 도덕이 아니었는데 법에서 정하여 도덕으로 된 것이 있다. ③ 이처럼 법과 도덕은 서로 얽혀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법과 도덕의 문제는 법철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혀 오고 있다. 위 글에서 ①이 주장이고 ②가 사실 자료를 이용하여 주장을 입증하는 근거야. 그리고 ③은 ②를 일반화함으로써 주장을 더욱 탄탄히 뒷받침하고 있어. 이 글은 주장과 근거로 이루어진 훌륭한 논술임을 알 수 있겠지? 논술은 수필과 다르다
학생들의 글을 보면 논술인지 수필인지 구별을 못 하겠어. 사실, 논술은 ‘나’의 생각을 펼치는 글이기 때문에 수필과 구별하기 힘들어. 하지만 수필은 논술과 달라. 수필은 주로 감성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논술은 이성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객관적인 글이야. 다시 말해 수필은 대상을 바라보는 데에 마음의 여유가 있으므로 그것이 해학이나 재치나 기지로 자유롭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반해 논술은 자기 주장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를 내세워 논증하는 과정이므로, 주장과 근거가 일관성이 있도록 용어와 문장이 명확해야 해. 주관적인 생각의 객관화 작업―모순되는 표현처럼 보이는 이 말이 논술의 핵심이야.
박용성/여수여고,〈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나)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의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난 공주와 같은 달이다.
(가)는 꼭 필요한 단어만을 사용하고 수식어가 별로 없으며 공식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지. 이에 비해 (나)는 많은 수식어를 사용하고 모든 감각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감정을 풍요롭게 하고, 찬란하고 화려한 느낌을 담고 있어. 논술을 쓸 때에는 (가)처럼 써야지, (나)처럼 쓰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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