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현상과 본질 때때로 정반대 모습
갯벌 사라진 새만금 당장 보기는 좋아도 그것이 ‘죽음’이라면…
갯벌 사라진 새만금 당장 보기는 좋아도 그것이 ‘죽음’이라면…
시사로 잡는 논술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을 ‘현상’이라 하고, 그 현상을 나타내는 사물 본래의 모습을 ‘본질’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본질은 현상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며 현상과 본질은 대체로 일치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은 그 사랑하는 마음인 본질에 맞는 행동이어야 한다. 세상사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반대일 경우도 있다. 동해물과 서해물이 그렇다.
동해와 서해를 두루 여행해 본 사람은 동해물이 서해물보다 더 깨끗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사물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만은 아니다. 눈으로 보았을 때의 서해는 누런 구정물 같고, 동해는 맑고 푸른 생명수 같다. 눈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히 동해 바닷물이 서해 바닷물보다 깨끗하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다. 환경 수질 관리센터의 자료를 보면, 동해 바닷물은 3급수이고 서해 바닷물은 2급수이다. 이것은 서해물이 동해물보다 훨씬 깨끗하다는 의미이고 생명이 살기에 더 적합하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현상과 본질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갯벌의 유무에서 비롯한다. 갯벌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모래톱과 점토층을 말한다. 갯벌은 상류에서 흘러온 온갖 영양분과 바다에서 유입된 온갖 영양분이 쌓이고 쌓인 생명의 보고이다. 생명이 있기에 끊임없는 운동과 변화가 존재하는 곳. 바로 그곳이 갯벌이다. 이런 갯벌의 움직임 때문에 갯벌은 지저분해 보이고 소란스럽다.
서해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드넓은 갯벌을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 지저분할 뿐, 생명 현상을 본질적 가치로 할 때 보이지 않는 값어치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보이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본질은 정반대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학자들은 모든 생명의 근원을 ‘갯벌’로 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강하구의 갯벌인 에스튜어리(estuary)를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땅으로 인정한다. 영국에서 발간되는 과학 저널 네이처 리포트는 1헥타르당 논의 가치를 92달러라고 하고, 에스튜어리의 가치를 2만2382달러라고 했다. 에스튜어리가 논에 비해서 약 250배의 가치를 가진 셈이다.
지금 서해안에선 인류 최대의 간척공사인 새만금간척사업이 한창이다. 이곳은 뉴질랜드에서 시베리아로 돌아가는 20만 마리의 도요물떼새들의 중간기착지이기도 하다. 1만3000킬로미터를 날아서 북극으로 가는 물떼새들에게 새만금 지역은 휴식처다. 만일 이곳이 사라진다면, 그들은 쉴 곳이 없어진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상호 연관 관계를 맺고 있다. 갯벌이 사라지면 도요물떼새가 사라질 것이고, 그들이 사라지면 그들과 관계된 모든 것들이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반드시 돌아온다.
인간 중심, 문명 중심의 사고에서 자연 중심의 사고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다. 시대가 변하면 사고도 변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변한다 할지라도 본질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갯벌의 본질은 ‘생명’이다. 갯벌의 본질이 변한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당장의 눈에는 보기 좋아 보여도 죽음은 더 이상의 매력이 없다.
현상과 본질이 일치되는 개발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본질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 개발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의 의무이다.
이수석/인천 동산고 철학교사
이수석/인천 동산고 철학교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