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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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오늘 급식 차림을 보니 반찬 목록에 제육복음이 들어 있다. 서둘러 빈 시간에 밥을 챙겨먹고 교실로 올라간다. 고기류 반찬이 나오는 날은 어김없이 ‘배식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담임이라도 옆에 있어야 그나마 반찬 시비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 하긴 먹고 돌아서면 배고플 나이이니 어찌 먹는 것을 탓할까마는, 그렇다고 반마다 양이 정해져 있는데 제 맘껏 퍼먹게 두었다가는 뒤에 아이들은 빈 식판만 긁을 게 뻔하니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밥 먹는 것을 보면, 치열한 배식 전쟁 때와는 달리 모두 제자리에 앉아 조용조용 해치운다. 같은 밥에 같은 반찬인데 굳이 둘러 앉아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따금 반찬에 대한 푸념이 터져나올 뿐 별다른 화제가 없으니 어찌보면 점심 시간의 풍경은 짐짓 냉랭하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면 도시락이 없어지면서 참 많은 것이 사라졌다.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반찬을 나누어 먹던 재미도 사라지고, 도시락 반찬으로 친구 엄마들을 품평회하던 밥상머리 수다도 사라지고, 제 도시락은 미리 까먹고 포크 하나 주머니에 찌른 채 옆 교실로 원정을 떠나던 ‘낭만’도 사라졌다.
담임 쪽에서 봐도 허전한 게 많다. 도시락을 싸지 않으니 음식으로 아이의 면면을 살피기가 어려워졌으며, 이런저런 아이들 반찬을 얻어 먹으며 “너희 집 김치맛 정말 끝내준다. 이거 전라도 김치지? 엄마 솜씨니?”하면서 은근슬쩍 아이들 틈으로 끼어들던(그러다보면 정말 한 식구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재미도 사라졌다. 또한 도시락으로 벌이던 각종 음식잔치는 어떠했는가. 반찬을 창가에 가지런히 모아서 뷔페식으로 차려먹기도 했고, 도시락과 반찬을 한 군데 쏟아 붓고 ‘한마음밥’을 만들어 나누어 먹기도 했다. 특히 인기 있던 것은 가끔 해먹던 양푼 비빔밥이었다. 모둠별로 준비한 커다란 양푼에 각자 가져온 김치며 나물 등속을 넣고 고추장, 참기름을 얹어 주걱으로 썩썩 비비면 옆 반 아이들까지 몰려들었다. 아, 그 고소함이라니. 어디 밥맛뿐인가. 그러는 사이 서로 소통과 접촉이 많아지면서 친구 사이도 한결 가까워졌다.
옛어른들 말씀에 밥상머리에서 정(情) 난다고 했는데, 작금의 급식 문화로는 참으로 미치지 못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결식아 문제와 맞벌이 가정의 사정과 맞아떨어지는 현재 급식문화를 외면할 수 없으니, 우선 당장 급한 것이 급식의 질과 양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다. 그나마 직영 체제로 간다면 여러 면에서 결점을 가릴 수 있겠으나, 아직도 여러 학교에서 운영하는 위탁급식 체제로는 따져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위탁업체는 부모의 손과 다르며, 또한 이윤에 초연한 자선봉사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급식지도를 하다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날이 많다. 밥은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닌 탓이다.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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