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여고생이 화학실험을 직접 해보고 있다.
부모 과학적 상식·마인드 부족이 이과 싫어하는 아이 만들어
엉뚱하고 괴팍한 생각 존중을… 여유·격려도 흥미유발 핵심포인트
엉뚱하고 괴팍한 생각 존중을… 여유·격려도 흥미유발 핵심포인트
아이들은 뭔가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종이를 접고 찢고 오리고 이어붙이는가 하면, 찰흙으로 갖가지 동물들을 만들어 낸다. 가전제품 상자에 담긴 스티로폼 조각으로 장난감이나 인형을 만드는 걸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인간은 도구적 동물’이라는 말따나마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창조적인 만들기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저마다 꼬마 발명왕이자, 창조의 대가요, 만들기 고수였던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과학이나 수학을 싫어하게 된다. 이과 과목 시간만 되면 자꾸 딴짓을 하고 시험 점수도 잘 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대학 진학과 관련된 계열 선택에 있어서도 이과보다는 문과쪽으로 몰린다. 대부분의 인문계 고교에서 문과반이 이과보다 많은 것이 현실이고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중고생들은 그 이유에 대해 “수학이나 과학 과목이 다른 과목에 견줘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과쪽은 잘 못하니 문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과쪽이 출세도 쉽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쉽게 말해 인생을 편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일리가 있다. 하지만 숨어 있는 오해가 더 많다. 적성과 점수가 꼭 상관관계가 있지는 않다. 실제로 소질은 더 있지만 자신감을 잃으면 자신은 이과쪽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이영대 박사는 “적성 검사를 받으러 온 문과쪽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은 이과쪽이 더 맞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 부모의 태도가 계열 선택에 가장 큰 영향 원래 이과 성향이 강한 아이들이 왜 이과쪽보다는 문과쪽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잘못된 교육 마인드 때문이다. 우선 아이가 어릴 때 부모는 아이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많은 부모들이 과학적 상식이 없는데다 과학적 마인드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김미라 교수(심리학)는 “아이가 뭔가 물어볼 때 부모들은 회피나 야단, 무시 등의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부모의 대응에 적응해 호기심의 싹을 키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부모의 ‘이과 성향 죽이기’ 태도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된다. 예컨대 계산 문제를 풀지 못한다거나 구구단을 잘 외우지 못하면 이과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서둘러 단정을 지어 버리는 것이다. 이제 수학을 배우기 시작한 시기에 부모로부터 이과를 싫어하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때 아이는 스스로 문과쪽이 더 맞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눈앞의 성적 향상만을 목표로 숙제나 과제, 문제풀이를 채근하는 부모 역시 자녀를 이과를 싫어하는 아이로 만든다. 뭔가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거나 책에 빠져 있거나 그날 있었던 일을 재미있게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숙제는 다 했니?” “문제집 풀었어?” 등의 말로 다그치면 아이는 모처럼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 생각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려는 기회를 뺏기고 만다. 오명숙 홍익대 교수(화학공학과)는 “우물쭈물하고 느릿느릿한 보이지만 아이가 뭔가를 하고 있다면 사고력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 그것을 부모가 방해하면 공부의 기초는 시간이 지나도 자리잡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과도한 선행학습은 아이의 이과 성향을 결정적으로 꺾어 놓는다. 서울여대 이연희 교수(생명공학과)는 “요즘은 중1,2 때부터 고등학교 수학을 미리 배우는데 그러다 보면 아이는 수학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게 된다”며 “다행히 따라가는 아이라면 괜찮지만 대부분은 중학교때부터 수학을 포기하고 만다”고 진단했다. ■ 이과 성향 키워주려면 자녀의 이과 소질을 키워주고 싶다면 ‘여유’와 ‘격려’가 핵심 포인트다. 지금 당장 수학이나 과학 점수가 형편없고 공부를 안한다고 닥달하기 전에 시간을 가지고 자녀의 행동을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봐줄 줄 알아야 한다. 가령 공룡도감에 빠져 있거나 길가 나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거나 쭈그리고 앉아 돌밑의 개미집을 뚫어져랴 쳐다보고 있다면 그냥 두자. 이화여대 이혜숙 교수(수학과)는 “아이가 자신의 머리로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관찰하고 있을 때는 그 생각이나 행동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주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결고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이상하다, 신기하다,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힘을 키워주는 게 좋다. “왜 그럴까?”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답을 알고 있다면 한번에 알려줘도 좋고, 알기 쉽게 설명해줄 수 없을 땐 “이상하네?” 하고 거기까지만 말해줘도 상관없다. 의문 상태 그대로 아이의 머릿속 어딘가에 들어 있다면 어느날 수업시간에 그 현상에 대해 배울 때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평소 아이가 흥미나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있으면 도움을 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 도감을 사준다거나 디지털카메라를 사줘서 아이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도록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별다른 재주가 없어 보이는 아이라도 누구나 ‘박사’가 된다. 공룡 박사, 로켓 박사, 화석 박사, 기차 박사…. 한국정보통신대학교 박진아 교수(컴퓨터공학)는 “자신이 빠져들 수 있는 세계가 있는 아이는 그 세계 속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조사를 하기도 하며 더욱 깊이 빠져들어간다”고 했다. 교사들에 따르면 대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수학을 잘 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의 차이가 확실하게 생긴다. 이렇게 되면 중학교 공부는 훨씬 더 힘들다. 초등 저학년때부터 수학이나 이과 과목에 대한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일은 자녀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지난 8일 이화여대 종합과학관에서 진행된 이공계 체험 프로그램 ‘MASER’에 참여한 여고생들이 이 대학 화학과 엄익환 교수로부터 각종 화학 기기와 화학 실험 원리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부모의 태도가 계열 선택에 가장 큰 영향 원래 이과 성향이 강한 아이들이 왜 이과쪽보다는 문과쪽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잘못된 교육 마인드 때문이다. 우선 아이가 어릴 때 부모는 아이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많은 부모들이 과학적 상식이 없는데다 과학적 마인드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김미라 교수(심리학)는 “아이가 뭔가 물어볼 때 부모들은 회피나 야단, 무시 등의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부모의 대응에 적응해 호기심의 싹을 키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부모의 ‘이과 성향 죽이기’ 태도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된다. 예컨대 계산 문제를 풀지 못한다거나 구구단을 잘 외우지 못하면 이과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서둘러 단정을 지어 버리는 것이다. 이제 수학을 배우기 시작한 시기에 부모로부터 이과를 싫어하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때 아이는 스스로 문과쪽이 더 맞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눈앞의 성적 향상만을 목표로 숙제나 과제, 문제풀이를 채근하는 부모 역시 자녀를 이과를 싫어하는 아이로 만든다. 뭔가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거나 책에 빠져 있거나 그날 있었던 일을 재미있게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숙제는 다 했니?” “문제집 풀었어?” 등의 말로 다그치면 아이는 모처럼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 생각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려는 기회를 뺏기고 만다. 오명숙 홍익대 교수(화학공학과)는 “우물쭈물하고 느릿느릿한 보이지만 아이가 뭔가를 하고 있다면 사고력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 그것을 부모가 방해하면 공부의 기초는 시간이 지나도 자리잡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과도한 선행학습은 아이의 이과 성향을 결정적으로 꺾어 놓는다. 서울여대 이연희 교수(생명공학과)는 “요즘은 중1,2 때부터 고등학교 수학을 미리 배우는데 그러다 보면 아이는 수학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게 된다”며 “다행히 따라가는 아이라면 괜찮지만 대부분은 중학교때부터 수학을 포기하고 만다”고 진단했다. ■ 이과 성향 키워주려면 자녀의 이과 소질을 키워주고 싶다면 ‘여유’와 ‘격려’가 핵심 포인트다. 지금 당장 수학이나 과학 점수가 형편없고 공부를 안한다고 닥달하기 전에 시간을 가지고 자녀의 행동을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봐줄 줄 알아야 한다. 가령 공룡도감에 빠져 있거나 길가 나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거나 쭈그리고 앉아 돌밑의 개미집을 뚫어져랴 쳐다보고 있다면 그냥 두자. 이화여대 이혜숙 교수(수학과)는 “아이가 자신의 머리로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관찰하고 있을 때는 그 생각이나 행동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주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결고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이상하다, 신기하다,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힘을 키워주는 게 좋다. “왜 그럴까?”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답을 알고 있다면 한번에 알려줘도 좋고, 알기 쉽게 설명해줄 수 없을 땐 “이상하네?” 하고 거기까지만 말해줘도 상관없다. 의문 상태 그대로 아이의 머릿속 어딘가에 들어 있다면 어느날 수업시간에 그 현상에 대해 배울 때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평소 아이가 흥미나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있으면 도움을 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 도감을 사준다거나 디지털카메라를 사줘서 아이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도록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별다른 재주가 없어 보이는 아이라도 누구나 ‘박사’가 된다. 공룡 박사, 로켓 박사, 화석 박사, 기차 박사…. 한국정보통신대학교 박진아 교수(컴퓨터공학)는 “자신이 빠져들 수 있는 세계가 있는 아이는 그 세계 속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조사를 하기도 하며 더욱 깊이 빠져들어간다”고 했다. 교사들에 따르면 대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수학을 잘 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의 차이가 확실하게 생긴다. 이렇게 되면 중학교 공부는 훨씬 더 힘들다. 초등 저학년때부터 수학이나 이과 과목에 대한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일은 자녀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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