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청은 학생들의 사고력, 문제해결력 신장을 위하여 올해부터 각 학교의 시험에 서술형 문제를 포함시켰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를 대상으로 하여 40%이상 실시를 기준으로 하여 중1,2학년과 고1,2학년은 올해, 그리고 2007년도에는 전체 학년에 확대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객관식 위주로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약화시킨다는 우려가 있었으며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 대학의 논술시험이 적극 검토되었고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2008학년도 대입은 내신의 등급제 실시와 논술시험의 부각으로 학생들 스스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말할 정도로 과거의 입시 제도와는 많이 달라졌다. 현재 고2학생들은 치열한 내신 경쟁에서부터 수능 시험 대비, 게다가 논술 준비까지 하느라 학업에 대한 부담이 크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사교육 흡수가 목표였지만 새로운 정책이 나올 때마다 오히려 더 확대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때 교육방송을 적극 활용한 e-learning의 시행은 사교육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타는 기름에 물을 끼얹은 격으로 사교육 시장을 오히려 더 확대했고 게다가 교육방송 출연을 통해 자신의 몸값을 올린 강사들이 잇달아 유명 인터넷 교육 업체로 옮겨가면서 교육방송은 학생들에게 그다지 매력을 끌지 못하고 있다.
한편 학교 교육은 둔탁한 몸놀림으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공교육 활성화 대책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학벌 사회에 편입하는 길인 대학입시의 왜곡된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고식적인 꾀로만 위기를 넘기려 하는 학교의 둔감함은 불신으로 가득한 학부모와 학생들에 의해 완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반면에 사교육 시장은 새로운 제도를 이해하지 못해 생긴 불안함을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학부모들의 심리를 잘 이용하여 나날이 팽창하고 있다. 수능시험에 대한 대비는 물론이지만 심지어 과거의 학교 시험 문제를 기출문제집으로 엮어 특강을 하는 학원에 아이들이 몰려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논술 시험의 실시는 결정적으로 사교육 시장을 팽배하게 하였다. 각 대학이 2008학년도 대입 요강 발표를 미루고 교육부와의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불안해진 학부모들은 학원의 솔깃한 유혹에 쉽게 넘어갔고, 평소 객관식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던 학교 교육으로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 학생들도 쉽게 사교육에 투항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의 서술형 평가 시행은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효과 즉, 사고력을 키워주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무리 좋은 정책도 학생들이 제대로 준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시된다면 이는 새로운 부담거리를 주는 것으로 또다시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온다.
교육 정책은 입안자의 입장에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상자인 학생의 처지를 몇 번이고 생각한 다음 신중하게 실시되어야 한다. 물론 입안자들은 새로운 정책의 타당성 검토를 위해 ‘연구학교’와 ‘시범학교’를 운영한다. 각 연구, 시범학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범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보고하고 장단점을 분석한 뒤 정책을 보완하는 절차를 밟는다. 분명 서술형 평가에 대한 연구시범학교는 있었을 것이고 그 문제점 역시 충분히 검토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이는 입안자의 입장에서 살펴본 문제점이며 보완책이었을 뿐이다.
서술형 평가를 위해 대상 학생들이 몇 년 전부터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과정이 진행되었는지 의심스럽다. 이미 중간고사를 치른 학생들은 서술형 문제에 대한 답을 암기하여 적었다고 한다. 사고력 훈련이 미처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이번 시험은 아닌 밤중의 홍두깨일 뿐이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서술형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학원으로 몰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수능학원, 논술학원, 내신학원, 게다가 서술형문제대비학원까지 다니게 생겼다.
교육정책은 그 대상이 학생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실험용 쥐가 아니다. 하나의 정책을 입안할 때는 학생의 입장에서 고려하고, 그것을 시행할 때는 대상 학생들이 충분한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금 고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서술형 평가를 위한 적극적이고 단계적인 교육이 진행되었어야 한다. 장기적이며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각 급 학교에서 토론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각 학교에 공급하고, 독서교육과 글쓰기 교육의 기반이 확대된 뒤 서술형 평가를 시행하고, 이것이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추어지면 그때는 학교 평가에서도 논술(에세이)형의도임도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이며 다양한 평가가 현장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교육 정책에는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소중한 한 생명을 생각하고 그의 미래를 그려간다면 절대로 조급하게 진행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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