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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2 16:44 수정 : 2005.01.02 16:44

방학을 며칠 남겨 두고 아이들에게 수업평가를 받았다. 평가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것은 아니고 간이설문 형식으로, 일년 동안 진행했던 수업과 수행평가에 대한 만족도나 제언 등을 귀동냥하는 정도다. 약식이긴 해도 아이들의 눈은 꽤나 영민해서 담길 내용은 다 담긴다. 평가 방식에 대해 제법 바른말도 할 줄 알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담는다. 이것을 분석하면 내년을 위한 좋은 준비도 되고, 방학 동안에 집중할 수 있는 일거리도 가닥이 잡힌다. 올 방학 일거리는 아이들의 소설집을 펴내는 것이다. ‘인터넷소설을 이기자. 열다섯의 인생을 제대로 보여 주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소설 쓰기를 했는데 뜻밖에 재미있는 것이 많아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평가 설문을 하는 김에 “올해 부모님께 들은 말 가운데 가장 상처를 받았던 것은?”이라는 학부모 관련 항목도 하나 넣어 봤다. 내 자신이 교사이기 이전에 학부모(우리집 아이도 사춘기 열다섯 살이다)이니 이 참에 훈수 좀 얻을까 싶어서였다.

설문을 받아 보니, 낯 뜨겁게도 내가 자식에게 퍼부었던 온갖 잔소리가 다 담겨 있다. “네가 그렇지 뭐” “너는 뭐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니?” 아이들은 남과 비교하는 말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떻게 동생만도 못하냐?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진짜 살기 싫어진다.” 하긴 어른들도 남과 비교 당하는 것은 정말 싫어하지 않는가.

내가 듣기 싫으면 남도 싫은 법, 머리로는 다 알고 있지만, 그게 참 어렵다. 이게 다 벌컥하는 화 때문이다. 그 순간만 넘기면 충분히 차분하게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데, 결국 그 ‘선’을 넘기지 못하고 쏟아 붓게 되는 것이다. 화는 화를 부른다. 아이들이 응답한 내용도 대부분 그런 상태에서 쏟아낸 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옛 어른들의 회초리가 주는 시사점이 크다. “가서 회초리 꺾어 와라!” 왜 굳이 꺾어 오게 하는 것인가. 자식이 회초리를 꺾어 오는 시간이면 이성을 잃을 정도의 화는 충분히 가라앉는다. 부글부글 끓던 감정도 어느 정도 제압이 된다. 말하자면 부모로서 최소한의 예의와 품위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인 셈이다.

방학을 해서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귀환’을 했다. 이제 부모와 자녀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시기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벌써부터 시끌시끌하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마음을 꾹꾹 다지고 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그 옛날 아이 머리맡에 몰래 크리스마스 선물을 놓아 주던 그 정도의 상상력만큼은 잃지 말자. 무엇을 위해 잠자는 아이 머리맡에 선물을 놓았는가, 그 마음만큼은 잃지 말자.

이상대/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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