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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세상 보는 눈을 떠요

등록 2006-06-11 18:50수정 2006-06-12 16:12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진행된 중등과정 국어시간. 자유롭게 모여 앉아 수업을 하지만 눈빛,표정은 진지하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진행된 중등과정 국어시간. 자유롭게 모여 앉아 수업을 하지만 눈빛,표정은 진지하다.
표지이야기/‘꽃피는 학교’중등과정 4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징’이 울렸다.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서 연필도, 공책도, 칠판도 없는 수업이 시작된다. 나무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8명의 아이들은 강준용 선생님이 건네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번갈아 소리내어 읽는다. 충북 제천 봉양읍에 있는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 중등과정 1학년 국어(고전과 말본) 시간 풍경이다.

같은 시간 13명의 2학년 아이들은 교실에서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 칠판과 만년필, 아이들이 직접 만든 공책은 있는데 교과서가 없다. 이경아 선생님이 칠판에 ‘오늘의 문제’를 쓴다. ‘오백원짜리 동전과 백원짜리 동전을 쌓아 처음으로 같은 높이가 되는 순간, 각 동전의 갯수는 몇 개일까요? ’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니 만큼 동전을 실제로 쌓아보지 않고 상상하며 풀어보기로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아이들은 ‘최소공배수’가 어떤 의미인지,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고민한 과정이 담긴 공책은, 나중에 자신만의 ‘수학 교과서’로 남는다.

꽃피는 학교 중등과정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고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수학, 과학, 문학, 철학, 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이루어낸 위대한 기록을 아이들 스스로 찾고, 만나고, 교감한다”는 게 이 학교 김희동 교장의 설명이다. 교사는 아이들을 풍부한 고전의 세계로 안내하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지난 3월 중등과정이 처음으로 문을 연 뒤, 제천 꽃피는 학교의 이러한 교육 방침은 아이들의 진지하고 열렬한 호응에 힘 입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제천에 3월 문 연 ‘꽃피는… ’

정규교과서 따로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며 원리 터득


발도로프 교육·천지인 사상 결합

유치3년·초등5년·중등4년 운영

“집을 떠나 공부하니까 엄마는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책 읽는 게 좋아요. 수업도 재미있고요.” 1학년 윤정이가 점심을 먹고 운동장으로 뛰어가려다 학교 자랑에 나선다. “숙제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데…그렇게 부담은 안되요. 여기 학교에 오면서 살도 쪘어요.” 농구공을 들고 있던 2학년 선구가 한쪽 팔을 불끈 들어보이며 말을 보탠다.

제천 꽃피는 학교 학생들은 서울, 경기 하남, 강화, 충남 대전,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13~14살 아이들이다. 공교육 체계로 따지면 초등 6학년, 중학 1학년인 이들은, 월요일 아침에 집을 떠나 금요일 오전까지 학교에서 생활하고 주말은 집에서 보낸다. 초등 6학년부터 중등과정이 시작되는 것은 아이들의 발달과정을 토대로 한 ‘꽃피는 학교’만의 독특한 교육 철학 때문이다.

“12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3학년 여름방학쯤부터 아이들이 급격히 변한다는 것을 알았죠. 천사같은 맑은 눈을 갖고 있던 아이들이 약간은 반항적인 눈빛으로 바뀌면서, 세상에 대한 질문과 도전을 시작하거든요.”

김희동 교장은 그 해답을 ‘발도로프 교육’으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교육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발달 이론과 ‘천지인’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의 전통사상에서 찾았다.

“하늘에서 살던 아이들이 땅에 발을 딛는 시기라고 할까요. 세상에 대한 구체적인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생기는 시기가 초등 3~4학년인거죠. 그 때는 밝은 햇님이 좋아요, 식으로 가르칠 게 아니라 그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충족되도록 해야죠.” 김 교장이 보기에, 그 호기심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본격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총제적인 눈을 길러야 할 시기는 초등 6학년, 꽃피는 학교로 따지면 중등 1학년이 되는 나이다.

“밝은 햇님을 노래할 것이 아니라 빛이란 무엇인지, 태양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걸 관찰하고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탐구해야 한다고 봐요. 인류가 쌓아놓은 지식을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하는 거죠.”

자유로우면서도 엄격하고, 놀이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공부인 꽃피는 학교 중등과정은 총 4년에 걸쳐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과학(생물, 물리, 화학, 지구과학), 문학, 국어 작문과 문법, 영어회화와 영문법, 일본어 회화, 수학, 사회, 음악, 미술 같은 다양한 학문을 익히고, 함께 생활하면서 평화(명상, 봉사, 세계 이해, 평등, 인권, 생태계 보전), 생활(의식주, 자립, 경제, 여행, 자기관리)같은 과목도 공부한다. 일본에서 엔지오(NGO) 활동을 하던 원어민 강사가 가르치는 일본어 회화는 ‘동북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사람을 기른다’는 학교 뜻에 따라 철저히 ‘입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든 교과과정은 매일 아침 9시부터 한시간 삼십분 가량 진행되는 ‘통전수업’으로 연결된다. 꽃피는 학교의 교육철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일종의 철학 수업이다.

“과목 공부는 인간과 삶을 ‘통째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지, 머릿 속에 수많은 ‘가짜 지식’을 심기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닙니다. 자유로워야 하는 부분은 자유롭게, 스스로 다스리고 이겨내야 하는 부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아이들과 교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 통전수업입니다.”

부산에서 공립학교에 다니다 그만두고 중학생이 된 도환이, 대전에서 꽃피는 학교 초등과정을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한 장미·수진이, 강화에서 다른 대안학교를 다니다 제천으로 옮긴 석준이, 하남 꽃피는 학교 출신인 건우·상우·산이…. 제천 꽃피는 학교 아이들은 출신 지역이나 학교에 오기까지 과정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운동장을 뛰어다니다 철학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다 과학실험에 몰두하는 학교 생활에 몹시 만족하는 눈치다. 이 아이들 중에서, 입시 지옥을 뛰어넘어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질 고교 과정까지 함께 할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답은 오직 아이들 안에 있다.

제천=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꽃피는 학교는

충북 제천에 있는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 아이들이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다.  김진수 기자 <A href="mailto:jsk@hani.co.kr">jsk@hani.co.kr</A>
충북 제천에 있는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 아이들이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전체적으로 보아 15년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꽃피는 학교’(peaceflower.org)는 발도로프 교육과 천지인 사상을 토대로 한 김희동 교장의 교육 철학에 뜻을 같이하는 학부모, 교사들이 모여 만든 대안학교다. 현재 충남 공주와 경기 하남에 유치원 과정(3년)과 초등과정(5년)이 개설돼 있고, 부산에도 학교를 만들기 위한 준비모임이 꾸려진 상태다. 충북 제천 중등과정(4년)은 지난 3월 문을 열어 현재 1, 2학년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꽃피는 학교 유치원 과정은 무언가를 특별히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집에서 하듯 자연스럽게 놀고, 먹고, 자면서 천진하게 자라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초등 1∼3학년은 예술 교육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자연 속에 뛰어놀면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구성돼 있고, 4·5학년은 주변 동물과 집, 동네 등을 관찰하면서 수학(기하)과 지도그리기 등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세상을 탐구하도록 되어있다. 중등 과정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인지 활동이 가능한 시기라고 보아 과학, 수학은 물론 온갖 종교의 경전과 철학서적을 직접 탐독하게 한다. 다양한 진로 탐색 활동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3년 간의 고교 과정은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설립될 예정이다.

꽃피는 학교는 초·중등 과정 모두 미인가 대안학교이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도 학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학교 운영비는 학부모들의 몫이다. 학비는 한 달에 35만원, 중등 과정은 기숙사비와 생활비 25만원을 더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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