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발간된 여러 종류의 사회(중학교), 세계사(고등학교) 교과서들은 다양한 천연색 사진으로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과서들이 ‘발전가능성이 많은 아프리카’라는 단원에 굶주리는 아이들 사진과 아프리카 오지 부족들 사진만 싣는 등 세심함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리상의 발견·로마제국 등 유럽사 후하게 대접한 반면 이슬람 하면 일부다처제, 히잡…
한면만 부각하거나 사실 왜곡 “균형잡힌 시각으로 재정리를”
한면만 부각하거나 사실 왜곡 “균형잡힌 시각으로 재정리를”
1995년 이전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은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말을 알고 있다.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아메리카 대륙에 닻을 내린 뒤 유럽인들이 앞다퉈 태평양을 건넌 사건을 가리킨다. 앞 단원에서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마야와 잉카라더니, 나중엔 유럽인들이 ‘발견’하기 전엔 아메리카 대륙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이상한 교과서에 힘 입어서다. 요즘 교과서에서는 이 시기를 ‘신항로 개척’ 혹은 ‘대항해 시대’라고 쓴다. 그러나 마음을 놓기엔 이르다. 교과서에 나온 신항로 개척의 세계사적 의미는 이렇다. “오랫동안 서로 고립하여 독립적으로 발전하던 국가와 지역이 점차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가 성립했다(중앙교육 <사회 2> 51쪽).” 8세기 무렵부터 태평양과 인도양을 누볐던 인도인, 중국인, 이슬람인들이 들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몇 백년 앞서 그토록 뻔질나게 바닷길을 오갔건만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를 완성하는데 보탬이 못 되었더란 말이냐!” 우리 교과서 안에서, 지구는 여전히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돌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는 그 유구한 역사와 엄청난 면적에도 아랑곳없이 변방을 맴돈다. 아이들은 앞으로 더 자주,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살아갈 것이다. 아이들이 세계와 처음 만나는 시간인 중학교 사회 교과서가 서구 중심, 정복자 중심 시각으로 쓰였다거나 특정 문화권에 대한 선입견을 심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서양은 ‘진출’하고, 동양은 ‘침략’한다
예전 교과서에서도 종종 문제가 됐던 서구 중심적, 중국 중심적인 시각과 표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로마제국은 “번영과 발전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던 평민들”의 애정에 힘입어 “훌륭한 법”과 “탁월한 행정력”을 자랑했지만 (중앙교육 <사회2> 18~23쪽), 같은 ‘제국’이라도 몽고제국은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중국인(한족)을 지배하기 위해 몽고인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다 “‘결국’ 한족에게 멸망한”것으로 폄하된다.(두산 <사회1> 254쪽~255쪽) 오스만 제국은 “유럽 국가들을 수시로 위협”(디딤돌 <사회 2> 80쪽)하는 존재였다. 오스만 제국을 설명하는 대목인데, ‘주어’는 유럽인 셈이다. ‘중국=한족의 나라’라는 전제 아래, 몽고·흉노·훈 등 다른 민족들을 순식간에 ‘오랑캐’로 만들어버린다. “중국 역사는 유목민과의 투쟁사”로 정리되고, “몽골 고원에서는 흉노가 일어나 오랫동안 중국을 위협”했고 “청은 베이징으로 쳐들어가 중국마저 지배”해 버렸다고 쓴다. (금성 <사회 1> 292쪽~298쪽)
변화한 시대를 반영하지 않거나 특정 부분만 조명한 교과서 속 사진들은, 아이들에게 그 사회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일러스트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몰라서 틀리고, 틀리고도 모르고
비서구 문명권에 대한 교과서 속 틀린 표기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무함마드’와 ‘마호메트’가 (심지어 같은 교과서 안에서) 혼재되는 등 표기가 올바르지 않거나 일관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는 하나님, 히브리어로는 야훼로 불리는 유일신 ‘알라’를 ‘알라신’이라고 표현하는 건(두산 <사회 1> 285쪽 등) ‘역 앞’을 ‘역전 앞’이라고 쓰는 격이다. ‘소승불교’는 대승불교쪽에서 상대 교리를 경멸하는 의미로 사용한 말이지만, 모든 교과서에서 “인도(실은 스리랑카가 맞다)에서 발생한 소승불교는 개인의 구원을 중시하고 대승불교는 전인류의 구원을 목표로 했다”는 식으로 여과없이 차용해 중요하게 다룬다. 이슬람 사회가 “일부다처제를 허용(중앙교육 <사회1> 312쪽) ”하고 “도둑질을 하면 손목을 자르고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며 여자들은 검은 베일을 쓰고 다녀야 한다”(지학사 <사회 1> 145쪽)며 아주 예외적이거나 현재에는 벌어지지 않는 일들을 일반적인 사실로 소개한다. 무슬림 인구가 전세계 7분의 1(지학사 <사회 1> 308쪽)(실은 4분의 1)을 차지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외교 분쟁, 남의 교과서만 문제인가
“이슬람교도들은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평화로운 주변국들을 침략했다”는 식의, 사실 왜곡을 넘어 외교적 분쟁이 우려되는 대목은 “한 손에는 코란을, 한 손에는 공납을”로 정정됐다. 그러나 외교 분쟁의 불씨는 우리 교과서 안에 남아있다. 이슬람·중동 전문가인 한양대 이희수 교수는 “페르시아만은 이란 중심의 영해개념으로 이란을 제외한 아랍국가들은 모두 ‘아라비아만 (Arabian Gulf)’이라고 표기한다”면서 “1991년 이곳에서 일어난 전쟁을 ‘걸프전(The Gulf War)’이라고 한 것도 이런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 때문인데, 동해의 일본해 표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우리가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지 <사회 1> 140쪽, 디딤돌 <사회 1> 132쪽 등) 이 교수는 또 “6차 교육과정 교과서 집필(1995년) 과정에서 외교적 논란을 이유로 전면 삭제됐던 마호메트(무함마드) 얼굴이 2001년에 발간된 7차 교육과정 교과서에서 일제히 부활한 것(두산 285쪽, 지학사 308쪽, 디딤돌 266쪽 등)도 크게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우상숭배를 금하는 교리에 따라 무함마드 그림을 공개적으로 게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남의 눈의 티를 탓하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보라”는 성경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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