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
도종환 시인이 수능을 끝낸 수험생들에게
가을은 끝났습니다. 이제 모든 잎은 지고 푸른잎 없이 빈가지로 견뎌야 하는 혹독한 철이 이 숲에 찾아 올 것입니다. 그날도 끝났습니다.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은 다릅니다. 뜻하던 목표를 이룬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동안 참으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아침이 생의 어느 날보다 무겁고 가슴 시린 친구들을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탐욕을 경계하고, 일이 안 풀릴 때는 분노를 경계하고,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는 무지함을 경계하라고 합니다. 생각하고 기대했던 만큼 결과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분노와 비탄으로 자신을 학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해도 지금이 가장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오직 단 한 번뿐인 시험은 없습니다. 정말 여러분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고생한 여러분은 위로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넘어지는 것도 필요합니다. 넘어진 사람은 반드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다시 그 돌부리를 잡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시련 없는 안온한 성공은 안온함이라는 덫에 걸려 나중에 더 큰 좌절을 겪기도 합니다. 일본의 사상가 모리오카 마사히로의 말을 빌린다면 “고통 없는 인생은 우리의 미래에 놓인 달콤한 덫”입니다.
“고통과 시련은 자신의 오래된 낡은 껍질을 벗어버리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자신과 만나게 하는 기쁨이 된다”고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말합니다. 그 기쁨은 고통이나 괴로운 일에 직면했을 때 도망가지 않고 자기 자신을 해체하고 바꾸고 재생시킬 때 다가온다고 합니다. 오늘 겪는 어려움이 여러분을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단순히 여러분이 다시 경쟁의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루소가 말했던 것처럼 “고작 경쟁심이니 질투심이니 선망이니 허영이니 탐욕이니 저열한 두려움이니 하는 따위, 영혼을 부패시키기에 가장 적절한 감정”들을 동원하여 여러분들을 다시 경쟁교육의 복판으로 밀어 넣으려는 게 아닙니다. 오늘부터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을 경쟁의 상대로 삼아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저 애들보다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왔다면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또래들을 적으로 삼기보다 그들도 나와 함께 세상을 살아갈 동반자들이라는 생각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세상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살벌한 정글이 아니라 공존 공생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바라는 것을 다 얻어 손에 쥐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핍의 그 여백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우리를 밀고 가기도 합니다.
곧 겨울이 옵니다. 그러나 이 겨울이 여러분을 더욱 굳고 단단하게 하는 겨울, 시련 속에서 거듭나게 하는 겨울, 생명의 새 순을 준비하는 겨울이 되길 바랍니다. 도종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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