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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친구들아, 남쪽 사이트에서 만나자

등록 2006-12-10 19:03수정 2006-12-11 20:47

일본 도쿄 ‘에다가와 조선학교’ 초등학생들이 지난달 30일 학교 ‘콤퓨터실’에서 케이티에프가 기증한 새 컴퓨터들 앞에 몰려들어 호기심 가득찬 눈길로 한글 입력하기, 사이트 찾기 등을 해 보고 있다.
일본 도쿄 ‘에다가와 조선학교’ 초등학생들이 지난달 30일 학교 ‘콤퓨터실’에서 케이티에프가 기증한 새 컴퓨터들 앞에 몰려들어 호기심 가득찬 눈길로 한글 입력하기, 사이트 찾기 등을 해 보고 있다.
KTF, 총련계 학교에 기증 “이례적”
도쿄도 ‘학교땅 반환소송’ 폐교 위기
65명 학생들 “빨라서 좋아요” 탄성
학교쪽 “민족교육에 힘쓰겠다”
일본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새 컴퓨터 들어오던 날

“멋있어요! 빨라요! 진짜 좋아요!”

아이들은 새 컴퓨터 앞에 몰려들어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일본 도쿄 고토구 에다가와에 있는 ‘도쿄조선제2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콤퓨터실’은 아이들의 탄성으로 들썩였다. 케이티에프가 컴퓨터 12대, 노트북 컴퓨터 1대, 프로젝터 1대 등 약 1100만원 어치의 교육 기자재를 기증해준 것이다.

6~7년 된 낡은 컴퓨터 10대로 컴퓨터 수업을 받아 오던 4~6학년 학생들은 새 컴퓨터의 우리말 프로그램이 신기한 듯 마우스를 옮겨가며 자꾸만 들여다봤다. 6학년 윤명실(53) 교사는 “두 대는 고장났고, 나머지도 도중에 자꾸 멈춰 순탄하게 수업을 진행하기가 힘들었다”며 싱글벙글했다. 일주일에 1시간씩인 컴퓨터 수업 때는 우리말과 일본어로 입력하기, 인터넷으로 헬렌 켈러나 에디슨 등의 학습 자료 찾아보기 등을 한다고 했다. 집에서 컴퓨터로 ‘재담’(우리의 개그) 텔레비전 방송을 즐겨 본다는 6학년 학생 홍윤극(12)군은 “학교 컴퓨터는 너무 느려 답답했는데 참말로 좋다”고 말했다.

한국 대기업의 첫 지원=케이티에프는 시민단체 ‘아름다운 재단’과 손잡고 2003년 8월부터 정보 소외 청소년들을 위해 ‘Bigi(10대를 가리키는 1318 모양을 따 꾸민 것) IT 공부방’ 지원 활동을 펼쳐 왔다. 이번이 40번째 ‘IT 공부방’이며, 국외에서는 지난해 10월 러시아 우수리스크 한글학교에 이어 두번째다. 북쪽에 가까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산하 학교인데도 한국 대기업이 지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일본 <아사히신문>은 눈에 띄게 전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재단 김진화(31) 간사는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자원을 보낸 것 같다”며 “동포들이 우리 말과 글, 역사를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케이티에프와 아름다운 재단은 재외동포 지원 활동을 하는 ‘지구촌동포연대’의 신청을 받아들여 컴퓨터 기증을 결정했다.

3학년 학생이 새 컴퓨터로 게임을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
3학년 학생이 새 컴퓨터로 게임을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극우 성향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가 2003년 12월 공유지인 학교 땅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해 폐교 위기에 몰리면서 관심을 끌었다. 학교 쪽은 1940년 쓰레기 매립장이던 이 곳에 강제 이주당한 이래 46년부터 60년 동안 이 학교를 이어왔다며 맞서고 있다. 오는 21일 17차 재판을 앞둔 지금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1500여명이 다녀갔고 일본·한국의 언론도 수십 차례 보도했다. 하지만 그 영향인지 학생 수는 되레 지난해 59명에서 올해 65명으로 늘었다.

‘새 한글 자판 어서 익혀서…’=케이티에프는 일본어 프로그램 말고도 한글로 된 프로그램을 설치해, 학생들이 두 언어로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한글 타자부터 연습해야 한다. 그동안엔 에프(F) 키와 에이(A) 키를 치면 ‘아’가 표현되는 식으로 개발된 다른 한글 프로그램을 써 왔기 때문이다. 당장 이 컴퓨터로 가르칠 교사들도 “야단났다”고 했다. 서둘러 새 자판을 익혀야 하는 탓이다. 일본 가나와 영어로 표시된 자판에도 한글 자·모음을 써 붙일 생각이다. 기술 지원을 맡은 케이티에프 강진호(29)씨는 “일본어와 한글로 운영체제(OS)와 오피스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용 방법을 학교 쪽에 전달했다”며 한글교육 소프트웨어 몇 가지도 전했다고 했다.

6학년 정희성(12)양은 “남쪽 사이트에도 언제나 찾아갈 수 있겠다”며 “게임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배우 권상우를 좋아한다는 학부모 김경자(39)씨는 6학년 아들과 함께 얼른 한글 자판을 익혀 좋아하는 ‘한류 스타’ 사이트를 찾겠다며, 한글 타자 연습 프로그램을 내려받는 방법을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녀가 너무 오래 컴퓨터를 하게 될까 걱정스럽다”며 웃었다. 이 학교 학생 65명 가운데 3분의 2 가량이 집에 컴퓨터를 갖고 있다고 한다.

“여건 힘들지만 민족교육 힘쓸 터”=이 학교에 일본 정부의 재정 지원은 전혀 없다. ‘각종학교’이기 때문이다. 도쿄도와 고토구가 각각 1년에 1명당 2만엔(한화 16만여원), 8천엔씩을 지원하는 게 고작이다. 학부모들은 한달에 수업료 8천엔과 기금 2천엔 이상씩을 내야 한다. 교사들의 월급은 일본 교사의 절반 수준이다. 교장 월급이 25만엔(한화 200여만원) 가량이다. 1964년 지은 낡은 학교 건물 곳곳은 제대로 수리하기 힘들었을 그동안의 형편이 확연하다.

송현진(42) 교장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화해 분위기가 재일동포 사이에 번지고 있고, 우리 학교가 도쿄도의 부당한 소송으로 위기에 몰린 터여서 한국 대기업의 지원이 더욱 고맙다”며 “기증받은 컴퓨터로 우리 동포 자녀들의 민족교육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직접 물품을 기증하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 학교를 비롯한 일본의 조선학교들은 2003년부터 새로 만든 교과서로 가르친다. 6·15 선언 이후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교과서 개편에 참여했다는 윤명실 교사는 “남한 교과서도 참고했다”며 “서울 모습도 있는 그대로 담고 남북을 아우르는 역사와 지리도 실었다”고 말했다. 새 교과서로 배운 아이들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중앙통일시험을 오는 18~20일 치러 국어·산수·일본어·사회·리과(과학) 등의 실력을 겨룬다고 했다.

이사회 격인 학교 ‘교육회’의 방세걸 회장은 “반기문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돼 정말 자랑스럽다. 우리끼리 싸우고 다퉜던 과거사는 아이들에겐 절대로 가르쳐선 안 된다”며 “이번에 기증받은 컴퓨터를 통해 이 아이들이 일본에서 꿈을 펼치고 세계로 뻗어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일본 시민·변호사·주부 등으로 구성된 ‘에다가와재판 지원연락회’의 대표인 무라타 후미오(일본 엔티티 직원)는 “같은 민족이고 또 학생을 키우는 문제이므로 한국 시민들이 적극 지원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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