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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자, 골라 잡으세요

등록 2006-12-17 15:01수정 2006-12-17 15:10

자연을 느끼고 싶으세요
과학사 알고 싶으세요
아니면, 판타지 소설?
어린 시절, 방학 시작할 무렵이면 이런저런 계획을 잔뜩 세웠다. 일기도 빼먹지 않고 날마다 쓰고, 숙제도 미리미리 하고, 평소에 하고 싶던 일이나 취미 활동도 하겠다고…. 그러나 방학한 지 며칠 지나면 시들해지고 만다. 아직도 방학이 많이 남았는데 천천히 하지 뭐, 하면서.

이번 겨울방학을 맞는 아이들 역시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방학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며칠 지나면 작심삼일 격으로 자신이 생각했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보낼 것이다. 인터넷 즐기는 것과 학원 가는 것만은 어김없이 하겠지만.

인터넷과 학원에 붙들린 채 방학 시작 날 마음먹었던 일을 까먹어 버릴 어린 청춘들에게 나이만 좀 먹은 청춘쯤으로 생각하는 필자가 책 몇 권을 권한다. 아무리 인터넷과 학원에 바빠도 이번 겨울방학에 여기 소개하는 책만 읽어도 아주 놀았다는 생각은 안 들 거라는 걸 장담하면서!

아이들이 방학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시골 할머니 집에 가는 일이다. 아니, 이건 부모가 먼저 생각하는 일인지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굳이 시골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 특히 학년이 낮은 아이들은 <할머니 집에서>(이영득 글, 김동수 그림, 보림)를 먼저 읽고 가기를. 시골 생활이 뭔지 잘 모르는 도시 아이가 흙과 바람과 풀이 살아 있는 시골 할머니 집에서 마주치는 작은 ‘깨침’의 순간들이 잔잔하게 그려져 있는 책이다. 여기에 <곰 아저씨의 딱새 육아일기>(박남정 글, 이루다 그림, 산하)까지 읽으면 여러 생명체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게 된다. 곰 아저씨 트럭에 어느 날 딱새가 둥지를 틀었다. 이어 알에서 아기 딱새들이 태어났다. 아기 딱새들은 트럭 둥지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그런 어느 날 아기 딱새들은 둥지에 침입한 먹구렁이한테 모두 잡아먹히고 만다. 새끼를 잃은 어미 딱새가 둥지를 떠나는 걸 보며 곰 아저씨는 슬피 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얘기이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어 <어린이를 위한 우리나라 지도책>(이형권 글, 김정한 그림, 아이세움)을 펼치면 이 땅의 온갖 생명체들이 터를 잡고 사는 우리의 산과 강, 기후 토산물 등이 정겨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산하와 지역 특색을 독특한 그림으로 나타낸 책으로 아이들이 지리를 ‘공부’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익히게 한다.

우리는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는 제법 알면서 우리 과학사를 풍성하게 한 인물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하늘의 법칙을 찾아낸 조선의 과학자들>(고진숙 지음, 유준재 그림, 한겨레아이들)은 바로 이 땅에서 서양과학 못지않은 과학적 성과를 낸 조선시대의 과학자들 얘기다. 우리 과학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학년이 좀 높은 아이들이 무리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여기에 곁들여 <노래는 흩어지고 꿈 같은 이야기만 남아>(최성수 글, 한수임 그림, 나라말)를 읽으면 우리 조상들의 세계 인식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 소설의 첫 장을 열었다고 일컬어지는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다시 쓴 이야기다. 단순히 줄거리만 요약한 게 아니라 지은이와 가상 인터뷰 같은 꼭지도 마련해 독자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한다. 중고생의 ‘국어시간에 고전 읽기’ 시리즈로 펴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도 읽을 수 있다. 이런 옛이야기에 이어 현대 이야기도 읽을 만하다. <노래하며 우는 새>(송재찬 글, 권정선 그림, 우리교육)는 제주의 4·3 사건을 소재로 한 성장 동화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현대사의 아픔을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4·3 사건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했다.

아이들의 삶은 언제고 어디서고 성장하는 삶이다.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임태희 지음, 바람의 아이들)은 의류매장으로 쇼핑을 나간 다섯 아이의 이야기이다. 내가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옷이 나를 입고 있다는 엉뚱한 발상을 바탕으로 하여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일상과 내면을 통해 아이들의 ‘작은 성장’을 엿보게 한다. 이에 비해 <그 여자가 날 데려갔어>(구두룬 멥스 글, 이자벨 핀 그림, 시공주니어)는 좀 더 ‘큰 성장’을 담은 이야기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한 아줌마가 그 상실감을 견딜 수 없어 딸 또래 아이를 납치한다. 비록 유괴라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 아줌마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다. 아동범죄를 소재로 했지만 소재주의에 머물지 않고 작가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어, 무엇보다도 사람을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자기의 진로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어른들이 정한 길을 흔들림 없이 똑바로 걸어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다. 아이들은 흔들리면서 자라는 것이다. <몽구스 크루>(신여랑 지음, 사계절)는 브레이크 댄스의 매력에 빠져 춤을 통해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린 청소년 소설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생활 방식과 고민, 내면 등이 거침없는 말투 속에 담겨 있다.


아이들은 아직 나방이 되기 전의 애벌레인지도 모른다. 나방이 되기까지 오로지 한 나무에서 허물을 벗고 변태하기만을 되풀이하는 애벌레. <애벌레를 위하여>(이상권 글, 오정택 그림, 창비)는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 열세 마리가 성충이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고치를 만들고 태어나는 과정을 단순한 성장통에 비유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가치와 삶과 죽음에 비유했다. 이 책은 생태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건 아직 애벌레이지만 서둘러 애벌레에서 벗어나고만 싶은 청소년들에게 바치는 ‘은유’다.

이 겨울, 아이들은 속으로 나이테를 하나씩 더 두르게 될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현실의 삶을 통해서만 성장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같이 고뇌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으로도 성장한다. 자, 어떤가? 책 제목만 봐도 부쩍 자란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면 꼭 일독해보기를.

박상률/작가 moosan@hanmail.net

■ 교사·문학가들이 추천한 어린이책 ■

‘의좋은 형제’ ‘일기 감추는 날’ …올해 출간된 어린이·청소년 책들 가운데는 유난히 글쓰기, 논술 관련 책들이 많았다. 출판사들이 시류를 많이 탄 때문이다. 하지만 꿈나무들의 영혼을 살찌우는 양서들도 꾸준히 나왔고, 아낌없는 사랑도 받았다.

책 관련 단체나 교사, 아동·청소년문학가들로부터 괜찮은 책들을 추천받아 보니, 우선 우리 옛 이야기를 현대적 분위기에 맞게 재구성한 그림책과 동화책들이 많았다. 옛날 화로에 고구마나 밤을 구워먹으며 듣던 <의좋은 형제>(국민서관), <팥죽할멈과 호랑이>(시공주니어), <반쪽이>(보림), <줄줄 꿴 호랑이>(사계절) 등은 구수함이 그득하다.

친구, 가족들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창작동화들도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일기 감추는 날>(시공주니어), <까만 콩떡이 될 뻔한 최현호>(느림보), <붕어빵 한 개>(푸른숲), <동무 동무>(길벗어린이) 등을 읽다 보면 요즘 아이들의 세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역사나 문화를 주제로 공을 많이 들인 교양서들도 돋보인다. <한국사 탐험대 1-7>(웅진주니어),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 1~5>(꼬마이실), <초정리 편지>(창비어린이) 등은 어른들이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하다.

청소년 대상 책으로는 우리 바다의 가치를 다시금 발견하게 해주는 <관해기 1~3>(웅진지식하우스), 고대인들의 풍요로운 정신 세계를 안내하는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사계절), 동두천 기지촌 사람들이 겪는 혼혈 문제와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룬 <거대한 뿌리>(검둥소), 과학과 발명 이면에 감춰진 과학자들의 숨은 이야기들을 모은 <박성래 교수님이 들려주는 친절한 과학사>(문예춘추) 등이 여러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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