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과목’ 점수 적고 나머진 이수 여부만 표기
‘학생부 그대로’ 규정 어겨…교육당국 특별점검 ‘빈손’
‘학생부 그대로’ 규정 어겨…교육당국 특별점검 ‘빈손’
최근 해마다 수십명씩 미국 대학에 유학을 보낸 서울 대원외고 유학반이 미국 대학에 보내는 영문 성적표에 일부 정규 수업 과목의 점수를 아예 표기하지 않은 ‘편법’을 써 온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외국어고에 대한 특별점검을 벌이고도 이런 실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올해 초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미국 동부지역 대학에 다니는 한 학생의 말이다. “원래 80점 이상을 A로 주고 70~80점을 B로 줬어요. 그러다가 2004년께 정책이 바뀌어 90점 이상 A를 줬지요. 대신 모든 과목을 내신 성적에 반영하지 않고, 수학·경제·영어·외국어 등 4~5개 과목만 시험을 치고 등급(A~E)을 냈어요.”
이 학생은 이런 방식으로 미국 대학에 제출하는 내신 총 평점(GPA)에 3.97을 받았다고 했다. 두 과목은 B를 받고, 나머지는 모두 A였다. 내신성적 기준이 바뀌기 전까지는 과목 평균 80점부터 A를 받았기 때문이다.
올해 졸업한 한 학생은 “학교에서 어떤 과목을 내신 성적으로 산출할지 미리 알려 준다”며 “일부 과목만 내신 성적에 합산하고, 나머지는 Pass/Fail로 이수 여부만 기록했다”고 말했다.
대원외고 졸업생들에 따르면 이 학교 유학반도 일부 외고와 마찬가지로 80점 이상부터 A를 주는 방식으로 성적을 산출해 내신 성적을 부풀렸다. 그러다 2004년부터는 일부 과목만 내신 성적을 산출하고, 나머지 과목은 ‘이수했음’만 기재하는 쪽으로 내신 성적 산출방식을 임의로 바꿨다. 교육부는 고교에서 발급하는 영문성적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성적을 그대로 영문으로 옮기도록 하고 있다. 모든 정규 과목을 90점 이상이면 Su(수)를 주는 기준으로 등급을 주고 과목마다 전체 석차를 써줘야한다. 학교가 임의로 특정 과목에 점수를 내지 않고 이수 여부만을 표기해서는 안 된다.
사실 70~80점대를 A로 주는 내신성적 부풀리기는 상당수 외국어고에서 일반화됐던 게 사실이다.(<한겨레21> 637호 참조) 하지만 대원외고는 학생들의 내신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미국 대학에 보내는 영문성적표에는 일부 과목 성적을 표기하지 않는 편법을 썼다.
이 학교 유학반 3학년 학생은 “(영문 성적표에) 전 과목을 다 반영하지 않고 한국 과목 4개만 다른 학생들(국내반)과 똑같이 상대평가로 점수를 내고, 나머지는 ‘패스’나 ‘페일’(fail)로 표기했다”며 “하지만 페일을 받는 애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학반에서 배우는 과목도 상대평가로 성적을 내 영문성적표에 함께 적는다”고 말했다.
올해 이 학교 3학년 한 학급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지난 3월 ‘내신 과목’을 ‘공지’하는 담임교사의 글이 올려져 있었다. 취재진이 담임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묻자 그는 이튿날 이 글을 삭제했다. 이 교사는 “우리 학교는 유학반 자체 내신이 있다. 유학반은 다른 과목을 배우니까 성적이 (국내반 학생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원외고의 졸업생, 재학생, 교사가 앞에서 언급한 ‘패스·페일식’ 성적 기록방식을 인정했지만, 학교 쪽은 “규정을 지키고 있다”는 대답을 되풀이했다.
김일형 대원외고 교감은 12월7일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교육부 양식대로 90점 이상 A를 주어 보내고 있습니다. 한 번도 규정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취재진은 예전에도 그런 적이 없었느냐고 다시 물었으나, 그는 “내가 1999년부터 근무했다. 적어도 그때부터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다시 관련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유학반 책임자인 유아무개 국제부장에게 물었다. 그의 말은 김 교감의 말과 약간 달랐다. 그는 “예전에는 패스/페일로 보낸 적이 있지만, 올해는 그렇게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두 차례 대원외고의 영문성적표 발급 현황을 점검했지만, 학교가 제출한 ‘영문 성적표’만 받아들고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12월1일 특수목적고에 대한 특별점검에서 영문성적표 발급에 대한 점검을 벌였지만 학교에서 제출한 성적표 몇 장을 살펴보는 수준에 그쳤다. 이 학교는 지난 11월 말 정봉주 의원(열린우리당)이 각 외국어고의 영문성적표 발급 실태를 조사할 때도 서울시교육청에 ‘교육부 양식을 준수한’ 성적표를 제출했다.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과 관계자는 “대원외고는 성적표의 수·우·미·양·가 표기를 발음 그대로 영문 표기하도록 한 기준을 어기고 알파벳(A·B·C·D·E)으로 표기한 것을 제외하고는 교육부 규정을 준수했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12월22일 김일형 대원외고 교감에게 유학반의 내신 성적산출 방식에 대해 다시 물었으나, 그는 “(패스·페일 이수 여부만 표기하는 방식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교육부 규정에 따라 정확하게 성적을 산출했다”고 말했다.
대원외고는 1998년 국내 최초로 유학반 설립한 이래 국내 외국어고 유학반 붐을 주도해, 2004년 64명, 2005년 38명, 올해 초 59명 등 그동안 200여명의 미국 명문대학 합격생을 배출했다. 남종영 <한겨레21> 기자,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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