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 호산나 학교·빈민촌 돌며
생필품 전달하고 목욕시키고…
아침7시부터 오후5시까지 강행군
“가난해도 해맑은 표정 놀랐어요”
“망고나무 열매 열리면 또 올래요 ”
생필품 전달하고 목욕시키고…
아침7시부터 오후5시까지 강행군
“가난해도 해맑은 표정 놀랐어요”
“망고나무 열매 열리면 또 올래요 ”
나무심고,수도관 깔고… 고된 만큼 보람도 한아름
중고생 33명으로 구성된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청소년 자원봉사단이 지난 4~15일,10박 11일에 걸친 캄보디아 자원봉사활동에 나섰다. ‘10년 뒤 내모습’을 주제로 글을 보내온 중고생들 가운데 우수한글을 쓴 학생들로 구성됐다. 영어캠프나 해외 문화체험 캠프를 마다하고,‘돈 내고 사서고생하러’ 캄보디아로 간 청소년들은 과연 현지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 따가운 햇볕 아래 마른 공기를 마이며 구슬땀을 흘린 아이들이 발견한것은, 다름아닌 ‘다른 이를 소중히 여길줄 아는 자랑스런 나 자신’이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인사 나눌 준비도 채 못했는데, 손을 잡아 끌고 등에 올라타고 품에 안긴다. 가만히 보니 모두 맨발이다. 울퉁불퉁한 흙 길에 군데군데 유리조각도 눈에 띄건만, 아이들은 학교 안팎을 신도 안 신고 잘도 돌아다닌다.
캄보디아 프놈펜 스텅미언저이에 있는 호산나학교에는 유치원부터 초등 5학년에 이르는 150여명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스텅미언저이는 ‘승리가 있는 호수’라는 뜻인데, 사실 이 지역은 ‘승리’와 거리가 멀다. 학교 주변에는 하루 소득이 미화 1달러도 안되는 빈민들이 모여 산다. 먹을거리도 충분치 못한데다 온갖 오물이 떠다니는 호수 위에 수상가옥을 짓고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는 형편이라, 주민들의 건강은 몹시 나쁜 상태고 에이즈로 고통받는 이들도 더러 있다.
호산나학교는 6년 전,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고물을 주워 생활비를 보태는 빈민가 아이들을 위해 한국인 선교사 정순영씨가 주축이 돼 설립한 학교다. 학교 앞 마당에 햇볕가림막 만들기, 놀이터와 학교 건물 외벽에 페인트 칠하기, 형편이 가장 어려운 집 방문해 생필품 전달하기…. 지난 4일 캄보디아로 건너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청소년자원봉사단 33명이 맞닥뜨린 첫 ‘임무’다.
이번 캠프는 2001년부터 매년 여름방학에 몽골·한국 초등생 공동 캠프를 운영해온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청소년을 대상으로처음 마련한 해외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세계교육부 김진하 과장은 “몽골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한국 아이들이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 친구들도 똑같은 사람이고 배울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에 띄게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수평적으로 받아들이고 책임감 있는 세계 시민으로 자라는데 구체적인 체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껴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했다.
10박11일에 이르는 캄보디아 자원봉사캠프는, 이러한 ‘기획 취지’에 걸맞게 굳센 체력과 강인한 의지 없이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빡빡하다. 나무심기, 수도관 설치, 거리 아이들 목욕 시키기, 노숙자들에게 밥 나눠주기, 빈민가 주민들과 베트남 보트피플에게 생필품 전달하기…. 아이들은 쇼핑과 관광이 엄격히 배제된 이번 일정에 참여하면서 항공료와 체류비 이외에 한 사람당 30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냈다. 봉사단이 전달하는 생필품 등은 모두 학생들의 기부금으로 마련된 것이다.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사서 고생하러 가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어떤 기대를 했을까. “엄마가 생각 좀 바꿔가지고 오라셨어요.” 이현경(개포고 2학년) 양은 장기 해외봉사를 떠나겠다는 말에 부모님이 반색을 하셨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되는 강행군. 난생 처음 해보는 일 투성이인 봉사활동 일정에 아이들은 틈만 나면 골아떨어진다. 1m도 넘는 깊이로 화장실 구덩이를 파느라 한 나절 가량 삽질을 하고 나면 팔목과 허리가 시큰거린다. 새로 지을 학교 부지에 나무를 심던 날은 담벼락만 덜렁 있는 허허벌판을 망연자실 바라보았고, 프놈펜 인근 그랑돈데 마을에 있는 ‘꼬마비전센터’에 수도관을 설치하던 날은 바싹 마른 땅에서 흩날리는 모래 먼지와 종일 씨름했다. 축구와 달리기, 수건돌리기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까지 동원해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학교 봉사동아리에서 꾸준히 자원봉사활동을 했다는 오세훈(태릉고 2학년)군도 “낯선 환경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고된 캠프에 참여하면서 학생들이 느낀 점은, 캠프에 보내면서 ‘가진 게 얼마나 많은 지 실감하라’던 부모들의 기대를 넘어서는 듯 하다. 이현경양은 “가난하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빈민가 아이들과 부모들의 표정이 오히려 서울 사람들보다 더 밝았는데, 그걸 보면서 다른 이들의 삶을 내 멋대로 판단하고 불쌍하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이름을 외는데 으뜸일 정도로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낸 홍연종(개포고 2학년)양은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이 내 장점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자원봉사는 내가 남에게 무언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받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번 캠프를 총괄한 세계교육부 김경희 부장은 “자원봉사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하는 기회”라고 했다. “열린 마음과 창의성, 리더십, 책임감같은, 학교 공부를 하면서 지나치기 쉬운 덕목들을 자기 안에서 끌어내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차례나 나무 심기에 실패한 팍팍한 땅에 또 나무를 심고 거름을 주고 물을 부은 뒤, 아이들은 학교 담벼락 위에 올라가 끝없이 펼쳐진 벌판을 바라보았다. “나무가 자라 그늘을 만들고 망고나무에 망고가 열리면 꼭 다시 올거예요.” 김미주(부산국제외고 2학년)양은 국제기구 자원봉사자가 될 결심을 굳힌 듯 하다.
프놈펜/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학생들은 프놈펜에서 가장 주거 환경이 열악한 스텅미언저이 지역 주민들을 찾아가 생필품을 전달했다.
학생들이 메콩강 유역에 살고 있는 베트남 보트피플을 찾아가 생필품과 식료품을 나눠주고 있다. 캄보디아인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배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살아간다.
유니세프 캄보디아 자원봉사 캠프는 10박11일 동안 나무심기, 수도관 설치, 거리 목욕 봉사 등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됐다. 낯선 환경에서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 했지만, 아이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뛰어노는 시간만큼은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