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동초등학교 방학중 보육교실 아이들과 교사들이 잠시 짬을 내 사진을 찍었다. 학생들은 기자를 ‘찰칵찰칵 아저씨’라고 불렀다.
지역사회와 손잡은 촌동초의 방학중 보육교실
서울 강동구 길1동 천동초등학교는 겨울방학 중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돌봐주는 ‘방학중 보육교실’이 방학 내내 문을 열기 때문이다. 지난 해 9월 문을 연 이 보육교실엔 너무도 앙증맞은 스무 명 남짓한 1~2학년 학생들이 보육 교사의 지도 아래 생활하고 있다. 부모들은 “믿을 수 있는 학교에서 저렴한 가격에 아이들을 맡아줘 무척 만족스럽다”는 반응들이다.
빡빡한 스케줄, 직접 점심까지
지난 9일 찾아간 천동초등학교는 이달 초부터 방학중 보육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 가량 쉰 뒤 바로 문을 열었다. 학기 중에는 방과 뒤 약 4~5시간 아이들을 돌보지만, 지금은 방학 중이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을 돌본다. 봄방학을 포함해 꼬박 두달여를 여는 이 방학중 보육교실엔 전담 교사 두 명이 있다. 우현숙(36) 보육교사는 “아이들이 너무 어리진 않아 그렇게 힘이 들진 않는다”며 “방학이라 시골에 간 친구들이 몇몇 있는데 벌써 보고 싶다”고 말했다.
복지관·지역단체 도움 싼값에 가능
원하는 이 많지만 공간·예산 부족
전국 초등학교 설치율 29.3% 불과
오전 10시까지 등교지만 아이들 태반은 9시면 학교에 온다. 잠시 음악을 듣고, 비디오를 본 뒤 아이들과 함께 학습지를 푼다. 학기 중에 받았지만 노느라고 풀지 못했던 학습지들이 이때 제 역할을 한다.
점심은 교실 안에 설치된 작은 주방에서 교사들이 직접 밥과 국을 끓여 먹는다. 학교 식당에서 김치를 제공받고, 나머지 밑반찬은 아이들이 조금씩 싸오는 것으로 해결한다. 한끼 당 천원 꼴의 점심이지만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점심을 먹고 나선 줄넘기, 공놀이 등 바깥 활동을 잠시 한 뒤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본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은 한자와 영어, 중국어 등을 가르치는데, 한자와 영어는 근처 복지관의 자원봉사 할아버지들의 도움을 받고, 중국어는 이 학교 김은희 교장이 직접 지도한다.
이날 오후 아이들에게 ‘안·심·매·화·촌·평·초·출(安心海花村平草出)’ 등 한자 8자를 가르친 박홍래(72) 할아버지는 “7급 수준으로 가르치는데 첨엔 말을 잘 안 듣던 아이들이 지금은 나를 잘 따른다”며 흐뭇해했다.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아이들은 집에 가거나 학원으로 간다. 학원에 가는 아이들부터 먼저 가고, 집에 가는 아이들은 끼리끼리 짝을 지어 5시까지 있다 교실을 떠난다.
알찬 프로그램들로 차곡차곡 짜여있다 보니 학부모들은 다들 만족해한다. 1학년 유빈이를 맡긴 조아라(31)씨는 “학원에 보낼 때와 가격도 15만원 이상 차이나고, 선생님들이 정성들여 가르치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며 “유빈이가 약간 산만했는데 보육교실에 다닌 뒤로는 집중도 잘하고 훨씬 안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 사회·학교가 함께 키운다
천동초 보육교실은 지역 사회와 연대가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근처 복지관에서 영어와 한자 등 강사 할아버지를 두 분이나 지원받고, 지역 단체인 ‘서울 뉴강동 라이온스클럽’에서는 아이들의 교육비를 일부 보조해 준다. 이 때문에 천동초 보육교실은 월 교육비를 다른 학교보다 2만원 가량 적은 4만원으로 책정할 수 있었다. 또 일부 주민들의 지원에 간식비를 아낀 돈을 합쳐 20명의 아이들 가운데 8명에겐 월 교육비를 받지 않고 있다.
학부모들과 고학년 학생들도 보육교실 운영에 단단히 한 몫 한다. 학기 중에는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찾아와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일주일에 한 차례씩은 직접 책을 읽어준다. 5~6학년 언니, 오빠들도 매주 금요일 찾아와 청소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준다.
수요 많지만 공급이 못 따라가
“공간이 좁아 아이들을 원하는 만큼 수용할 수 없어 아쉬워요.” 이 학교 이임경 교감의 말이다. 현재 교실 수준에서 최대치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25명 안팎. 하지만 지역의 생활 수준이 넉넉지 않아 들어오려는 학생은 이보다 훨씬 많다. 이 교감은 “이 교실도 남는 교실이 없어 지난해 여름 예절실로 쓰던 교실을 재보수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방학 중에는 불가피하게 1학년 학생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교실을 더 만들면 좋겠지만 남는 교실이 없고, 예산 확보도 만만치 않다. 현재의 보육교실도 보일러를 설치하고, 부엌 시설과 휴식방을 만들고, 도배를 새로 하는 데 3천여만원이 들었다. 정부 지원을 받지만 일부 모자란 부분을 학교 예산으로 메웠다. 보육 교사 월급도 한 명은 지원을 받지만, 남은 한 명은 수익자 부담으로 아이들의 보육비에서 지급된다.
설치율 29%, 설치율과 크기를 함께 늘려야
전국 5732개 초등학교 가운데 1685개 학교에 1747개 보육교실이 설치돼 있다. 설치율 29.3%다. 이 곳에서 보살핌을 받는 학생들은 3만7천여 명으로 전체 초등 1~3학년 학생 190여만 명의 2%가 채 안된다. 정부는 올해 학교당 1천만원씩 모두 70억원을 지원해 보육교실을 700개 정도 더 늘릴 계획이다.
대도시는 설치율이 더 낮다. 서울 563개 초등학교 가운데 방과후 보육교실을 여는 학교가 128개교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 평균보다 7%포인트 낮다. 대구와 광주가 41개, 인천은 61개에 머물고 있다. 보육교실은 보일러를 깔고 부엌을 설치하는 등 교실 하나를 통째로 사용해야 하는데 대도시의 경우 남는 교실이 드물어 보육교실 설치가 여의치 않다. 강원도가 235개로 가장 많이 설치돼 있고, 경기도(212개), 충남(152개)이 그 뒤를 잇는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천동초등학교 방학중 보육교실 아이들이 박홍래 할아버지의 지도로 한자 공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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