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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느릿하게 찾아드는 ‘자연산’ 행복

등록 2007-01-14 22:26

행복한 느림보

도시와 시골의 차이? 보통 씽씽 달리는 차들, 밤 늦도록 화려하게 빛나는 간판들, 잠시도 가라앉지 않는 먼지와 소음 등을 꼽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두렵고 싫은 건 휙휙 지나가는 시간이 아닐까?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 종일 사람을 얽매는, 일주일, 한달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휙휙 사라져 버리는 ‘도시의 광속 시계’는 정말 끔찍하다.

그 속도가 싫어서 한 가족이 도시를 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인다는 김제평야에 새 둥지를 틀었다. 동화작가인 아빠와 가수 뺨치는 기타 실력을 뽐내는 서울 토박이 아내, 그리고 꼬마 화가를 자처하는 딸 홍비와 잠시도 쉴 틈이 없는 개구쟁이 아들 의석이가 그들이다.

‘초짜 촌놈’ 가족의 시골 생활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비가 온다고 잠깐 거두어 그대로 덮어둔 고추는 하룻밤새 3분의 1이 썩고 말았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고구마를 캤는데, 그것도 3분의 1은 호미에 찍혀 생채기가 났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겠다며 잡초들과 벌인 전쟁도 얼마 안 가 두 손 들고 항복하는 것으로 끝났다. 귀엽고 앙증맞은 애완견마저 진드기에 물려 시름시름하다 세상을 뜬다.

그러나 그 정도 불편함과 고달픔은 시골이 베푸는 온갖 ‘은총’에 금방 잊혀진다. 텃밭 울타리 안 곳곳에 숨바꼭질하듯 숨겨진 오이와 참외, 호박, 가지, 방울토마토들은 경이롭기 그지 없다. 텃밭에서 손수 키운 싱싱한 상추를 끼니 때마다 똑똑 따서 아작아작 씹어 먹는 맛이란, 세상의 그 어떤 일류 요리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갓 딴 깻잎에 매운 고추까지 넣은 상추쌈을 한 입 가득 넣고 씹으며 한적한 시골집 마당을 내다보면 절로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래, 이게 바로 행복이야!’

아이들은 학교에서 또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나. 황산초등학교는 전체 학생 수가 고작 50명 남짓. 학년 구분 없이, 누나, 언니, 동생 상관 없이 서로 어울려 홍비와 의석이는 맘~껏 뛰논다. 메뚜기며 개구리도 잡고, 큰 나무 아래서 고누 두고, 냇가에서 미역 감고.

비료 포대나 장판 조각 하나만 있으면 아무 데서나 탈 수 있는 눈썰매 또한 시골살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손수 만든 갈탄 난로에 고구마 구워 먹으며, 같이 노래 부르고 옛날 이야기하다 보면 천국이 따로 없다.

사람들은 또 얼마나 친절한가. 시도 때도 없이 먹거리를 갖다주는 친절한 미자씨, 수도 고장, 전기 고장, 병해충 발생 등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 도와주는 ‘짱가 성재 아저씨’, 초보 농부에게 온갖 조언을 아끼지 않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무엇보다 이들 가족은 속도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이 곳에선 시간이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흘러간다. 한적한 시골 풍경 속에서 풀과 나무를 닮은 사람들만 이따금 하나 둘씩 지나간다. 밭고랑 사이로 전해지는 고추와 상추의 이야기, 무성한 잡초 위로 고개를 삐죽삐죽 내미는 온갖 꽃들의 이야기, 그리고 땅 속의 지렁이와 두더지들의 이야기 등 길고 긴 하루 속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주렁주렁 달려나오는 감자처럼 기쁜 일을 주렁주렁 만들어 가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홍비와 의석 가족의 ‘천연 행복’을 아주 조금만이라도 뺏어오고 싶다.

신정민 글, 신홍비 그림. 어린른이/8천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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