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훔쳐보는 선생님 일기
일기는 가장 사적인 글 가운데 하나다. 남이 보는 걸 전제로 하지 않고, 따라서 남이 봐서도 안된다. 그렇지만 남의 일기를 훔쳐 읽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드물다. 한 장 한 장 넘겨갈 때마다 큭큭 대며 웃기도 하고, 진한 감동을 받기도 하고, 대견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고양 고봉초등학교 선생님이 반 아이들의 일기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 2005년 2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가르쳤던 아이들 글이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진솔한 고백 일기를 덧붙였다. 아이들의 일기를 보면서 자신의 일기를 써 나간 것이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합작 일기’는 일단 재미있다. 읽다 보면 아이들만의 세계로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늘 궁금하기만 하지만 들여다 볼 길이 없는 학교 생활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니, 아이들보다는 부모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가령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 자녀가 뭘 하는지 부모들이 알고 있을까? 딱지, 축구, 수다.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방송실에서 틀어주는 가요를 따라 부르며 있는 감정 없는 감정 다 쏟아내며 노래를 흥얼대는 게 요새 아이들 풍경이라고 한다. 청소 시간에는 열심히 청소를 할까? 몰래 숨어 춤을 추는 아이들이 많다. 최근에 가장 유행하는 춤은 털기춤이란다. ‘고추’와 ‘가슴’이 들어간 말은 교사들 사이에선 ‘사용 금지’ 단어다. 그런 말만 들어가도 아이들은 낄낄대며 난리를 피우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며 자녀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겉보기에는 버릇없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쑥쑥 커가고 있는 것이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하게 보이지만 식물과 대화를 나누고, 밤마다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할머니가 오래 오래 사시길 바란다고 아이들은 적고 있다. 정말이지 이슬처럼 깨끗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합작 일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은 가슴을 저미게 하는 글들이다. 생신을 맞은 엄마한테 아빠가 꽃바구니 배달 선물을 줬는데 엄마가 돈으로 달라며 투덜거렸다. 보통 아이 같으면 “엄마가 화내지 않으면 좋겠다” 정도로 표현하고 말겠지만, 수진이는 “엄마는 좋으면서 화를 낸다”고 했다. 수진이의 깊은 마음을 엄마는 알고 있을까? 엄마가 식당 일을 나가서 밤 12시에나 들어온다는 시온이는 엄마를 빨리 만날 수 있는 다음날 아침이 무척 기다려진다. 학년 초 엄마가 사주신 새 가방을 보며 선아는 “정말 이 가방을 아껴 쓰고 소중하게 다루고, 이젠 부모님께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썼다. 어머니는 추운 겨울이 지나면 다시 태어날 겨울 나무를 말 없이 지탱하고 있는 어둠 속의 뿌리 같은 존재임을 어른들이 얘기하지 않아도 애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부모들은 몰랐던 자녀의 면면을 새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녀와의 관계 형성에서 뭐가 빠졌는지를 생각해 보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집에서도 자녀와 부모가 같이 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이면 어떨까. 그래서 가끔씩 한번씩 바꿔서 읽어 본다면, 갈등의 소지도 없애고 서로에 대한 이해 폭을 넓히게 되지 않을까. 문현식 글, 홍윤표 그림. 철수와영희/8500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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