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09 21:25
수정 : 2005.01.09 21:25
태백산맥(1∼10권) 조정래 해냄
겨울 방학. 긴 호흡의 소설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두툼한 책들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시간과 마음 모두가 여유롭기 때문이다.
작가는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53년 한국 전쟁 종전까지 이 땅의 아픔과 민족 분단의 현장을 <태백산맥>을 통해 그려 낸다. 여순 반란 사건 실패로 관련자들이 지리산으로 숨어드는 1948년 10월 24일을 시작으로 삼는다. 한국 전쟁을 거쳐 1953년 늦은 가을까지 펼쳐지는 격동기가 그려지며, 식민 통치를 받은 경험이 어떤 후유증으로 우리에게 남게 되는지,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어떻게 골육상쟁의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지 잘 드러낸다.
소설의 주무대는 전남의 척박한 바닷가 마을 벌교와 보성, 빨치산과 군경의 충돌로 피에 물든 지리산 등이다. 작가는 몇 쪽만 읽어도 금세 탄복할 정도로 호남 방언들을 맛깔나게 구사하며, 크고 작은 사건들을 종횡으로 엮어 가며 등장인물들을 완벽하게 부각시킨다.
이들은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던 이 땅의 민중들. 치열한 자세로 언제나 전위에 서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구체적인 삶 속에서 차츰 구조적인 현실에 눈 떠가는 인물,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인물 등 다양하게 표현되는 군상들 속에 이 땅의 비극적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다.
한때 이 책은 이승만 정부를 친미파로, 여순 사건을 민중 봉기로, 한국전쟁을 해방 전쟁으로 그렸다며 이적 표현물로 고발되었다. 하지만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 최소한 이 작품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비틀거렸던 그 동안의 관점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사고로 가는데 긴요한 노둣돌 역할을 한다.
농민이 역사의 주체가 된 이유를 그려내고 싶었다, 왜곡된 역사적 사건을 수정하고 싶었다, 사회주의 운동을 정당하게 자리매김하고 싶었다, 분단 극복 의지를 보여 주고 싶었다는 것이 작가의 말.
이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분단의 역사와 본질을 서사의 매력 속에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풀어내는 작가의 시도를 충분히 감상하고 평가해 보자. 이는 통일로 가는 진정한 첫걸음, 우리 안의 갈등과 내 안의 모순들을 추스리고 다스리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허병두/서울 숭문고 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wisefr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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