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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위선 가득 찬 어른들의 세상, 안녕~

등록 2007-04-08 15:19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 ‘당나귀 귀’ 등 3부작

바보, 멍청이, 열등생, 미련퉁이, 덜 떨어진 놈, 울보…. 프랑스 작가 쎄레쥬 뻬레즈의 3부작 소년소설 <당나귀 귀>, <난 죽지 않을 테야>, <이별처럼>(도서출판 문원)에서는 주인공에게 온갖 조롱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이런 모욕을 퍼붓는 이들은 다름 아닌 부모와 선생들이다. 이렇듯 가정과 학교는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 포근한 울타리와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가장 예리하게 상처를 입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가정·학교서 조롱당하는 레이몽

고통 당할때마다 서글픈 유머가…

상처만 주는 세계 행복은 있을까

레이몽의 별명은 ‘당나귀 귀’. 선생이 하도 귀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귀에 모가 나서 붙여진 별명이다. 소년의 처지는 실로 한심하고 딱하기 그지없다. 간단한 셈도 하지 못하는 데다 심약하고 몸집도 가장 작아, 같은 반 아이들에게조차 거의 먹잇감에 가깝다. 기진맥진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더욱 원시적인 폭력이 기다린다. 엄마의 쉴 새 없는 트집 잡기에 뒤이어 아빠는 걸핏하면 발길질, 주먹질, 채찍질이다. 소년에게 세상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자기를 괴롭히려는 음모로 가득한 곳이다.


이 작품을 절반 정도 읽을 때까지는 어찌된 일인가 싶었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안쓰러우면서도, 자꾸만 웃음이 배어나오니 말이다. 그건 주인공의 시점으로 전달되는 심리와 정황 묘사에 담긴 유머 때문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소년의 머릿속에서는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귓속에서는 당나귀 한 마리가 히힝거리며, 뱃속에서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건 고통과 두려움을 내장하고 있는 서글픈 유머일 수밖에 없다. 이런 유머의 뒤편으로 조금만 돌아가 보면 편협함과 위선으로 똘똘 뭉친 어른들의 세계가 부조리극처럼 어지럽게 펼쳐진다.

레이몽은 유일하게 자기를 이해해 주는 어른인 빵집 아저씨의 조수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저씨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이런 소망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뒤, 출구는 엉뚱한 데에서 열린다. 정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선생이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요양센터로 가게 된 것이다. 듣기 좋은 말로 특수학교라 불리는 이곳에서 소년은 처음으로 행복을 느낀다. 저마다 심각한 장애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오히려 마음을 열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줄 줄 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언제나 살며시 미소만 짓는 벙어리 소녀 안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큰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파도보다도, 한밤중에 창문을 두들기는 빗줄기보다도 강렬한 이 감정! 조용한 별들의 세계에서 갑자기 혁명이라도 일어난 듯한 이 느낌!

우연히 찾아온 행복은 수평선 저 멀리서 가물거리는 작은 배처럼 아슬아슬하다. 레이몽은 결국 강제로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심하게 열병을 앓게 된다. 혼수상태 속에서 소년의 의식은 고통스러운 현재와 자기가 마음 속 깊이 꿈꾸던 아름다운 세상 사이를 오간다. 작가는 과감하게도 이 부분의 묘사에 마지막 권 전체를 바쳤다. 하지만 환상이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제 소년은 영원히 먼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그간의 기억들이 마지막으로 뇌리를 스쳐간다. 그리고… 안녕! 책을 덮으며, 마음이 몹시 아프다. 그러고 보니, 우린 거칠고 황량한 세상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여린 들꽃 같은 이 아이들에게 너무도 눈길을 주지 못했다.

오석균/도서출판 산하 주간 mitba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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