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심승현의 <파페포포 안단테> 심승현의 <파페포포 안단테>는 일종의 ‘만화 잠언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잠언의 사전적 정의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교훈이 되는 짧은 말’이므로, 이 만화책에 잠언만 들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콩트와 우화 형식의 짧은 이야기도 있고, 작가 개인의 경험을 살린 에피소드들도 있으며, 영화에서 따온 대사들도 있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삶의 지혜를 전하려 한다는 점에서 잠언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론 각 에피소드 뒤에 있는 인생 해설 같은 글들이 앞의 깔끔한 이야기들을 오히려 방해해서 거북스럽기도 하지만, 다양한 글들과 캐릭터를 잘 살린 그림들이 어울려 있는 작품이다. 책의 앞부분엔 신화와 철학 이야기도 있다. 인간의 탄생 신화와 철학적 사유의 시작에 관한 에피소드는 기존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대 철학자 탈레스의 에피소드가 인생에서 ‘넘어짐’의 의미와 연관 있다는 것이다. 만화의 주인공 파페는 거창한 자기 인생의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앞만 보고 가다가 그만 계단에 걸려서 넘어지고, 탈레스는 하늘의 별을 보고 걷다가 우물에 빠진다. 거의 2700년의 시차를 넘어서 미래를 꿈꾸는 소년과 고대의 철학자는 작가의 멋진 필치로 그려진 천문도 같은 우물 바닥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파페는 묻는다. “탈레스 아저씨, 어떻게 사는 게 옳은 삶인가요?” 탈레스가 대꾸한다. “그건 나도 모르지. 알고 있다면 내가 이렇게 우물 안에서 별을 바라보겠나!” 파페는 하늘의 별을 보며 독백한다. “오늘 나는 별을 보며 꿈을 꾸는 그런 하루를 살고 싶다.” 그런데 이 ‘넘어짐의 의미’란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무의미하게 넘어지지 않고 사는 것과 연관 있다. 서로 대립되는 것은 오히려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페는 자신에게 그리고 또 포포에게 속삭인다. “생의 한복판을 걸어가고 있는 지금의 내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말은, 조금은 느리게, 안단테, 안단테...” 파페와 포포는, 일이 안 풀려 조급해질 때마다 일부러 소리내어 외친단다. “안단테, 안단테.” 그래서 그들은 이런 삶의 지혜에 이른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더러는 실패하여 눈물 흘리더라도, 내게 허용된 깊이와 넓이만큼 살기를 바란다.” 그러고 보면 안단테는 우리가 잊기 쉬운 ‘삶의 속도’를 상기시키는 말인 것 같다. 넓은 의미에서 삶의 속도 말이다. 맛깔진 글 곁들인 ‘만화 잠언집’
우물빠진 파페와 탈레스의 대화
넘어짐 통해 길어올린 ‘안단테’
삶과 잠언 사이 ‘평형’ 생각게
그렇다면 이 ‘안단테’라는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그러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안단테(andante)는 악보에서 빠르기를 가리키는 음악 용어로, 우리는 ‘느리게’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원래 이탈리아어에는 그런 뜻이 없다. 그것은 안다레(andare)라는 동사의 현재분사형인데, 안다레는 ‘가다’라는 뜻의 매우 일상적인 말이다. 영어 동사 고우(to go)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안단테는 기본적인 속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냥 걷는 속도’를 뜻한다. 그래서 때로는 사물의 ‘평범한’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악보의 빠르기 단위에서는 물론 알레그로나 비바체보다 느리기 때문에 ‘느리게’라고 번역하지만, 사실 기본 빠르기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기본 빠르기가 다른 것들에 비해 가장 늦은 속도에 해당되는 셈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문명을 이루는 것들의 속도는 일상의 자연스런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예술에서 작품을 이루는 것들의 속도도 자연스런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보자. 수레의 속도는 걷는 속도보다 좀 더 빠르다. 고대로부터 말이라는 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좀 더 빠르기 위해서다.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우리는 칙칙폭폭 달리는 옛 기차를 느림의 향수로 곧잘 은유하지만 그 역시 대단한 속도를 낼 수 있다. 악보의 빠르기에는 안단테 이후 안단테 칸타빌레에서 알레그레토를 거쳐 비바치시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빠르기의 단계가 있다. 이런 다양한 빠르기들이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냥 걷는 속도’로는 문명을 이룰 수도 없고, ‘그냥 진행하는 속도’로는 문화?예술을 꽃피울 수도 없다. 탈레스의 일화에도 해석의 함정이 있다. 그는 마치 신선처럼 느긋하게 하늘을 관찰하며 산 사람이 아니다. 천체의 운행을 관찰하기 위해서 탈레스는 매우 부지런해야 했다. 그가 우물에 빠진 것은 탐구에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가 우물에 빠진 게 아니라 스스로 마른 우물에 내려갔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는 우물의 원통을 마치 하나의 거대한 ‘천체망원경’으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남보다 부지런해서 남보다 많은 지식과 지혜를 남겼다. 당연히 그 자신 삶의 속도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랐다. 한 마디로 바쁜 사람이었다. 이제 우리 삶에서 잠언의 의미를 짚어 볼 때다. 잠언은 삶의 지혜 자체가 아니다. 삶의 지혜를 곧바로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잠언은 종종 어떤 극단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삶이 빠르게 돌아가면, 잠언은 느림의 극단을 슬쩍 제시한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삶의 속도를 잠언 속에서 찾을 수는 없다. 잃어버린 삶의 지혜도 잠언 속에 있지 않다. 사람들은 잠언이 균형 있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걸로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잠언은 삶의 저울 그 자체가 아니다.
천칭은 가운데 세로대가 있고 그것을 가로질러 가로대가 있으며 양끝에 저울판이 달린 저울이다. 잠언을 활용하는 자세는, 한 쪽 저울판에 잠언을 올려놓고 다른 쪽 저울판에 현재 우리의 삶을 올려놓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삶에 도움이 되는 최적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찾는 삶의 지혜는 잠언과 우리 삶을 저울질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평형 속에 있다. 삶의 지혜는 잠언의 교훈과 현실의 삶 사이의 균형 있는 소통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잃어버린 삶의 속도도, 과거의 미덕을 제안하는 잠언과 미래를 사유하는 나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삶의 속도가 지금 나에게 최적의 속도일 수 있는 것이다.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심승현의 <파페포포 안단테> 심승현의 <파페포포 안단테>는 일종의 ‘만화 잠언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잠언의 사전적 정의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교훈이 되는 짧은 말’이므로, 이 만화책에 잠언만 들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콩트와 우화 형식의 짧은 이야기도 있고, 작가 개인의 경험을 살린 에피소드들도 있으며, 영화에서 따온 대사들도 있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삶의 지혜를 전하려 한다는 점에서 잠언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론 각 에피소드 뒤에 있는 인생 해설 같은 글들이 앞의 깔끔한 이야기들을 오히려 방해해서 거북스럽기도 하지만, 다양한 글들과 캐릭터를 잘 살린 그림들이 어울려 있는 작품이다. 책의 앞부분엔 신화와 철학 이야기도 있다. 인간의 탄생 신화와 철학적 사유의 시작에 관한 에피소드는 기존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대 철학자 탈레스의 에피소드가 인생에서 ‘넘어짐’의 의미와 연관 있다는 것이다. 만화의 주인공 파페는 거창한 자기 인생의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앞만 보고 가다가 그만 계단에 걸려서 넘어지고, 탈레스는 하늘의 별을 보고 걷다가 우물에 빠진다. 거의 2700년의 시차를 넘어서 미래를 꿈꾸는 소년과 고대의 철학자는 작가의 멋진 필치로 그려진 천문도 같은 우물 바닥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파페는 묻는다. “탈레스 아저씨, 어떻게 사는 게 옳은 삶인가요?” 탈레스가 대꾸한다. “그건 나도 모르지. 알고 있다면 내가 이렇게 우물 안에서 별을 바라보겠나!” 파페는 하늘의 별을 보며 독백한다. “오늘 나는 별을 보며 꿈을 꾸는 그런 하루를 살고 싶다.” 그런데 이 ‘넘어짐의 의미’란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무의미하게 넘어지지 않고 사는 것과 연관 있다. 서로 대립되는 것은 오히려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페는 자신에게 그리고 또 포포에게 속삭인다. “생의 한복판을 걸어가고 있는 지금의 내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말은, 조금은 느리게, 안단테, 안단테...” 파페와 포포는, 일이 안 풀려 조급해질 때마다 일부러 소리내어 외친단다. “안단테, 안단테.” 그래서 그들은 이런 삶의 지혜에 이른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더러는 실패하여 눈물 흘리더라도, 내게 허용된 깊이와 넓이만큼 살기를 바란다.” 그러고 보면 안단테는 우리가 잊기 쉬운 ‘삶의 속도’를 상기시키는 말인 것 같다. 넓은 의미에서 삶의 속도 말이다. 맛깔진 글 곁들인 ‘만화 잠언집’
우물빠진 파페와 탈레스의 대화
넘어짐 통해 길어올린 ‘안단테’
삶과 잠언 사이 ‘평형’ 생각게
그렇다면 이 ‘안단테’라는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그러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안단테(andante)는 악보에서 빠르기를 가리키는 음악 용어로, 우리는 ‘느리게’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원래 이탈리아어에는 그런 뜻이 없다. 그것은 안다레(andare)라는 동사의 현재분사형인데, 안다레는 ‘가다’라는 뜻의 매우 일상적인 말이다. 영어 동사 고우(to go)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안단테는 기본적인 속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냥 걷는 속도’를 뜻한다. 그래서 때로는 사물의 ‘평범한’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악보의 빠르기 단위에서는 물론 알레그로나 비바체보다 느리기 때문에 ‘느리게’라고 번역하지만, 사실 기본 빠르기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기본 빠르기가 다른 것들에 비해 가장 늦은 속도에 해당되는 셈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문명을 이루는 것들의 속도는 일상의 자연스런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예술에서 작품을 이루는 것들의 속도도 자연스런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보자. 수레의 속도는 걷는 속도보다 좀 더 빠르다. 고대로부터 말이라는 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좀 더 빠르기 위해서다.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우리는 칙칙폭폭 달리는 옛 기차를 느림의 향수로 곧잘 은유하지만 그 역시 대단한 속도를 낼 수 있다. 악보의 빠르기에는 안단테 이후 안단테 칸타빌레에서 알레그레토를 거쳐 비바치시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빠르기의 단계가 있다. 이런 다양한 빠르기들이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냥 걷는 속도’로는 문명을 이룰 수도 없고, ‘그냥 진행하는 속도’로는 문화?예술을 꽃피울 수도 없다. 탈레스의 일화에도 해석의 함정이 있다. 그는 마치 신선처럼 느긋하게 하늘을 관찰하며 산 사람이 아니다. 천체의 운행을 관찰하기 위해서 탈레스는 매우 부지런해야 했다. 그가 우물에 빠진 것은 탐구에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가 우물에 빠진 게 아니라 스스로 마른 우물에 내려갔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는 우물의 원통을 마치 하나의 거대한 ‘천체망원경’으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남보다 부지런해서 남보다 많은 지식과 지혜를 남겼다. 당연히 그 자신 삶의 속도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랐다. 한 마디로 바쁜 사람이었다. 이제 우리 삶에서 잠언의 의미를 짚어 볼 때다. 잠언은 삶의 지혜 자체가 아니다. 삶의 지혜를 곧바로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잠언은 종종 어떤 극단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삶이 빠르게 돌아가면, 잠언은 느림의 극단을 슬쩍 제시한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삶의 속도를 잠언 속에서 찾을 수는 없다. 잃어버린 삶의 지혜도 잠언 속에 있지 않다. 사람들은 잠언이 균형 있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걸로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잠언은 삶의 저울 그 자체가 아니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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