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문자메세지를 보고 있는 연현중학교 학생들
휴대폰을 놓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지 않은 가정이 있을까? 부모들은 휴대폰에 매달리는 자녀를 보면서 성적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아닐까 걱정한다. 걱정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간섭으로 옮겨지고 마침내 다툼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휴대폰은 무엇일까? 부모들이 알아야 학습의 최대 딜레마인 휴대폰 문제를 풀 수 있다. 경기도 안양시 연현중학교 1,2학년 학생 146명한테 물어봤다.
1318 부모세대 대타협 접점은?
휴대폰은 ‘라이프 스타일’이다. “휴대폰이 없으면 나만의 비밀이 없어진다.” 1학년 박혜빈양의 말이다. “쑥스러운 말을 문자로 하”고 “평소에 못하는 말을 그 친구에게만 할 수 있”기에 아이들은 문자나 휴대폰 통화가 좋다. 부모한테 숨기고 싶은 일들이 많아지는 시기, 청소년들은 친구와의 은밀한 의사소통을 통해 부모한테서 정서적으로 독립한다.
휴대폰은 자기관리 도구다. 시험일정을 달력에 입력해 ‘디데이 카운트’를 하고 영화보러 가기로 한 날이나 친구들의 생일도 ‘일정관리’에 입력한다. 용돈의 씀씀이를 정리할 때는 계산기로 활용한다. 손목시계보다 휴대폰의 전자시계를 선호한다. 아침을 깨우는 것도 휴대폰의 모닝콜 기능이다.
휴대폰은 ‘놀이 상대’다. 통계청이 지난 4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15세~19세 청소년은 하루에 60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수면시간 8시간을 빼면 시간당 평균 3.75개, 16분에 1개를 썼다. 휴대폰이 없으면 “심심하다.” 공부 중간에 친구들의 안부도 묻고 음악도 들으면 “기분전환에도 좋다.”
휴대폰이 ’공부 방해꾼’이라는 부모들의 걱정에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부정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하면서 공부할 시간이 없어진다.” 1학년 유우현군의 고백이다. “나도 모르게 계속 만지게 된다”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공부를 하는 중에도 친구에게서 문자가 오면 답장을 해야 하기때문에 “집중력이 약해지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휴대폰과 공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아이들조차 “공부할 때 휴대폰을 꺼 두는” 경우가 많았다. “공부하다 머리식힐 때 컴퓨터 게임보다 문자를 보내는 게 낫다”는 1학년 김현주양의 말도 공부에 집중한 뒤의 얘기다. 휴대폰이 공부를 방해한다는 견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쉬는 시간에만 휴대폰을 켜서 쓸만큼 자기 절제를 할 줄 아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찬반 어느 쪽도 아니라고 답한 2학년 김경은양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면서 “자기절제능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휴대폰의 악영향을 아이 스스로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부모나 교사의 지도가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현실이라면 휴대폰을 둘러싼 다툼은 부모의 관심이 지나치거나 혹은 모자란다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조사 대상 학생의 절반 정도는 부모가 자녀의 휴대폰 사용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휴대폰 탓에 실제로 공부에 불편을 느끼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면 부모들의 이런 태도는 무관심이나 다름없다.
관심을 보이는 부모들의 경우에도 그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2학년 이혜민양은 “엄마가 가끔 문자 내용을 보시려고 할 때가 있다”고 했다. 부모가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거나 검사한다고 말한 아이들이 많았다. 한달에 한번 정기검사를 고집하는 부모도 있다고 했다. “검사해서 문자에 욕설이 있으면 혼나는” 경우처럼 아이들의 언어생활이나 일상예절 등을 지도하기 위해 부모들이 선택한 방법이겠지만, 어린 자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아량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녀의 ‘보이지 않는 삶’이 궁금하다면 문자를 훔쳐보는 대신 스스로 얘기할 수 있게끔 대화로 유도할 일이다.
아이들에게 휴대폰은 ‘양날의 칼’이다. 자아독립에 긍정적인 구실을 하는 반면, 학습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부모에게도 ‘야누스의 얼굴’이긴 마찬가지다. 자녀의 안전을 편하게 확인할 수 있지만, 방심하는 사이 휴대폰 중독이라는 복병에 당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휴대폰에 관한 한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타협’이 필요하다. 거창한 게 아니다. 휴대폰 구입시기부터 사용방법까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서로 동의하는 원칙을 만들면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도 부모도 휴대폰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부모- 자녀간 휴대폰 협약서 쓰기 ▲ 협약서, 왜 필요한가? 자녀가 동의한 문서,약속 지키게 만들어 협약서는 휴대폰이 어떤 ‘물건’인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생활복합기 휴대폰, 쓰임새가 많다보니 100% 좋을 수도 없고 나쁠 수도 없다. 하지만 대개 부모는 자녀한테 도움이 되는 순기능을 무시하고 자녀는 공부를 방해하는 역기능을 무시한다.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거나 심할 경우 휴대폰 중독이라는 부작용이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모도 자녀도 휴대폰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활용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살건지, 어떻게 쓸건지 등 협약서 내용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휴대폰이 어떤 구실을 할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또한 협약서라는 형태를 취한다면 약속 이행에 구속력을 부여할 수도 있다. 구두로 이루어지는 부모와 자녀간의 약속은 깨지기 쉽다. ‘잔소리’와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약속을 문서화하는 일은 필요하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철저하게 부모와 자녀의 친밀한 대화를 바탕으로 진행돼야 한다.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고영삼 팀장은 “부모의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자녀의 동의를 구하려는 노력과 정성이 협약서의 핵심”이라고 했다. ▲ 자녀의 휴대폰 구입, 언제가 좋을까? 구입은 중학교 이후··· 교체시기도 정해야
아직 자녀에게 휴대폰이 없다면 구입시기부터 합의해야 한다. 언제가 좋을까?
초등학교 때 휴대폰을 갖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휴대폰에 빠진 내아이 구하기>의 저자 고재학씨는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은 초등학생들이 학교에 휴대폰을 갖고 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며 “어린 시절에 휴대폰을 사용하면 잘못된 공부습관이 배일 우려가 있다”고 했다. 자기조절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휴대폰을 갖게 되면 문자나 게임 등에 중독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휴대폰은 중학교 이후에 마련하는 게 좋다. 연현중학교 학생들은 42%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58%가 중학교 입학 후에 휴대폰을 갖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저학년에 마련한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어린 나이에 휴대폰을 가지게 된다면 사용법에 대한 부모의 세심한 지도가 필요하다.
이미 휴대폰을 갖고 있을 때는 교체시기에 대해 합의할 수도 있다. 2004년 소비자보호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중학생의 휴대폰 평균 사용기간은 13.49개월로 매우 짧다. 거의 1년을 주기로 부모와 자녀간에 휴대폰 실갱이가 반복되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이라도 합리적인 교체주기를 정해 못박는다면 소모적인 기싸움을 방지할 수 있다. 부모의 휴대폰 교체 주기도 자녀와 동일하게 설정해 솔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
휴대폰을 통한 동기부여
성적과 휴대폰 구매 연결시키지 말아야
“이번에 평균 90점 넘으면 휴대폰 사줄게!” 부모들이 휴대폰을 걸고 흔히 하는 약속이다.
하지만 좋은 성적에 대한 보상으로 무언가를 해주는 게 교육적으로 좋지는 않다. 연세마인드케어 김영민 소장은 “만약 목표를 성취하지 못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게 되면 좌절과 실패의 경험만 가질 수 있다”며 “이것은 장차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저하시키고 성취동기가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휴대폰을 갖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능력은 절제와 자제력이다. 통화나 문자를 꼭 필요한 순간에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요금제의 상한을 지키는 등 스스로의 통신생활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높은 평균점수를 요구하는 것보다 휴대폰을 사거나 교체하기로 정한 시점까지 몇가지 행동 목표를 정해놓고 지키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자녀가 자금조달계획을 만들어 휴대폰 구입에 돈을 보태는 것도 책임감을 부여하는 한 방법이다. 용돈관리하는 법을 배워 경제관념을 키워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아이에 맞는 기종과 요금제는?
기종·요금제 따져본뒤 함께 결정을
무조건 최신 휴대폰을 고집하는 자녀를 설득해 필요한 기능만을 내장하고 있는 휴대폰 기종을 선택하는 일도 협약서 작성할 때 빠뜨리면 안된다. 꼭 필요한 기능을 자녀에게 선택하게 하고 함께 검토한 뒤, 그에 맞는 휴대폰을 검색해 보자. 가격대도 고려해야 한다. 자녀가 현재 휴대폰을 쓰고 있더라도 요금제도는 함께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요금제도는 통신생활의 패턴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자녀의 동참은 필수조건이다. 사용 가능한 음성통화량은 적은 대신 문자메시지량이 적다거나 문자메시지만 무제한으로 이용하고 통화는 할 수 없는 요금제도 있다. 다양하고 복잡한 규정 탓에 자녀와 함께 각 이동통신사의 청소년 요금제를 꼼꼼히 비교해 봐야 한다. 휴대폰을 새로 구입하는 경우라면 지난 3월부터 통신3사가 도입한 ‘그린계약서’제도도 유용할 것이다. 그린계약서는 청소년 전용 가입계약서로, 요금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서비스를 안내받아 해지시킬 수 있다. 요금제도를 선택할 때 주의사항 등에 관해서도 대리점 직원에게 상세한 설명을 요구할 수 있다. ‘무제한’ 요금제는 요주의 대상이다. 비용을 아낄 수는 있지만 휴대폰 중독을 부채질 할 가능성이 있다. 문자메시지를 많이 써서 요금이 많이 나오면 자녀의 통신생활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참고로 연현중학교 학생들의 요금사용 현황을 보면, 1만원-2만원(16%), 2만원-3만원(31%), 3만원-4만원(21%), 4만원 이상도 19%였다.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요금제를 모르는 학생도 13%나 됐다.
휴대폰 사용의 매뉴얼
다이어리 사용량 기록하면 중독 막아
휴대폰을 어떻게 쓸 것이냐의 문제는 부모와 자녀간의 가장 많은 대화를 필요로 한다. 원칙을 정하기 앞서 휴대폰 중독에 관한 신문기사를 함께 읽은 뒤 어떻게 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자녀와 나눈다면 자녀 스스로 휴대폰 사용의 한계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공부와 휴대폰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하자. 공부할 때는 휴대폰을 꺼 놓고 시험기간에는 배터리를 부모에게 맡기는 등 방해요소로서의 휴대폰의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학교나 학원 선생님에게 부탁해 수업중에 자녀의 배터리를 보관하도록 부탁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자녀의 동의를 구한 다음의 일이다.
또한 친구들과의 연락도 대강의 원칙을 정하는 것이 좋다. 집에서의 휴대폰 통화는 금지하는 대신 좀 늦은 시간까지 유선전화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한다. ‘휴대폰 사용 다이어리’를 만들어 하루 사용한 문자량을 기록하는 방법도 있다. 간단한 문자내용까지 요약해 적으면 스스로 불필요한 문자 송수신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부가서비스 관련한 내용은 개별적으로 다뤄야 한다. 벨소리나 컬러링, MP3 파일 등의 모바일콘텐츠 다운로드 횟수나 게임, 무선인터넷 사용에 관해서도 원칙을 정해야 한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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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현중학교 1학년 1반 학생들 휴대폰이 수거함에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지난해 3월부터 등교 후 휴대폰을 교사에게 내고 하교 때 돌려받는다.
부모- 자녀간 휴대폰 협약서 쓰기 ▲ 협약서, 왜 필요한가? 자녀가 동의한 문서,약속 지키게 만들어 협약서는 휴대폰이 어떤 ‘물건’인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생활복합기 휴대폰, 쓰임새가 많다보니 100% 좋을 수도 없고 나쁠 수도 없다. 하지만 대개 부모는 자녀한테 도움이 되는 순기능을 무시하고 자녀는 공부를 방해하는 역기능을 무시한다.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거나 심할 경우 휴대폰 중독이라는 부작용이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모도 자녀도 휴대폰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활용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살건지, 어떻게 쓸건지 등 협약서 내용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휴대폰이 어떤 구실을 할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또한 협약서라는 형태를 취한다면 약속 이행에 구속력을 부여할 수도 있다. 구두로 이루어지는 부모와 자녀간의 약속은 깨지기 쉽다. ‘잔소리’와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약속을 문서화하는 일은 필요하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철저하게 부모와 자녀의 친밀한 대화를 바탕으로 진행돼야 한다.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고영삼 팀장은 “부모의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자녀의 동의를 구하려는 노력과 정성이 협약서의 핵심”이라고 했다. ▲ 자녀의 휴대폰 구입, 언제가 좋을까? 구입은 중학교 이후··· 교체시기도 정해야
휴대폰 협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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