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중고교 지필고사에 서술형이 50%까지 확대되면서 중학교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내신 1점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다. 그래픽은 서울 시내 학교의 중간고사 시험지.
중학교 내신 강화의 그늘 / 상 - 대입 빼닮는 ‘고입전쟁’
중간고사는 지나갔지만 기말고사가 금세 다가온다. 이래저래 아이들의 시험 얘기가 집안의 주요 관심사가 되는 6월이다. 고등학생 학부모야 대입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어 그렇다지만, 요즘엔 중학생을 둔 부모들도 속이 탄다. 특목고 입시에서 내신 비중이 높아지면서 내신을 둘러싼 경쟁이 고교 못지 않게 치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적표 표기 방식도 크게 바뀌어 아이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이래저래 불안하고, 그 불안감은 모두를 어렵고 힘들게 만든다. 중학교 내신시험을 둘러싼 학생, 교사, 학부모 등의 고민을 다룬 기획기사 ‘중학교 내신강화의 그늘’를 두 번에 걸쳐 싣는다.
특목고 열풍 ‘불씨’에 새 입시제도 ‘기름’ 부어
중학생마저 ‘내신 화염’ 휩싸이다
“딸의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다른 건 그럭저럭 괜찮은데 과학이 전체석차 69등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봤더니 전교생 500명중에 13.8%. 10%에도 못 드는 성적이었다. 점수는 98점. 고작 2점때문에 이렇게나 밀려나다니 분통이 터진다. 100점을 맞지 못했다는 게 딸애도 속이 상한지 성적표 앞에서 눈물만 떨궜다. 외고입학할 때 제일 중요한 3학년 1학기 내신인데 이번 실수때문에 나중에 불이익이나 당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아들애가 대학에 입학하고 짐을 더는 듯 싶더니 또 다시 전쟁이 시작된 것 같다.” 한 인터넷 학부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서울 중계동에 사는 한 학부모의 심경이다. 한 문제에 울고 웃는 치열한 입시전쟁, 고교 얘기가 아니다. 중학교도 그렇다.
최근 중학교 성적표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과목별 석차. 8과목이면 8번 등수가 매겨진다. 상위 등수에 오르고자하는 학생들의 경쟁이 과목수만큼 벌어지는 것이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90점을 넘어도 100등안에 드는 걸 장담할 수 없다. 500명 정원이라고 할 때 성취도 ‘수’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고도 석차백분율 20%안에도 못드는 것이다. 동점자 수가 많은 탓이다. 중간고사 시험 한 문제 당 배점은 4~5점인데 두 문제만 틀려도 석차백분율이 풀썩 주저 앉는다. 학생들은 한 문제에 목숨을 걸고 부모들은 안전한 100점을 강요하며 자녀를 들볶는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학부모 장아무개(40)씨는 “딸이 영어 하나를 틀리고도 30등이 나왔다”며 “모든 과목을 일일이 전교 석차로 확인하니까 어느 한 과목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했다.
지필고사와 수행평가로 이원화돼 있는 평가방식 때문에 빚어지는 경쟁도 치열하다. 지필고사를 다 맞아도 수업태도나 과제물 평가에서 감점당하면 석차가 밀리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는 수행평가 1점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내신처럼 주요과목에 가중치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위권 학생들은 예체능과목의 1점도 아쉬운 형편이다. 특목고 진학에 사활을 거는 서울 일부 지역들에서는 ‘전쟁’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목동의 한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이아무개양은 “한달에 90만원을 주면 학원에서 음악, 미술, 체육 수행평가 대비까지 해준다”며 “수학, 영어, 미술학원을 다 따로 다니는 친구들도 한달에 100만원 정도 드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학생들은 지필고사에서 만점을 받아도 수행평가에서 감점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 일상적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다. 100점과 98점의 차이가 점수 2점이 아니라 석차 68등으로 벌어지는 현행 내신제도의 구조 탓이다.
2008년 새입시제도도 중학교 내신경쟁에 기름을 붓고 있다. 지난해 각 대학이 입시에 논술반영비율을 확대하면서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소재 중·고등학교 시험에 서술형 문항을 50% 이상 반영하도록 했다. 학생들의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고등학생들은 코앞에 둔 대입논술시험 대비라도 한다지만 중학생들에겐 성적을 위협하는 또다른 복병일 뿐이다.
서술형의 핵심은 답안의 완성도에 따라 교사가 0점부터 5점까지 차등 배점할 수 있다는 것, 이른바 ‘부분점수’다. 출제와 채점 관리가 잘만 되면 학생들은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고 교사는 학생평가에 관한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서술형이 쉬운 채점을 위해 부분점수 없이 출제된다는 사실이다. ‘모 아니면 도’식으로 중간점수없이 0점 또는 5점만을 준다. 사실상 기존 ‘단답형 주관식’ 문제다.
서울 ㅅ중학교 2학년 강아무개양은 “서술형이 10문제라고 한다면 부분점수를 주는 문제가 1~2개 정도”라며 “하나만 틀려도 5점씩 깎이기 때문에 점수에 주는 타격이 크다”고 했다. 영어는 대소문자를 잘못 표기하는 경우를 빼고는 부분점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시간도 문제다. 사고력을 동원해 풀어야 하는 서술형 문항수가 늘어남에 따라 적절한 시험시간 조정이 필요한데도 아직 그에 대한 고려는 없다. 문제해결능력보다 문제해결여건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건이 갖춰지는 동안 학생과 학부모는 서술형이 이 모든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특목고 입시 열풍에 있다.
지난달 확정된 서울 대원외고 2008년 전형요강의 교과성적 산출식을 보면 ‘전교과 평균성적 백분율의 제곱에 1/50을 곱한 값’을 내신성적 반영비율 60점에서 감하는 방식이다. 과목별 석차 백분율이 기준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과목마다 등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의 말은 다르다. 중계청산학원 최영석 원장은 “외고의 경우, 석차백분율 1%에 60점을 준다면 10%에는 58점을 주는 정도이기 때문에 10%안에 들기만 하면 내신성적은 크게 상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10%안에 드는 상위권이라면 특목고 입시를 준비한다고 해도 1점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특목고가 명문대의 길목으로 비쳐지면서 그동안 입시열풍의 미풍지대였던 중학교가 열풍지대가 되어가고 있다. 일단 1등을 해야 안심하는 부모의 조급증도 한 몫한다. 2007년 한국의 중학교는 점점 고등학교를 닮아가고 있다.
시계 봤다고··· 웃었다고··· 단추 풀었다고 ‘-1점’ 수행평가 채점이 너무해
수행평가를 둘러싼 불만과 다툼이 흔하게 일어난다. 학부모나 학생들은 수행평가 점수가 ‘교사 마음대로’라고 반발한다. 일점 때문에 과목별 석차의 자릿수가 바뀌는 등 내신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수행평가보다 지필이 훨씬 좋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전한 교사들의 수행평가 채점 행태를 들어봤다. 교사 주관개입 심해 불만 편애학생 점수 더주기도 첫째는 수업태도를 수행평가 점수에 무리하게 반영하는 경우다. 서울의 ㅇ중학교 2학년 교실의 칠판에는 국사시간마다 몇몇 학생의 이름과 그 옆에 바를 정(正)이 씌여진다. 시계 한 번 돌아보면 한 획, 고개 숙이면 한 획, 크게 웃으면 또 한 획, 이렇게 다섯 획이 다 그어지면 수행평가 점수 1점이 깎인다. ㅅ중학교 2학년 기술가정 시간에는 학생 전원이 교과서와 노트를 책상위에 펴 놓고 바른 자세로 앉아 있지 않으면 전체경고가 날아간다. 그날은 수행평가 점수 깎일 확률 99%다. ㅅ중학교 ㄱ양은 “친구는 음악시간에 교복 셔츠 단추를 풀고 있다가 복장불량으로 1점이 깎였다”며 “음악시간에 교복단추 때문에 점수가 깎인다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수행평가 과제량이나 목표를 과도하게 설정하는 교사들도 있다. ㅅ여자중학교 국사과목의 수행평가 점수는 5점, 그 5점을 위해 학생들은 역할극을 하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읽어야 한다. 수업시간에는 수업태도 채점 때문에 또 긴장해야 한다. 평가과제 하나당 1점 꼴인 셈이다. 기술가정 시간에 색종이를 0.5cm씩 가로 세로로 잘라 수자직, 능직, 평직을 맞추는 데 서너시간이 걸리지만 이에 할당된 점수는 고작 5점. 각종 목재용 공구를 이용해 목재를 가공하는 수행평가에서는 평가 중에 실톱을 망가뜨리면 1점이 깎인다. 조원 하나의 실수지만 조별로 하는 작업이라 조원 모두 1점씩 날아간다. 4개를 부러뜨린 ㄱ양의 조는 4점이 깎였다. 기술가정은 학교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학생이 곤란을 겪는 과목이다. 학생들은 ‘특정 학생에 대한 교사의 편애’ 때문에 속앓이를 한다. ㅇ중학교 ㄱ양은 “음악 가창시험을 보는데 선생님이 지시한대로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으면 점수를 깎았는데 공부 잘하는 애는 안 깎았다”고 했다. 피아노 뒤로 나오라고 했는데 피아노 앞으로 나오면 1점씩 감점했다는 말이다. 체육 과목도 학생들의 원성을 사는 일이 많다. 줄넘기나 농구 드리블의 갯수를 셀 때 공부를 잘하거나 교사가 좋아하는 학생들은 몇개씩 더 얹어주는 일이 목격되곤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서울 목동에 사는 학부모 ㄱ씨는 “이쪽 동네는 수행평가를 집에서 해가는 경우가 많다”며 “파워포인트며 기술가정의 책꽂이까지 모두 부모의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 평가를 할 때 돈을 주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동영상이나 애니메이션 기능 등을 삽입해 완벽하게 만들어오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수행평가는 1999년 교육부가 교과성적에 수행평가 성적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교육부 훈령을 개정하면서 도입됐다. 벌써 시행 10년 가까이 됐다. 교사의 ‘주관 개입’에 대한 우려는 현실화한 지 오래이지만, 교육당국의 움직임은 여전히 미미하다.
점수·석차 연연하기보다 난이도 읽고 다음시험 대비를 성적표 이렇게 읽으세요 서울 목동의 한 중학교 1학년 정아무개(15)양은 지난주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치른 시험의 평균은 85.4점. 초등학교의 수우미양가 계산법으로 하면 ‘잘함’ 또는 ‘우’에 해당하는 점수다. 하지만 중학교의 내신성적 산출법은 달랐다. 학급 45명 중에 17등, 전교 800여명 중에 299등이었다. “점수는 잘 나온 것 같은데 100등 안에도 못 들어서 많이 놀랐어요.”
정양의 일만은 아니다. 4월 말부터 5월초까지 각급학교가 치른 중간고사의 결과가 나오는 요즘, 학생과 부모들이 성적표를 대하는 심정은 착잡하다. 모양도 새롭고 구성도 복잡하다. 점수 보고 웃다 보면 석차에 울고 만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과 학부모는 특히 혼돈스럽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해야 하는 학부모들도 자신들 세대에는 구경도 못해 본 별난 성적표 해독법에 서툴다. 중학교 성적표, 어떻게 읽어야 할까? 먼저 시험의 난이도를 읽어야 한다. 난이도는 과목별 석차와 합계점수와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시된 성적표의 수학 과목을 보면 85점을 맞았는데도 석차는 266등이다. 내 자녀보다 시험을 더 잘 본 학생들이 265명이나 된다는 말이다. 사회과목은 1등을 했지만 괄호안의 동석차수가 44명이다. 전교에 100점을 맞은 아이가 44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100점을 맞고서도 상위 8% 안에 드는 게 고작이다. 이러면 부모는 흔히 점수와 상관없이 등수가 밀린 자녀를 탓하기 쉽다. 하지만 90점을 넘길만큼 최선을 다했는데 석차가 뒤로 한참 밀린 성적표를 보는 자녀의 심정도 헤아려야 한다. 잘못은 학교에 있다. 시험문제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고득점자를 양산한 학교의 책임이다. 서울 중계청산학원 최영석 원장은 “시험이 쉬우면 실수로 1개를 틀려도 전체 석차 백분율 8%, 10%로 밀리는 일이 생긴다”며 “3학년때 석차 백분율로 특목고를 가는 아이들한테는 부담일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으로 자녀 점수의 구조를 읽어야 한다. 100점을 이루는 시험의 종류가 다양하고 반영비율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학생이 치러야 하는 시험의 종류를 명시한 ‘고사영역명(반영비율)’ 칸에는 과목별 점수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나와 있다. 크게 지필고사와 수행평가로 나눠지고 수행평가는 또 세분화된다. 서술·논술형은 학교 재량으로 지필고사에 포함하기도 한다. 예로 든 성적통지표를 보면 국어과는 독서노트, 영어는 문장쓰기에 수행평가 10점을 매긴다. 음악은 노트필기가 10점을 차지한다.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시험공부만 한다고 100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시험볼 때 다 맞아도 글씨가 엉망이면 1, 2점 깎이고 파워포인트를 조작할 수 없으면 또 몇 점이 깎인다. 자녀가 지필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서도 수업태도나 노트정리, 다른 부분에서 점수를 잃은 것은 아닌지 부모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잘히 쪼개진 점수의 얼개를 읽으면 자녀의 학교생활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학생 평가의 방법을 다양화하고 있는 학교 현장의 흐름을 외면한 채 뭉뚱그려진 점수나 석차만으로 아이들을 다그쳐서는 부모와 자녀가 원하는 성적 향상의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중간고사 성적표를 다시한번 꼼꼼히 살펴보면, 기말고사 대비전략이 ‘매직아이’처럼 눈에 드러난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시계 봤다고··· 웃었다고··· 단추 풀었다고 ‘-1점’ 수행평가 채점이 너무해
지필고사와 함께 중학교 내신 성적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수행평가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커지고 있다. 교사들의 자의적인 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이다. 사진은 체육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수행평가를 둘러싼 불만과 다툼이 흔하게 일어난다. 학부모나 학생들은 수행평가 점수가 ‘교사 마음대로’라고 반발한다. 일점 때문에 과목별 석차의 자릿수가 바뀌는 등 내신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수행평가보다 지필이 훨씬 좋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전한 교사들의 수행평가 채점 행태를 들어봤다. 교사 주관개입 심해 불만 편애학생 점수 더주기도 첫째는 수업태도를 수행평가 점수에 무리하게 반영하는 경우다. 서울의 ㅇ중학교 2학년 교실의 칠판에는 국사시간마다 몇몇 학생의 이름과 그 옆에 바를 정(正)이 씌여진다. 시계 한 번 돌아보면 한 획, 고개 숙이면 한 획, 크게 웃으면 또 한 획, 이렇게 다섯 획이 다 그어지면 수행평가 점수 1점이 깎인다. ㅅ중학교 2학년 기술가정 시간에는 학생 전원이 교과서와 노트를 책상위에 펴 놓고 바른 자세로 앉아 있지 않으면 전체경고가 날아간다. 그날은 수행평가 점수 깎일 확률 99%다. ㅅ중학교 ㄱ양은 “친구는 음악시간에 교복 셔츠 단추를 풀고 있다가 복장불량으로 1점이 깎였다”며 “음악시간에 교복단추 때문에 점수가 깎인다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수행평가 과제량이나 목표를 과도하게 설정하는 교사들도 있다. ㅅ여자중학교 국사과목의 수행평가 점수는 5점, 그 5점을 위해 학생들은 역할극을 하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읽어야 한다. 수업시간에는 수업태도 채점 때문에 또 긴장해야 한다. 평가과제 하나당 1점 꼴인 셈이다. 기술가정 시간에 색종이를 0.5cm씩 가로 세로로 잘라 수자직, 능직, 평직을 맞추는 데 서너시간이 걸리지만 이에 할당된 점수는 고작 5점. 각종 목재용 공구를 이용해 목재를 가공하는 수행평가에서는 평가 중에 실톱을 망가뜨리면 1점이 깎인다. 조원 하나의 실수지만 조별로 하는 작업이라 조원 모두 1점씩 날아간다. 4개를 부러뜨린 ㄱ양의 조는 4점이 깎였다. 기술가정은 학교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학생이 곤란을 겪는 과목이다. 학생들은 ‘특정 학생에 대한 교사의 편애’ 때문에 속앓이를 한다. ㅇ중학교 ㄱ양은 “음악 가창시험을 보는데 선생님이 지시한대로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으면 점수를 깎았는데 공부 잘하는 애는 안 깎았다”고 했다. 피아노 뒤로 나오라고 했는데 피아노 앞으로 나오면 1점씩 감점했다는 말이다. 체육 과목도 학생들의 원성을 사는 일이 많다. 줄넘기나 농구 드리블의 갯수를 셀 때 공부를 잘하거나 교사가 좋아하는 학생들은 몇개씩 더 얹어주는 일이 목격되곤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서울 목동에 사는 학부모 ㄱ씨는 “이쪽 동네는 수행평가를 집에서 해가는 경우가 많다”며 “파워포인트며 기술가정의 책꽂이까지 모두 부모의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 평가를 할 때 돈을 주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동영상이나 애니메이션 기능 등을 삽입해 완벽하게 만들어오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수행평가는 1999년 교육부가 교과성적에 수행평가 성적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교육부 훈령을 개정하면서 도입됐다. 벌써 시행 10년 가까이 됐다. 교사의 ‘주관 개입’에 대한 우려는 현실화한 지 오래이지만, 교육당국의 움직임은 여전히 미미하다.
점수·석차 연연하기보다 난이도 읽고 다음시험 대비를 성적표 이렇게 읽으세요 서울 목동의 한 중학교 1학년 정아무개(15)양은 지난주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치른 시험의 평균은 85.4점. 초등학교의 수우미양가 계산법으로 하면 ‘잘함’ 또는 ‘우’에 해당하는 점수다. 하지만 중학교의 내신성적 산출법은 달랐다. 학급 45명 중에 17등, 전교 800여명 중에 299등이었다. “점수는 잘 나온 것 같은데 100등 안에도 못 들어서 많이 놀랐어요.”
성적통지표
정양의 일만은 아니다. 4월 말부터 5월초까지 각급학교가 치른 중간고사의 결과가 나오는 요즘, 학생과 부모들이 성적표를 대하는 심정은 착잡하다. 모양도 새롭고 구성도 복잡하다. 점수 보고 웃다 보면 석차에 울고 만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과 학부모는 특히 혼돈스럽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해야 하는 학부모들도 자신들 세대에는 구경도 못해 본 별난 성적표 해독법에 서툴다. 중학교 성적표, 어떻게 읽어야 할까? 먼저 시험의 난이도를 읽어야 한다. 난이도는 과목별 석차와 합계점수와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시된 성적표의 수학 과목을 보면 85점을 맞았는데도 석차는 266등이다. 내 자녀보다 시험을 더 잘 본 학생들이 265명이나 된다는 말이다. 사회과목은 1등을 했지만 괄호안의 동석차수가 44명이다. 전교에 100점을 맞은 아이가 44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100점을 맞고서도 상위 8% 안에 드는 게 고작이다. 이러면 부모는 흔히 점수와 상관없이 등수가 밀린 자녀를 탓하기 쉽다. 하지만 90점을 넘길만큼 최선을 다했는데 석차가 뒤로 한참 밀린 성적표를 보는 자녀의 심정도 헤아려야 한다. 잘못은 학교에 있다. 시험문제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고득점자를 양산한 학교의 책임이다. 서울 중계청산학원 최영석 원장은 “시험이 쉬우면 실수로 1개를 틀려도 전체 석차 백분율 8%, 10%로 밀리는 일이 생긴다”며 “3학년때 석차 백분율로 특목고를 가는 아이들한테는 부담일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으로 자녀 점수의 구조를 읽어야 한다. 100점을 이루는 시험의 종류가 다양하고 반영비율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학생이 치러야 하는 시험의 종류를 명시한 ‘고사영역명(반영비율)’ 칸에는 과목별 점수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나와 있다. 크게 지필고사와 수행평가로 나눠지고 수행평가는 또 세분화된다. 서술·논술형은 학교 재량으로 지필고사에 포함하기도 한다. 예로 든 성적통지표를 보면 국어과는 독서노트, 영어는 문장쓰기에 수행평가 10점을 매긴다. 음악은 노트필기가 10점을 차지한다.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시험공부만 한다고 100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시험볼 때 다 맞아도 글씨가 엉망이면 1, 2점 깎이고 파워포인트를 조작할 수 없으면 또 몇 점이 깎인다. 자녀가 지필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서도 수업태도나 노트정리, 다른 부분에서 점수를 잃은 것은 아닌지 부모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잘히 쪼개진 점수의 얼개를 읽으면 자녀의 학교생활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학생 평가의 방법을 다양화하고 있는 학교 현장의 흐름을 외면한 채 뭉뚱그려진 점수나 석차만으로 아이들을 다그쳐서는 부모와 자녀가 원하는 성적 향상의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중간고사 성적표를 다시한번 꼼꼼히 살펴보면, 기말고사 대비전략이 ‘매직아이’처럼 눈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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